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협 “‘與 참패’ 정부에 내린 심판…국민들의 분노 표현”

김현주 2024. 4. 12. 2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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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상 의대 증원, 필수의료 정책패키지 추진 즉각 중단하라는 것”
연합뉴스
총선 전 뜨거운 이슈 중 하나였던 정부의 ‘의대 정원 2000명 확대’ 추진에 변화가 생길지 주목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총선에서 참패해 ‘국민의 찬성 여론’을 해당 정책의 추진 명분으로 삼았던 정부의 입장이 난처해졌기 때문이다.

당장 대한의사협회(의협)는 이번 총선 결과가 이 문제에 대한 국민의 심판이라며 정부에 원점 재검토를 요구하고 나섰다. 이번 총선에서의 승리로 4선 중진이 된 국민의힘 내 유력 대권주자인 안철수 당선인도 의대 증원 유예가 바람직하다며 정부를 압박하는 모양새다.

정부는 고민이 깊어질 전망이다. ‘2000명 증원’ 입장에서 물러설 경우 무리한 정책 추진이었다는 것을 자인하는 모양새가 되고 윤석열정부의 조기 ‘레임덕’을 초래할 우려도 있다. 하지만 이번 총선에서 야당에 압도적 승리를 안겨준 민심을 무시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의협·전공의에 무리하게 내린 각종 고발 철회해야”
의협 비대위는 12일 의협 회관에서 브리핑을 열고 "여당의 총선 참패는 사실상 국민이 의대 증원과 필수의료 정책패키지 추진을 즉각 중단하라고 정부에 내린 심판이며, 국민들의 분노 표현"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국민의 준엄한 심판을 받들어 의료를 파국으로 몰고 가는 의대 증원과 필수의료 정책패키지 추진을 즉각 중단하고 원점 재검토에 나서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비대위는 "정부가 진정성 있는 대화를 할 의지가 있다면 의협 비대위 지도부와 전공의들에게 무리하게 내린 각종 명령과 고발, 행정처분 등을 철회하라"고도 요구했다.

김성근 비대위 홍보위원장은 "지난 2월 정부가 필수의료 정책과 2천명 증원안을 발표했을 때 해당 정책의 추진 명분은 '국민의 찬성 여론'이었지만, 정부가 보여준 쇼에 불과한 대화 시도와 일관성 없는 태도로 국민들은 정부의 목적이 의료개혁이 아니라 '총선용 포퓰리즘'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국민은 투표를 통해 의료개혁이라는 가면 뒤에 숨어 있는 포퓰리즘 정책인 의대 증원과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 추진을 즉각 중단하고 원점에서 의료계와 함께 논의할 것을 요구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의협은 ‘의대 증원은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 중 가장 국민 동의율이 높았던 정책인데, 여론이 선거를 통해 증명됐다는 말은 무리한 해석이 아닌가’라는 질문에는 “의료 정책만 심판한 것은 아니지만, (이를 포함해) 여러 정책을 무리하게 지속하려고 했기 때문에 총체적으로 국민이 심판했다는 것”이라고 답했다.

또 “(총선은) 정책에 대한 찬반을 묻는 투표가 아니었기 때문에 선거 결과 분석은 다른 얘기”라면서도 “어떤 정책이 됐든 이러한 추진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 표현이 있었다고 평가하고 있다”고 했다.

의협은 아울러 정부가 시행했던 여론조사는 “편향된 질문을 통해 도출된 것”이었다며 “선거를 통해 증명된 국민의 진짜 여론을 받들어 의료계의 요구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일 때가 됐음을 인정하라”고 주장했다.

김 홍보위원장은 "증원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전달된 다음 묻는 것과 그렇지 않은 건 다르다"며 "물건을 싸게 사는 게 좋은지 비싸게 사는 게 좋은지 물어보면 누구나 싸게 사는 게 좋다고 할 거다. 증원을 하더라도 무리하게 하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는 결과가 나온 조사가 있기도 한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의협은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여야·정부·의료계·시민·환자 등이 참여하는 특위를 통해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겠다"고 한 것에 대해서는 "정책 추진은 정부에서 하고 있기 때문에 정부에서 방향을 돌려 달라"고 밝혔다.

비대위는 전날 전·현직 비대위 간부들이 법원에 낸 의사 면허 정지 처분 집행정지 신청이 기각된 것에 대해서는 "오늘 오전에 항고를 신청했고, 항고 이유서를 작성하고 있다"며 "의협이 총파업을 결의하지도 않은 상황에서 전공의들이 먼저 사직을 하고 나갔기 때문에 추가로 (집단행동 교사를) 할 수도 없었다"라고 이유를 밝혔다.

◆압도적인 여소야대…‘의정 갈등’ 새 국면

22대 총선이 압도적인 여소야대로 마무리되면서 의대증원을 둘러싼 의정 갈등이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뉴스1에 따르면 의대증원을 둘러싼 의정간 셈법은 더 복잡해진 양상이다. 야당에 압도적 승리를 안겨준 민심에 정부가 호응하려면 2000명 증원을 밀어붙이기도 부담스럽게 됐다. 반면 2000명 백지화와 원점 재검토를 요구하는 의사들의 목소리는 더욱 커질 수 있다.

그렇다고 정부가 물러서면 '레임덕'을 스스로 인정하는 셈이라 난처한 상황에 놓였다. 의대증원 국면에서 그간 의사들을 압도했던 정부는 총선 참패의 충격이 큰 것으로 전해진다. 당장 의정 협상의 동력이 크게 꺾일 것이란 우려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번 총선을 통해 국회에 입성하는 의료계 인사들이 주목을 끌고 있다. 이번 총선 결과 총 12명의 보건의료인이 금배지를 달게 되는데, 이 중 의사 출신만 8명이다. 역대 가장 많다. 21대 국회 때는 민주당 의원 2명(신현영, 이용빈)에 보궐선거로 들어온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까지 총 3명에 불과했다.

의사 출신은 국민의힘 안철수(경기성남분당갑)·서명옥(서울강남갑), 국민의미래 인요한(비례)·한지아(국민의힘), 더불어민주당 차지호(경기오산), 더불어민주연합 김윤(비례) 그리고 조국혁신당 김선민(비례), 개혁신당 이주영(비례) 당선인으로 여야 각각 4명이다.

◆‘의사 출신’ 안철수 “의료 정책 책임자 경질 불가피”

특히 이번 총선에서의 승리로 4선 중진이 된 안철수 당선인은 국민의힘 내 유력 대권 주자로 급부상하고 있다. 그는 의대증원 이슈를 두고 1년 유예한 뒤 단계적으로 증원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자신의 페이스북에 당선 인사 글을 올리면서 "국민 분노에 화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안 당선인은 "정책 책임자들의 경질이 불가피하다"며 "의사, 환우회, 국제기구가 모인 의료개혁 협의체에 숫자를 정하지 말고 전권을 맡겨서 언제 어느 규모로 증원하는 게 합리적일지 결론을 내게 하면 된다"고 제안했다. 그는 선거 기간에도 2000명 증원을 주먹구구식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개혁신당 비례 1번으로 당선된 순천향대천안병원 소아전문응급센터 교수 출신 이주영 당선인은 대한의사협회 차기 회장 등으로부터 '의료 현장을 아는, 당선돼야 할 후보'로 알려지며 의사들 지지를 받은 인물이다.

그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소아과 오픈런과 응급실 뺑뺑이는 의사 수 문제가 아니다. 정말 의사 수만 적어서 발생한 일일까. 정부는 일방적이고 폭압적인 의료개악 강행을 멈추길 바란다"며 의대증원 반대의 뜻을 내비쳤다.

더불어민주연합 비례 12번으로 당선된 김윤 서울대의대 의료관리학 교수는 의료계에서는 드물게 큰 폭의 증원을 주장해 온 대표적인 인물이다. 15년간 4500명씩 증원을 요구하기도 해 의협 등의 비판을 받아왔다. 그는 선거운동 기간 사회적 협의를 통해 의대증원분 재조정을 제안하기도 했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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