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문화] ‘피스’와 ‘멘털’
통념을 시원히 깨준 감독도 많아
무의지적 경청이 ‘관찰의 비결’
매순간 무엇을 만날지 모험 같아
흔히 다큐멘터리는 정보를 전달하거나 사실을 객관적으로 다루는, 진지하지만 재미없는 장르라고 여기지만, 이런 통념을 시원하게 깨뜨려주는 감독들이 있다. 요리스 이벤스, 프레드릭 와이즈만, 킴 론지노토, 클로드 란츠만, 바바라 코플, 트린 민하, 헬레나 트레슈티코바, 체칠리아 만지니, 소다 가즈히로…. 이들의 다큐멘터리는 무엇보다도 인간과 세계를 관찰하고 대상에게 귀 기울이는 법을 가르쳐준다.

감독은 피사체에 대한 연민이나 소명의식을 과장해서 드러내지 않고 아주 담담하게 카메라에 담아낸다. 장애를 지닌 이들이 자신의 가난하고 불편한 삶을 카메라를 향해 열어준 것은 그동안 보살핌을 통해 형성된 관계 덕분일 것이다. 돈도 되지 않는 궂은 일을 계속하는 이유를 묻자, 장인은 “글쎄, 습관의 힘이랄까”라고 대답한다. 바로 그 순간 평화가 희미하게 얼굴을 드러내는 듯하다. 또한, 폐암 말기 선고를 받은 노인의 담뱃갑 위의 ‘peace’라는 단어를 스치듯 비추는 카메라에서 우리는 평화의 아이러니를 읽을 수 있다.
‘멘털’에서는 정신과 진료소인 ‘코랄 오카야마’의 의사인 야마모토 박사와 거기에 드나드는 환자들을 찍었다. 공개되기 어려운 개인의 진료 기록이나 상담 장면을 여과 없이 찍을 수 있는 비결은 어디에 있을까. 야마모토 박사에 대한 환자들의 신뢰가 두텁고, 감독의 아내이자 공동제작자인 가시와기 기요코가 환자들과 쌓은 우정의 힘도 작용했을 것이다. ‘피스’에 등장하는 가시와기 도시오처럼 ‘멘털’에서는 야마모토 박사가 성실한 대화자 또는 관찰자 역할을 수행한다. 다소 무심한 표정으로 타인의 말에 경청하는 두 인물은 상대방에 대해 자의적 판단을 내리거나 섣부른 충고를 건네지 않는다. ‘멘털’에서는 감독이 카메라 뒤에서 질문을 던지거나 대화를 나누며 약간 개입하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주어진 상황과 사람들을 있는 그대로 따라간다. 이런 ‘무의지적 경청’이 바로 소다 가즈히로 감독이 발견한 관찰의 비결이다. 정해진 대본과 일정표와 결말을 벗어나 매 순간 무엇을 만나게 될지 알 수 없는 ‘일종의 모험’으로서의 다큐멘터리. 사려 깊은 관찰자로서 선입견 없이, 맨눈으로, 투명하게, 피사체를 바라보려고 노력하며 ‘무작위의 작위’를 수행하는 것. 그런 점에서 시와 다큐멘터리는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
나희덕 시인·서울과학기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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