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은 부동산PF만 65조…증권사 만기도래액 10조 비상

배현정 2024. 4. 13.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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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PF ‘4월 위기설’ 왜
총선이 끝나자 금융·부동산 업계에서는 ‘4월 위기설’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정부의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정책이 그동안 유동성을 ‘지원’하는 방향에서 부실을 ‘정리’하는 쪽으로 돌아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간신히 버텨온 ‘좀비 PF 사업장’이 정리되는 과정에서 제2 금융권 등 약한 고리로 충격이 전이될 수 있다는 관측이다. 국내 PF 사업장은 3000 곳 이상으로 추산된다.

최근의 ‘4월 위기설’은 그동안 정부가 만기 연장 등을 통해 건설사의 부도를 막아 왔는데, 지원이 끊기면 숨어 있던 부실이 한꺼번에 터질 수 있다는 우려다. 2023년 법인체 감사보고서 제출 마감일이 4월 15일이라는 점도 4월 위기설을 키우고 있다. 감사보고서를 통해 PF 부실이 공론화되면 금융권이 만기 도래 PF의 연장을 꺼릴 것이고, 이게 건설사 연쇄 도산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다.

실제 PF 관련 지표는 계속 악화하고 있다. 우선 부동산 PF 연체율이 심상찮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은행·증권·보험·저축은행·여신전문·상호금융 등 전 금융권의 부동산 PF 연체율은 2.70%로, 전년 대비 1.51%포인트 상승했다. 문제는 약한 고리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증권사의 부동산 PF 연체율은 전 금융권에서 가장 높은 13.73%다. 2022년 10.38% 대비 3.35%포인트, 2020년 3.37%에 비해서는 10.36%포인트 급등한 수치다. 저축은행과 여신전문금융회사(캐피탈)의 지난해 말 기준 부동산 PF 평균 연체율도 각각 6.90%, 4.65%로 경고음이 울린다.

그래픽=김이랑 기자 kim.yirang@joins.com
PF 대출 잔액도 증가세다. 금융권의 부동산 PF 대출잔액은 지난해 말 기준 135조6000억원이다. 1년 새 5조3000억원 증가했다. 한국신용평가에 따르면 증권업계가 올해 감당해야 할 국내·외 부동산 금융 관련 익스포저(위험 노출액)는 10조3000억원에 달한다. 지난해 만기 도래액이 5조4000억원이었음을 감안하면 올해는 2배 가까이 위험 노출액이 많은 것이다. 특히 증권사의 PF대출은 후순위 비중이 높아 경기 악화 시 타격이 클 수밖에 없다. PF 외에도 브릿지론, 해외 부동산 위험에 노출돼있다. 이렇다보니 국제신용평가 S&P글로벌은 지난달 미래에셋증권과 한국투자증권 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하향조정했다. 위지원 한국신용평가 실장은 “증권업계 이익 규모, 자본 적정성 등을 감안하면 업계 전반의 대응력은 있으나, 일부 증권사의 신용도 하방 압력은 지속될 수 있다”고 말했다.

최근 미국 등 주요국의 금리 인하 가능성이 뒤로 밀리면서 부동산 경기 회복도 지연될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선 PF 사업장 부실이 시공사 부실로 이어지고, 시공사가 참여하고 있는 또 다른 PF 사업장으로 위험이 전이되는 연쇄적인 위험전이 가능성에 대해서도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올해 들어 부도 처리된 건설사는 인천의 중견건설사 영동건설 등 모두 9곳이다. 2019년 이후 가장 많은 규모를 기록했다. 생존 기로에 놓인 건설사들이 스스로 문을 닫는 자진 폐업도 폭증세다. 올해 들어서만 1080곳(9일 기준 종합 148개사, 전문건설사 934개사)이 문을 닫았다.

다만 정부와 한은은 향후 PF 대출을 둘러싼 부실이 확산하더라도 금융사가 양호한 손실흡수력을 보일 것으로 전망한다. 한은은 ‘3월 금융안정 상황 보고서’를 통해 “금융권이 양호한 자본비율을 유지하고 있다”며 “제2 금융권의 경우 그간 금리 인상 등의 여파로 연체율이 다소 상승하고 있지만 여전히 과거 평균을 하회하는 수준”이라고 분석했다. 한국신용평가도 “금융기관의 자본비율이 과거 대비 개선됐고, 현재는 부실의 정도가 심하지 않다”고 진단했다. 다만 저축은행에 부실이 집중된 글로벌 금융위기 때와 달리, 현재는 전 업권에 부실이 분포해 정부 지원에는 한계가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업계 분위기는 냉랭하다. 건설산업연구원은 최근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위기, 진단과 전망 그리고 제언’이라는 보고서에서 “PF 대출에 참여했던 금융기관이 동반 부실사태를 맞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건산연은 새마을금고 등의 PF가 통계에 포함되지 않았는데, 이들 PF와 유동화된 금액을 모두 포함하면 실제 부동산 PF 규모는 200조원을 넘어설 것이라고 지적했다. 2010년 터진 저축은행 사태 때는 부동산 PF 규모가 100조원 정도였다. 당시 저축은행 30여 곳이 파산하고, 10만 명이 넘는 피해자가 발생했다. 만약 4월 위기설이 현실화한다면 폭발력이 2010년보다 더 클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이같은 상황에서 정부의 유동성 공급과 PF 사업장 매각 등의 방안도 속속 발표되고 있다. 정부는 최근 ‘건설경기 회복 지원 방안’에서 미분양 주택을 매입하는 기업구조조정리츠(CR리츠)를 10년 만에 재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지방 미분양 주택을 매입하도록 취득세 중과배제를 적용하는 등 세제 지원책을 마련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토지를 3조원 규모로 매입해 유동성을 공급할 예정이다.

금감원은 PF 사업장 구조조정에 속도를 내기 위해 8일부터 2주간 시중은행, 제2 금융권 등과 면담에 나섰다. 사업성이 낮은 사업장의 경·공매 등을 통한 정리·재구조화를 중점적으로 유도할 방침이다. 부실 사업장 정리를 위한 ‘사업성평가 기준’을 개편하는 작업도 추진 중이다.

업계는 당국이 부실 사업장의 기준을 엄격하게 잡을수록 무더기로 법정관리에 들어가면서 시장이 크게 위축될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와 금융당국의 PF 관련 정책이 구심점 없이 산발적으로 발표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있는 PF 문제의 근본적 해결 방안 도출이 쉽지 않다는 시각이다. 법무법인 바른의 부동산PF 금융위기대응팀 김병일 변호사는 “금융기관과 건설업계, 정부가 모두 참여하는 부동산PF 구조조정 전담 TF(태스크포스)를 구성해야 한다”며 “종합적인 진단을 통해 퇴출이 불가피한 사업장과 지원할 사업장을 분류해 부실 정리에 따른 충격을 최소화할 방법을 시급히 찾아야할 때”라고 말했다.

배현정 기자 bae.hyunj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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