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기가 키운 인플루언서, 알고리즘에 무너지다 [Books &]
유망한 직장 취업 힘들어지자
블로그·SNS 활용 스스로 고용
전세계 인플루언서 4%만 전업
팔로워 경쟁 속 수명도 짧아져
알고리즘 변화에 생태계 위협
“인플루언서로의 여정을 시작한 지 몇 달 만에 내 자신감은 꺼지기 시작한다. 포스팅을 수백 번 했고 몇주 치의 브이로그를 찍었다. 팔로워수는 거의 몇백 명 늘어난 수준이니, 브랜드 계약이니 디톡스 차니 하는 약속의 땅은 아직 먼 꿈에 불과하다. 단백질 셰이크 협찬 가능성을 약속하는 반가운 이메일도 없다. 아직 온라인에서 듣보잡에 불과하고 슬슬 피로가 느껴진다.” (‘인플루언서 탐구’ 中)
‘그때 유튜브를 제대로 했더라면······.’ 직장인 ‘껄무새(어떤 행동을 했어야 했다고 반복적으로 후회하는 사람)’의 대표 패턴 중 하나다. 하지만 이들이 간과하는 건 2021년 기준 전 세계 5000만명 이상의 인플루언서 중 4%에 해당하는 200만명 가량의 전업 인플루언서의 성공만을 보고 있다는 것이다.
인플루언서의 시대다. 지난 해 방영된 일반인 대상 연애 프로그램에서는 출연자 8명 중 5명이 팬들과의 소통을 이유로 유튜브를 개설, 운영 중이다. 팬들은 예능 프로그램의 편집 속에 가려졌던 출연자의 일상 속 색다른 매력에 호기심을 느낀다. 이들이 공개하는 ‘본업 모먼트’에는 브랜드의 앰배서더로 활동하거나 주요 브랜드에서 하는 팝업 행사에 초청받거나 광고 촬영 등에 나서는 일정이 주를 이룬다. 어느 순간 협찬 또는 광고 제품들이 등장하기 시작하고 팬들의 요구사항을 반영해 사연 있는 아이템을 제작해 판매하기도 한다. 결과는 완판 행진으로 댓글은 끝 없이 이어진다. “다음 구매 가능 시점은 언제인가요.”
신간 ‘인플루언서 탐구’에서 영국 태생의 저자 올리비아 얄롭은 전통적인 광고 업계에서 일하다가 디지털 마케팅 업계로 환승한다. 어릴 적 남다른 감성으로 소셜미디어서비스(SNS) ‘텀블러’에서 수많은 관심을 받은 적도 있지만 분명 그때는 ‘온라인에서 인기 있는 아이=현실 속 별 볼일 없는 아이’ 공식이 통하던 때였다. 싸이월드에서 화제가 됐던 ‘나는 ㄱr끔 눈물을 흘린다’는 멘트 속 채연의 눈물 셀카 역시 많은 이들의 마음 한 구석을 건드리는 데가 있었지만 무언가 유치하고 과한 감성으로 취급됐다. 적어도 공개적인 입장을 낼 때는 그래야 했다. 하지만 최근의 소셜 미디어 업계는 달라졌다. 영국에서 쌍둥이 노래 듀오로 인기를 끌고 틱톡에서 650만명의 팔로워가 있는 ‘맥스앤하비’를 만난 저자는 충격을 받는다. “열여섯 살의 난 서툴렀지만 그들은 전략적이고 자의식으로 가득했다. 자신들의 팬덤을 다루는 데 능숙했다.”
저자는 이때부터 인플루언서 탐구라는 여정을 시작한다. 흥미롭게도 인플루언서 비즈니스가 산업의 형태를 갖추게 된 건 2008년 전 세계를 강타한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다. 전통적으로 유망한 직장들에 취업하기가 어려워졌고 구직장에서 블로그를 시작하고 경력 대신 전문적 존재감을 키우는 수단으로 소셜 미디어를 이용하기 시작한다. 이때 청년층 사이의 불안감은 ‘스스로를 고용하라’는 움직임을 부추겼다. 전통적인 직업 경로에서 이탈하는 이들이 자기 표출을 위한 대안적인 방식을 찾는 동시에 새로운 수익 창출 통로를 찾아야 한다는 압박감이 인플루언서가 되는 것을 택하게 했다는 것이다.
동시에 전통적 체제에 대한 불신은 전문가와 언론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졌고 그 빈틈을 채운 건 인플루언서들과 브랜드가 채웠다. ‘언니의 마음으로 알려주는 정보’들에 대한 수용성이 더 높아진 것이다. 그 결과 미디어킥스에 따르면 2015년만 해도 5억 달러 규모의 인플루언서 산업은 2020년 100억 달러로 20배 성장했다. 처음에는 브랜드의 광고판 역할을 하던 인플루언서 역시 브랜드 앰배서더나 컬래버레이션, 자신만의 독자적인 제품 제작으로 나아가며 기업화한다. 이를 두고 크리에이터 액셀러레인터인 젤리스맥의 휴고 앰셀럽 부사장은 말한다. “크리에이터는 뭔가를 창작하는 사람이 아니라 제약 없이 규모를 키우는 개인입니다.”
하지만 간과할 수 있는 사실은 인플루언서의 수명 역시 줄어든다는 점이다. 인플루언서를 뜨게 하지만 동시에 지게도 하는 알고리즘 때문이다. 1000명의 페이스북 친구=1만명의 인스타그램 팔로워=10만명의 틱톡 팔로워라는 공식이 나오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저자는 빠르게 인플루언서를 키운 알고리즘이 인플루언서 생태계의 지속 가능성을 위협할 수 있는 요소로 봤다. 저자의 인플루언서 여정은 어떻게 됐을까. 스폰서 광고 대신 실패기가 책으로 남았다. 2만3000원.
정혜진 기자 madein@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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