"싸나이로 났으면 값을 해야지"…K남성 뼈 때리는 블랙코미디
[비욘드 스테이지] 연극 ‘케이멘즈 랩소디’
한국 남성들이여, 이제 이런 말은 프로포즈 금기어가 됐다는 걸 기억해두자. 만일 여친에게 그런 말을 했다가는 “너 자신이나 잘 지켜”라는 말이 돌아오기 쉽다.
세상의 변화가 새삼스럽기는 하다. ‘라떼는’ 그런 말이 노래 가사에 자주 등장하는, 듣기 좋은 말로 통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이상하다. 남녀가 사귀거나 결혼을 한다고 해서 남성이 여성을 ‘지켜준다’고 볼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는데, 남성들은 왜 지키지도 않을 말을 남발하고 여성들은 기분 좋게 속아준 걸까. 여성이나 남성이나 남성중심 가부장적 이데올로기에 푹 젖은 채 우리 역사가 흘러왔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가 과연 그랬던가’ 의심스럽다면, 연극 ‘케이멘즈 랩소디(K-Men’s Rhapsody)’를 보면서 확인할 수 있다. K팝, K드라마, K푸드 등등 뭐든 ‘K’만 붙이면 잘 팔리게 된 시대에, 연극 시장에 등장한 ‘K멘’에게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랩소디’란 단어는 서사시의 일부를 뜻하는 그리스어에서 유래된 말로, 흔히 ‘광시곡’이라고 번역되는 음악의 한 갈래다. 혐오의 뜻으로 ‘한남’이라 불리곤 하는 한국 남자, ‘K멘’들의 부적절한 연대기를 서사적이고 영웅적이며 민족적인 색채를 띠는 장엄한 음악 형식에 빗대어 역설적으로 패러디한 블랙코미디다.
두산아트센터와 극단 드림플레이 테제21의 공동기획으로, 대표작 ‘알리바이연대기’로 동아연극상·대한민국 연극대상 등 주요 연극상을 휩쓴 김재엽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가 직접 쓰고 연출했다. 2020년 두산아트센터 창작희곡 개발 및 작가 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개발됐고, 2022년 대학로 선돌극장 초연을 거쳐 두산아트센터에 입성했다.
연극은 우리가 무심코 받아들여왔던 일들이 사실은 많이 이상한 일이었음을 깨닫게 한다. 서막은 한국 최초의 소프라노로 꼽히는 가수 윤심덕이 연다. 1926년 연인 김우진과 함께 생을 끊었지만, 1931년 잡지 ‘신여성’에 ‘윤심덕이 살아 있다’는 기사가 등장한 것. 기자도 편집자도 아무도 믿지 않으면서 잡지를 팔기 위해 5년 전에 죽은 여성을 이야깃거리로 갖고 놀며 두 번 죽인 셈이다. 신여성을 위한 잡지가 아니라 신여성을 조롱하는 잡지였던 것이다.
명창 박녹주를 향한 소설가 김유정의 진한 사랑도 사실 심각한 범죄 수준이었다. “오늘 너의 운수가 좋았노라. 그 길목에서 너를 기다리기 3시간, 만일 나를 만났으면 너는 죽었으리라” 같은 협박 편지를 매일같이 쓰던 김유정이 당시엔 절절한 로맨티스트로 미화되곤 했지만, 박녹주로선 “협박에, 스토킹에, 교제를 빙자한 폭력까지 조선 찌질이 3종 세트를 다 갖춘” 스토커였을 뿐이다.
무거운 이야기지만 경쾌한 풍자로 가득한 마당극처럼 풀어 가볍게 볼수 있다. 역사에 상상력을 보탠 수많은 장면 재연이 세월을 넘나들며 빠른 템포로 모자이크되는 탓에 숨가쁘긴 하지만, 1인 10역 정도는 당연하게 소화하는 일곱 배우들의 ‘열’연기에 시종 박수와 웃음이 터져나온다. 특히 ‘찌질남’ 김유정에 빙의해 장구를 치며 이승기의 ‘누난 내 여자니까’를 열창하다가 급기야 ‘K좀비’가 되고 마는 김세환 배우의 연기는 동아연극상 연기상을 수상할 만큼 인상적이다.
과거 이야기만 하는 건 아니다. “얼마 전 조선창극단에서 소리꾼 배우를 모집한다기에 내 오랜 염원으로 창극에 도전하여 오디션을 보아 덜컥 붙어 버렸지요. 근데 늘상 절대 권력자처럼 군림하던 할아비 스승이라는 자가 어젠 불쑥 잠자리 운운하며 변태수작을 부려와 당장에 인연을 끊고 ‘미투’를 외쳤소.” “잘했다. 아예 돌아오지 못하게 해야 할 것이야.” 의미심장한 대사들이 변하지 않는 젠더 갈등의 과거와 현재를 종횡무진 넘나든다.
지루할 때 쯤 2막은 분위기를 전환해 게임 속으로 들어간 컨셉트로 한층 발랄해진다. ‘애국자 게임’의 메인 캐릭터는 최근 논란의 중심으로 떠오른 ‘국부’가 소환된다. 한국전쟁 당시 후방으로 도망가면서 여성 의용군을 모집하고, ‘현모양처’를 장려하는 한편 미군 부대 주변에 기지촌을 세워 ‘양공주’를 양산해낸 모순을 꼬집는다. 국부의 ‘애국자 게임’에서 여성은 희생양이었을 뿐이며, 지금의 ‘한남’들이 프로그래밍된 책임이 그에게 상당히 있다는 주장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좌파 연극’으로 치부하기엔 뼈아픈 자기반성이 있다. 80년 광주항쟁 등 운동의 현장에서도 성폭력이 있었고, 그럼에도 ‘여성해방’의 구호는 민족과 민중, 계급해방의 구호에 무참히 밀려나야 했으며, IMF 구제금융 당시 노사협상에서 여성 노동자들이 제일 먼저 무더기 정리해고를 당해야 했던 순간들에도 확대경을 비추며 ‘그때 우린 왜 그랬을까?’ 자문한다.
흥미로운 건 일제강점기였던 1927년에 이미 여성에 대한 차별 철폐와 결혼의 자유 확립, 봉건적 인습 타파를 외쳤던 여성운동 조직 ‘근우회’가 결성되었다는 사실이다. 근 100년이 지난 지금도 대한민국에 여성 혐오와 젠더 갈등이 난무한다는 건, 이 무대에서만도 헤아릴 수 없이 확인한 여성들의 투쟁에서 ‘한남’들이 사실은 깊은 고민을 한 적이 없다는 방증 아닐까.
시작부터 포스트잇이 잔뜩 붙어있는 원세트 무대는 엔딩에서야 2016년 강남역 화장실 살인사건 추모 현장이 된다.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면서 순수하게 희생자를 추모를 하러 온 세환은 “남자 새끼가 쪽팔리게 여자를 괴롭히고 사냐?(중략) 등신들, ‘싸나이’로 태어났으면 그 값을 해야지”라며 흥분하다가 여친 희정에게 이별 통보를 받는다. 희정은 왜 그랬을까. 애초에 ‘케이걸’은 ‘케이멘’의 허세 따위 원한 적 없었는지 모른다.
유주현 기자 yj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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