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왕설래] 영수회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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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두머리를 영수(領袖)라고도 한다.
한국정치에서 영수회담은 통상 대통령과 야당 대표 간 일대일 만남을 의미한다.
역대 정권에서 영수회담은 꽉 막힌 정국을 풀 수 있는 마지막 카드로 활용됐다.
영수회담에 가장 적극적이었던 지도자는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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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첫 영수회담은 1965년 7월 20일 박정희 대통령과 박순천 민중당 대표최고위원 간에 열렸다. 회담에서 양측은 임시국회를 소집해 한·일 협정 비준안과 베트남전쟁 파병 동의안을 다루기로 합의했다. 1975년 5월 21일 열린 박 대통령과 김영삼 신민당 총재의 영수회담, 1987년 6월 24일 전두환 대통령과 김영삼 민주당 총재의 영수회담도 정국의 주요 분기점이 됐다.
영수회담은 노무현정부 때 노 대통령이 당정분리 원칙을 선언해 여당 총재를 겸하지 않게 되면서 점차 감소했다. 영수회담이 이름값을 못 하고 정치를 더 꼬이게 했던 경우도 적지 않다. 김대중 대통령과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는 일곱 차례 영수회담을 가졌지만, 항상 뒤끝이 좋지 않았다. 이 총재 진영에선 칠종칠금(七縱七擒)에 빗대 7번 만났으나 7번 뒤통수를 맞았다는 뜻으로 ‘칠회칠배(七會七背)’란 신조어가 등장했다. 노무현정부 시절인 2005년 9월에 열린 영수회담도 노 대통령이 제안한 대연정을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앞으로는 그런 말을 꺼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거절하는 등 성과없이 끝났다.
4·10 총선에서 압승한 더불어민주당이 어제 윤석열 대통령에게 야당 대표와의 영수회담을 열 것을 압박하고 나섰다. 그동안 여러 차례 영수회담을 요구해 왔던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영수회담 가능성을 묻는 취재진에게 “당연히 만나야 한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내주 초 총선 패배에 대한 입장을 발표한다고 한다. 그동안 이 대표와의 회담을 거부해 왔던 윤 대통령에게 변화가 있을지 주목된다. 굳이 영수회담이라는 형식에 얽매이지 않더라도 두 지도자가 편하게 만나 소통할 수 있는 여러 채널이 열렸으면 좋겠다.
박창억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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