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획] 초선의원들 위한 추천서 총선은 끝났다. 당선 축하 인사는 잠깐뿐. 의정활동을 통해 한국 사회의 산적한 현안을 해결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크나큰 책임이 기다린다. 22대 국회의원들, 특히 초선 의원들에게 권하는 책을 출판인들에게 물었다. 중앙일보 북 칼럼 필자들을 포함해 14인이 2권씩(소속 출판사 책 추천할 경우 3권) 추천한 책은 34권. 추천 이유와 함께 분야별로 소개한다. 당선 축하 선물이자, 기대의 메시지다.
놀랍게도 34권 중 추천이 겹친 책은 거의 없다. 유일한 예외가 『계급 천장』(사계절). 영국의 두 사회학자가 데이터·사례를 아울러 “‘능력주의’라는 신화 속에 감추어진 부와 권력, 계층의 대물림에 대해” 살핀 책이자 “공정·평등·정의라는 말들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화두로 떠오른 우리 사회에도 시사하는 바가 큰 책”(이현자)이란 추천. “현재 한국정치가 가장 무겁게 받아들여야 하는 주제는 출생률 감소와 그 배경에 도사린 능력주의 신화”라며 “특권의 대물림에 갇힌 사회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 첫단추를 이 책에서 찾았으면 한다”(강맑실)는 추천도 나왔다.
이를 포함해 분야로는 정치·사회 관련 책이 가장 많다. 미국 하버드대 두 정치학자가 쓴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어크로스)는 “합법적으로 집권한 현대의 독재자들이 어떻게 민주주의를 파괴하며 세상을 지배하는지” 생생히 보여주며 “한국적 현실에서 당면한 정치·사회적 과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 고민하게 해주는”(염종선) 책으로 추천됐다.
『권력은 현실을 어떻게 조작하는가』(마리아 레사 지음, 북하우스)는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저자가 가짜 뉴스와 어떻게 싸웠고, 지금도 싸우고 있는지를 보는 과정에서 민주주의가 무너지지 않도록 노력해야 하는 정치인의 소명을 찾을 수 있다”(윤철호)는 추천. 『이탈리아로 가는 길』(조귀동 지음, 생각의힘)은 우리 사회를 이탈리아 사회와 비교하며 “‘정치가 헛돌고’ ‘민주주의가 만성적 위기 국면’에 접어든 한국 사회의 지금 상황을 타파할 방안을 모색”(노의성)하는 책으로 추천됐다. 한국에 초점을 맞춘 책으로 『21세기 한국의 불평등』(구인회 지음, 사회평론아카데미, 윤철호 추천)도 추천됐다.
미국 선거 결과에 나타난 역설적 진실을 분석한 『왜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를 위해 투표하는가』(토마스 프랭크 지음, 갈라파고스, 염종선 추천)는 10여년 전부터 꾸준히 읽혀온 책. 『내전, 대중 혐오, 법치』(피에르 다르도 외 지음, 원더박스, 임병주 추천)와 『AI시대의 정치이론』(마티아스 리스 지음, 그린비, 박현미 추천)은 모두 올해 출간된 따끈따끈한 신간이다. 『괜찮은 정치인 되는 법』(브라이언 C 해거티 지음, 서해문집)은 상대적으로 가볍게 읽을 법하다. “쉽게는 ‘항상 얼굴이라도 내비치라’부터 너무 당연하지만 막상 실천하는 이는 드문 ‘지키기 어려운 약속은 하지마라’까지, 유권자가 당신에게 인간 이상의 것을 요청하는 게 결코 아니라는 걸 새삼 일깨워준다”(박태근)는 추천.
의정활동에 과학책 권하는 뜻
널리 알려진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와이즈베리)는 “우리 사회의 공정함, 정의에 관해 되짚어볼 수 있는 질문을 던지는 책”(양원석)으로 추천됐다. 사회심리학자 조너선 하이트의 『바른 마음』(웅진지식하우스)은 추천 이유가 독특하다. “진보와 보수가 서로를 진심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 그러니까 사람들마다 도덕적 감정이 다른 이유를 다루는 책인데, 이런 책이 더 이상 필요 없어지는 세상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신동해)는 바람이다.
지금 시대의 각종 논쟁은 과학과도 밀접하다. 『코스모스』로 이름난 칼 세이건의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사이언스북스)은 사이비 주장이나 유사 과학을 비판적으로 다룬 책. “이 책의 핵심 메시지는 과학과 민주주의가 아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것”(노의성)이란 추천. 각종 괴담이나 마녀 사냥 같은 정치 공세 때 논객들에 종종 인용되는 책이기도 하단다. 『과학은 얼마나』(홍성욱 지음,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는 “과학과 관련한 주요 입법과 결정을 앞둔 의원님들께 꼭 권하고 싶은”(신동해) 책이란 추천이다. 신간 『날마다 우주 한 조각』(지웅배 지음, 김영사)은 “과중한 업무에 지칠 때” 곁에 두고 “우주의 낭만을 잊지 않기를”(박태근) 바라는 추천 책.
『지구는 괜찮아, 우리가 문제지』(곽재식 지음, 어크로스)는 “기후 위기가 굉장히 중요하고 다급한 문제이자 코앞에 와있는 현실”(김겨울)이란 점에서, 『기후 위기 행동 사전』(김병권 외 지음, 산현재)은 “22대 국회에서 바로 다뤄야 할 기후 위기 문제의 출발점으로 제격”(노의성)이라고 추천됐다.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에코리브르)은 “환경 문제에 대한 새로운 대중적 인식을 이끌어내며 정책 변화와 현대적인 환경운동을 촉발”(임병주)한 고전.
기후 위기와 더불어 인구 문제 역시 당장의 현실. 『절반 세대가 온다』(한국일보 창간기획팀 지음, 현암사)는 이를 “청년의 시각”(김겨울)에서 볼 수 있는 책으로 추천됐다. 『초고령사회 일본이 사는 법』(김웅철 지음, 매일경제신문사)은 일본 정부·기업·개인의 구체적 대응 사례에서 “OECD 노인빈곤율 1위, 가장 빨리 늙는 나라, 인구 절반이 노인이 되는 우리나라의 현실을 정면으로 인식하고 전환의 계기를 마련할 힌트를 얻었으면 한다”(박현미)는 추천. 『미래 관찰자의 살아 있는 아이디어』(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 지음, 포르체)는 “지도자는 당장의 문제를 해결해야 할 뿐 아니라, 앞으로 닥칠 문제에 대해서도 준비해야 한다”(윤철호)며 추천됐다.
책 못지 않게 추천 이유 눈길
책도 책이지만 추천 이유도 눈길을 끈다. “먼저 당선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국회의원 당선은, 어쩌면 우리나라에서는 개인에게 가장 큰 경사가 아닐까 싶습니다(퇴임 후의 걱정이 적다는 점에서 정말 대통령 당선보다 낫지 않은지요). 당선 선물로, 세 권의 책을 추천합니다.”(신동해). 이 출판인이 권한 첫 번째 책은 『인간의 조건』(한승태 지음, 시대의창). ‘꽃게잡이 배에서 돼지 농장까지, 대한민국 워킹 푸어 잔혹사’라는 부제대로 “당선자 여러분이 거의 모를 법한 세상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골랐지만 “이제 ‘누구라도 대수롭게 여기지 않을 법한 사람들이 어떻게 먹고살고 있는지’는 의원님들의 일”이다.
『일인칭 가난』(안온 지음, 마티)은 “어떤 통계 숫자보다도 지극히 구체적이고 진실되게” “한 개인의 청년 시절을 지배한 빈곤의 경험을 철저한 일인칭 시점으로 진솔하게 드러낸다”(이광호)는 추천. 『그냥 사람』(홍은전 지음, 봄날의책)은 “일용노동자, 장애인, 농민, 심지어 글래스킬을 당하는 새를 비롯한 야생동물에 이르기까지, 법의 안전망에서 벗어난 수많은 마이너리티로부터 시선을 거두지 않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에서 권하는”(강맑실) 책.
“정치란 무릇 사람들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상호간의 이해를 조정하며, 사회질서를 바로잡는 일이라 했다. 그러니 정치를 함에 있어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사람과 세상을 이해하는 것,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의 역사를 바로 알고 이해하는 것이리라.”(이현자) 이는 작고한 문학평론가 황현산의 에세이집 『밤이 선생이다』(난다)를 권하는 이유. “사람과 세상에 대한 짧지만 밀도 높은 글들이 때로는 부드럽게, 때로는 준엄하게 과거와 현재의 모습을 되살피게 하고, 미래를 전망하게 한다”는 추천.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현암사)는 추천 이유를 짐작하는데 “제목 한 줄이면 충분”(김민정)하다. ‘고집쟁이 농사꾼’ 전우익의 이 책은 30년 넘게 읽혀온 스테디셀러다.
오늘을 위한 지혜는 종종 어제에서 나온다. 『권력의 조건』(아르테)은 퓰리처상 수상 작가가 방대한 자료를 섭렵하며 에이브러햄 링컨을 “통합과 화해의 리더십”으로 조명한 책이자 “정치 초년생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임병주)이란 추천. 『역사, 눈앞의 현실』(탕누어 지음, 흐름출판)에서는 춘추시대 지정학적으로 불리한 정나라의 정치인이었던 자산(子産)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권력에 기대어” 일하는 대신 “권력의 교차점에서 틈을 찾아내 상대를 설득할 만한 공간을 마련했다”(이은혜)고 추천인은 소개한다. 『가스 냄새를 감지하다』(조르주 디디-위베르만 지음, 문학과지성사)는 철학자의 시선으로 1968년 프랑스에서 벌어진 광산 가스 폭발 사고를 재조명한 책. 추천인은 “사후적으로만 깨닫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기 위해 역사의 나쁜 공기, 나쁜 시간이 나타났을 때 이를 감지할 수 있어야 한다”(이은혜)고 강조한다.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비봉출판사), 이문열 평역 『삼국지』(알에이치코리아, 이상 양원석 추천), 다산연구회 편역 『정선 목민심서』(창비, 염종선 추천) 등은 설명이 필요 없는 고전. 정평이 난 역사서 『물질문명과 자본주의』(전 3권, 페르낭 브로델 지음, 까치, 강맑실 추천)는 마침 우리말 개정판이 새로 나왔다. 『명상록』(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지음, 숲)은 “우주에 홀로 던져져 있음을 아는 자세, 고독을 벗어날 수 없다는 걸 아는 태도, 권력자가 맞기나 할 정도로 겸허하게 써나간”(김민정) 일기다. 알다시피 저자는 “직업이 황제”였다.
끝으로 소개하는 추천 책은 『지금도 책에서만 얻을 수 있는 것』(김지원 지음, 유유). “의무나 당위가 아니라 즐거움”으로서 독서의 방법을, “종이책만이 줄 수 있는 ‘진실한 읽기 경험’으로서” 독서의 행복을 말하는 책이자 “문화로서의 출판이 왜 중요한지를 이해할 수 있는 책”(이광호)이다.
■ 추천해주신 분(가나다 순)
「 ◦ 강맑실 사계절 대표 ◦ 김겨울 작가, 북 유튜버 ◦ 김민정 난다 대표 ◦ 노의성 사이언스북스 주간 ◦ 박태근 위즈덤하우스 출판본부장 ◦ 박현미 다산북스 콘텐츠사업2본부장 ◦ 신동해 웅진씽크빅 단행본사업본부장 ◦ 양원석 알에이치코리아 대표 ◦ 염종선 창비 대표 ◦ 윤철호 사회평론 대표 ◦ 이광호 문학과지성사 대표 ◦ 이은혜 글항아리 편집장 ◦ 이현자 문학동네 편집국장 ◦ 임병주 북이십일 부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