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칼럼] 은방패 부대와 86세대의 '선택'

김동욱 2024. 4. 13. 0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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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로스 제국 건설 주역인
'은방패 부대'는 70대에도 활약
정치 패권 거머쥔 韓 '86세대'
철 지난 운동권 논리 집착
변화 흐름 놓치면 원망 들을 것
김동욱 오피니언부장
김동욱 한국경제신문 기자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인도 원정에 즈음해 자신의 친위부대인 히파스피스테스에게 은으로 장식된 방패를 나눠줬다. 이들은 이후 ‘은방패 부대’라는 별칭으로 불렸다. 아버지 필리포스 때부터 알렉산드로스 대왕 가문과 동고동락한 은방패 부대는 단연코 최강의 부대였다. 그들의 창과 방패 아래 페르시아 제국이 쓰러졌고, 세계 정복은 공상이 아니라 현실이 됐다.

수많은 실전 경험과 승리에 대한 기억으로 단련된 이들의 위용은 노년이 돼도 사그라지지 않았다. 알렉산드로스 사후인 기원전 317년. 오늘날 이란 가비에네에서 마케도니아 장군들 간의 후계 전쟁이 벌어졌을 때 주로 70대로 구성된 은방패 부대가 전장의 승패를 가르는 역할을 했다. 로마 시대 역사가 디오도로스 시켈로스는 “은방패 부대는 나머지 병사들이 쓰러졌을 때도 똑바로 대열을 맞춰 전장을 누비며 저항하는 자를 모두 쓸어버렸다”고 그들의 노익장을 묘사했다.

고대의 은방패 부대에 비견되는 집단이 현대 한국 사회에 있다. 1960년대에 태어나 1980년대에 대학을 다닌, ‘86세대’로 통칭되는 50대 중반~60대 중반 그룹이다. 은방패 부대가 막강한 페르시아 제국을 무너뜨렸듯 86세대는 무소불위의 군부 정권에 맞섰다. 마케도니아 군단이 거침없이 이집트와 인도까지 밀고 들어갔던 것처럼 86세대는 정치·경제·문화·사법의 패권을 거머쥐었다. 알렉산드로스의 병사들이 청년기부터 노년까지 쉼 없이 전장의 주역으로 활동했던 것과 같이 대학생 시절부터 ‘어른 대접’을 받았던 이들은 백발이 성성해졌어도 한국 사회의 주인공 자리를 내줄 생각이 없다.


야당의 기록적인 압승으로 끝난 2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86세대의 힘이 유감없이 발휘됐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사전투표한 1384만여 명 중 60대(22.7%)와 50대(22.5%)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는데, 주력은 86세대로 보인다. 그 결과 운동권 학생회장 출신인 이인영(전대협 초대의장)·윤건영(국민대)·김민석(서울대)·이해식(서강대)·김태년(경희대) 후보는 별다른 어려움 없이 국회에 입성했다. 노인 비하와 불법 대출, 막말 논란도 운동권 출신 정청래(서울 마포을)·양문석(경기 안산갑)·김준혁(경기 수원정) 후보의 등원을 막을 수 없었다.

86세대는 1960~1969년의 10년간 1000만 명 넘게 태어났다. 총인구 5169만 명(2022년 기준)의 20%에 달한다. 65세 이상 고령층 전체(약 914만 명)와 X세대(약 898만 명·1970년대생)를 가뿐히 뛰어넘는다. 1980~2000년대 초반생을 MZ세대로 통째로 묶어야(약 1350만 명) 겨우 견줄 수 있다. 손에 쥔 것도 가장 많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2년 현재 연령대별 월평균 소득은 86세대의 주축인 50대(415만원)가 가장 높다. 50대는 주택 소유 비중(25.2%·1위)과 순자산보유액(4억9737만원·1위), 정규직 비중(66.8%·3위)에서도 상위권을 휩쓸었다. “크게 뭉쳐 있다”고 명명된 일본 ‘단카이(團塊) 세대’(1947~1949년생)보다 더 동질적인 집단이다.

문제는 거대하고 똘똘 뭉친 86세대 ‘선택’이 미친 여파다. 프랑스 철학자 프랑수아 멘트레는 세대의 영향으로 역사 변화가 30년 간극으로 발생한다고 봤다. 마찬가지로 86세대의 선택은 앞선 세대와 후속 세대의 삶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모든 세대는 경험과 기억을 공유하는 ‘기억공동체’다. 특히 예민한 ‘현재적 존재’로서 청년 시절에 접한 정치·사회·문화적 경험은 그 세대의 세계관을 결정한다. 지금의 80대가 농경사회 사고방식을 벗어나지 못하고, 70대가 산업화 시대의 수직적 가치관을 유지하듯 86세대는 6월 항쟁에 대한 기억의 굴레에서 자유롭지 않다.

이번 총선에서 86세대는 낡은 세계관을 떨치지 못했다. 86세대의 지지가 몰렸던 더불어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은 ‘검찰·국정원·감사원·경찰 개혁’ ‘사회연대 임금제 등 사회권의 헌법 반영’ 같은 철 지난 레퍼토리만 반복하거나 ‘서울대 10개 만들기’ 같은 젊은 날 꿈꿨던 사회주의 사상이 가미된 공약을 쏟아냈다.

무적의 은방패 부대도 마지막엔 변방의 수비대로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다. 조직 내에서 후속 인재를 양성하지도 못했고, 후배들과 교감도 없었던 은방패 부대의 영광은 불꽃처럼 짧았다. 86세대는 마지막 모습까지 은방패 부대를 따라가는 것일까. 86세대에게 남은 ‘시간’은 많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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