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띵플리] 7. 꽃잎처럼 흩날리는 그리움 너머 : 방탄소년단 - 봄날(Spring Days)
띵플리. 국내외 ‘띵곡(명곡)’들 속 이야기와 가사를 통해 생각(Think)거리를 선물하는 ‘플레이리스트’. 계절이나 사회 이슈 등에 맞는 다양한 곡을 선정, 음악에 얽힌 이야기나 가사 등과 함께 추천합니다. 음악은 시대의 감정을 반영하는 거울입니다. 장르와 시대, 국가를 가리지 않고 최신 팝 음악부터 숨겨진 명곡까지 다양한 음악 메뉴를 내놓겠습니다. 역사를 관통하는 대중문화의 역사와 흐름도 엿볼 수 있도록 구성할 계획입니다. 띵플리 일곱번째 시간에는 그리움과 위로의 정서가 고운 꽃잎처럼 물들어 있는 곡, 올해 발매 7주년을 맞은 방탄소년단의 ‘봄날’로 초대합니다.
■ 방탄소년단(BTS, 2013년 6월 13일∼) - 봄날(Spring Days)
시린 널 불어내 본다
연기처럼 하얀 연기처럼… 아침은 다시 올거야
어떤 어둠도 어떤 계절도
영원할 순 없으니까
벚꽃이 피나봐요
이 겨울도 끝이 나요
보고싶다 보고싶다 …그리움들이 얼마나 눈처럼 내려야 그 봄날이 올까
방탄소년단의 대표곡 ‘봄날’이 지난 2월 발매 7주년을 맞았다. 방탄소년단을 잘 모르고 관심이 적더라도 한번쯤은 들어봤을 가장 대중성 높은 곡이다.
2017년 2월 13일 ‘윙스(WINGS) 외전: 유 네버 워크 얼론(You Never Walk Alone)’의 타이틀곡으로 세상에 나왔다. 서정적이면서도 캐치한 선율이 도입부터 귀를 녹이고, 시적인 우리말 가사도 뭉클하다. 쉬운 단어들로 쓰여진 보편적 노랫말로 보이지만 RM과 슈가 등 멤버들이 경험을 녹여 진심을 담아 썼다.
데뷔곡 ‘노 모어 드림’(No More Dream) 이후 ‘불타오르네’, ‘쩔어’, ‘피 땀 눈물’ 등 강렬한 퍼포먼스가 돋보이는 이전의 타이틀곡들과 결을 달리했는데, 대성공이었다. 데뷔 이후 ‘학교 3부작’과 ‘화양연화’ 시리즈를 통해 또래 사이에서 팬덤을 키워 온 방탄소년단이 대중성을 높이고, 팬층도 다양한 세대로 더욱 넓힌 시기다.
곡 분위기를 그대로 시각화한 듯한 아름다운 라이브 무대로도 유명하다. 칼군무는 이전 무대와 다를 것 없이 완벽하게 완급을 조절하면서도, 떨어지는 꽃잎과 그리움을 함께 표현하는 듯한 안무가 서정성을 극대화 한다. “허공을 떠도는 작은 먼지처럼 작은 먼지처럼”이라는 파트의 가사를 소화하면서 무대를 가로지르는 지민의 춤선은 특히 유명하다. 그리움과 상실, 곡의 메시지를 몸짓과 동선으로 풀어내는 연극 무대처럼 보이기도 한다.
■7년 내내 매일 차트인 진기록…
이 노래는 수많은 기록을 썼다. 공개 이후 지난 7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국내 최대 음원 사이트 멜론의 일간 차트 100위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멜론 역사상 최장 기록이다. 지난해 말 멤버들의 군 입대가 이어지자 팬들이 이들에 대한 그리움을 ‘봄날’ 감상으로 나타냈고 ‘역주행’이 시작되며 올해 1월 KBS 2TV ‘뮤직뱅크’ 1위 후보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크리스마스 시즌을 앞둔 지난 해 12월에는 80여개 국가의 아이튠즈 인기곡 차트 정상에 오르며, 겨울마다 전세계 음악 감상자들이 가장 많이 즐겨 찾는 불멸의 시즌송 머라이어 캐리의 ‘All I want for Christmas is You’를 제치는 이변도 만들어 화제를 낳았다.
2024년 4월 기준 ‘봄날’의 멜론 순위는 40위권대. 웬만큼 알려진 가수들의 신곡으로도 한번에 달성하기는 어려운 기록이다.
리더 RM은 이 곡에 대해 “한국 사람들 사이에서 오래 가고 싶은 노래로 만들고 싶다”고 했는데 이미 그 희망사항이 이뤄졌다고 볼 수 있다.
방탄소년단의 자체 웹예능 ‘달려라 방탄(RUN BTS)’ 122화 ‘달방가요’ 에피소드에서도 ‘봄날’은 ‘베스트 송’에 당당히 꼽혔다. 전세계 팬 20만 4934명이 참여한 대규모 설문 조사 결과이니 공신력은 두말할 것 없겠다. 이 조사를 바탕으로 앙케이트 퀴즈를 진행했는데, 2만표를 넘게 얻었다. 결과를 본 멤버들도 “역시 불멸의 곡”이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같은 인기의 비결은 노래가 가진 기본적 대중성 외에도 ‘동시대성’의 가치가 자주 꼽힌다. RM은 “우리와 대중은 동시대성을 공유하고 있다. 지금 당장 우리 안에 있고, 옆에 있는 이야기들을 어떤 주제로든 꺼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뮤직비디오 속 수많은 상징
노래만큼 뮤직비디오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 영상도 아름답지만 수많은 해석이 가능한 상징적 소재들도 한 몫한다. 상당히 보편적인 가사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뜻으로 해석되고 있는 것도 뮤직비디오 덕이다.
우선 뮤직비디오에는 ‘오멜라스(Omelas)’라는 여관의 간판이 등장한다. 어슐러 르 귄의 단편소설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에서 차용한 공간이다. 유토피아에 가까워 보이는 행복한 마을 ‘오멜라스’가 사실은 어두운 곳에 갇혀 인간 이하의 삶을 살아가는 한 어린아이의 희생으로 지탱되고 있었다는 설정의 이야기인데 짧지만, 많은 철학적 고민거리를 던져주는 소설이다.
따라서 ‘봄날’의 뮤직비디오 해석 역시 이 소설이 품고 있는 철학적 메시지와 연계되는 경우가 많았다. 다수를 위한 소수의 희생, 거짓으로 만든 행복, 사회적 약자와 소외된 이들에 대한 연대 등이다.
멀어져서 만날 수 없는 친구에 대한 그리움, 청춘과 성숙의 경계를 표현했다는 보다 광의적이고 보편적인 해석도 물론 많다.
앞서 방탄소년단이 다양한 콘텐츠 형식을 통해 구축해 온 ‘방탄 세계관(BU·Bangtan Universe)’ 속 인물 캐릭터들과 짝지어 보다 정교하게 분석하는 콘텐츠들도 여럿이다.
뮤직비디오에는 산더미 같이 쌓인 옷가지, 서정적인 바다 풍경, 주인 잃은 흰 운동화(지민이 바닷가에서 주워 나중에 넓은 벌판 위 나무에 걸어 준다) 같은 오브제들도 나오는데 역시 다양한 해석을 열어두는 소재들이다.
공간 분석도 재미있다. 초반에 등장하는 주요 공간은 기차역이나 열차 안, 여관 등이다. 떠나는 사람과 남는 사람, 만남과 헤어짐이 있을 수 밖에 없는 곳들이다. 이후 파도 치는 푸른 바다와 큰 나무가 있는 벌판이 후반부로 갈수록 많이 등장한다. 가사에 나오는 ‘설국열차’의 기차 칸이나 여관 ‘오멜라스’의 방과는 다르게 탁 트여 있는 공간이어서 새로운 출발을 연상하게 한다.
같은 열차를 타고서도 각자 다른 방향을 바라보고 상념에 잠긴 듯한 멤버들의 모습에서는 운명을 함께 하면서도, 개인적으로 품고 있는 고민이 엿보인다.
이런 가운데 뮤직비디오 속 다양한 이미지와 배경들이 세월호 참사를 떠올리게 한다는 해석들도 조심스레 나오기 시작했다. 뮤직비디오 속 더 많은 근거를 찾아 직접적으로 연결짓는 해석들도 많아졌다. 세탁소 안 시계가 가리키는 시간이 세월호 참사 신고 시각과 같다거나, ‘잊지 말자(Don’t Forget)’고 쓰여 있는 세탁기 위 문구, 회전 그네에 달려 흔들리는 형상이 노란 리본이라는 것 등이 여기에 활용된다. 순식간에 지나가는 장면들인데 팬들이 포착했다.
특히 해외 팬들이 이런 설명을 덧붙여 설명하는 영상을 올리면서 세월호 참사에 대해 잘 알지 못했던 다른 나라 감상자들이 이 사건을 알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물론 확대 해석이라는 의견도 있지만, 하나의 뮤직비디오를 통해 사회적 이슈를 주제로 한 다양한 콘텐츠와 해석들이 재생산되는 것 자체가 이 노래와 방탄소년단의 영향력을 보여준다.
뮤직비디오를 만든 룸펜스는 주인 잃은 신발에 대해 ‘사회적 약자’라고 설명했다고 한다. 뮤직비디오의 역할에 대해서는 “방탄의 메시지를 다른 형식으로 발화하는 입체적 과정”이라는 설명도 붙였다. 방탄소년단의 세계관과 소비자들의 수요를 완벽하게 이해한 영리한 연출이 음악을 다시 돋보이게 한 대표 사례다.
■ ‘스토리 쇼잉’의 힘… 트랜스미디어로
방탄소년단은 이렇게 수많은 해석에 대해서 결론을 내지 않는다. 따로 설명하지도 않는다.
박경장 문학평론가는 최근 펴낸 책 ‘BTS, 인문학 향연’에서 이렇게 여러 여지를 남기는 뮤직비디오에 대해 “보여줄 뿐(showing) 설명하지(telling) 않는다”고 했다. ‘스토리텔링’이 아닌 ‘스토리쇼잉’이다.
박 평론가는 이 책에서 “메타포와 상징, 서사와 드라마, 상이한 매체들 사이의 대화를 읽어내는 것”과 “뮤직비디오 텍스트에서 흩어진 이미지 조각들을 하나의 형상으로 재창조 하는 몽타주 작업”에 대해 오로지 감상자의 몫이라고 도 했다.
이러한 무한확장의 가능성이 일명 ‘방탄 세계관’에 많은 이들이 열광하게 했다.
방탄소년단 멤버 7명은 앞서 선보였던 ‘화양연화’ 시리즈와 ‘윙즈’ 쇼츠필름 등 여러 영상 콘텐츠를 통해 각자 아픈 사연을 가진 청춘 캐릭터를 소화했다. 감정의 변화가 격렬한 청춘 시절에 겪을 법한 가족, 친구, 학교 내의 다양한 갈등 양상들을 보여준다. 성장통과 그로 인한 상처, 트라우마, 기억 등이 타임슬립 소재와 함께 복잡하게 얽혀 있다. 이같은 서사 구조를 국내외 감상자들이 다양한 해석과 함께 굴리며 눈덩이처럼 불려나갔다.
‘봄날’이 수록된 앨범은 ‘윙즈’의 외전인만큼 전작 영상들과 연계한 해석이 나올 수 밖에 없다. 봄날보다 1년 후 나온 ‘Fake Love’ 뮤직비디오의 경우 앞선 캐릭터들의 서사를 모르면 정확히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다. 이처럼 수 년에 걸쳐 여러 뮤직비디오 속 소재를 정교하게 이어가고, 엮어가고, 때로는 비틀면서 ‘보여주는’ 방탄세계관의 서사를 따라가다 보면 며칠 밤 꼬박 새우는 것은 일도 아니게 된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국내외 팬들이 유입되기도 했다. 수억 회를 넘어서는 뮤직비디오 영상 자체는 물론 리액션 영상, 다양한 해석 영상콘텐츠, 그리고 그 해석영상에 대한 리액션 영상까지 넘쳐난다.
제작자가 심어놓았을 법한 단서를 찾기 위해 장면 하나하나를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숨은그림찾기 하듯 의견을 공유한다. ‘윙즈’에는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등 문학적 차용이 곳곳에 있는것을 포함, 그림작품, 클래식 등을 연상시키는 소재도 많다 보니 감상하는 이들도 인문학과 예술, 역사 등과 연결지으며 지적 호기심을 채우고 있다.
방탄소년단 콘텐츠와 성공 전략 등에 대한 논문과 수많은 인문서가 쏟아질 수 있는 이유다.
전문가들은 이를 놓고 ‘트랜스미디어 전략’이 주효하게 적용된 디지털미디어 시대의 생명력으로 해석한다. 이에 대해서는 홍석경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의 진단이 잘 알려져 있다. 하나의 매체에 갇히지 않고 다양한 미디어 장르의 경계를 넘어 끊임없이 콘텐츠를 재생산한다는 것이다.
방탄소년단이 중소기획사의 설움을 극복하고 성장해 온 실제 서사와 정교하게 만들어진 캐릭터 세계관의 큰 두 줄기가 주를 이룬다. 여기에 추가되는 팬들과의 라이브방송, 다큐·예능콘텐츠 등 다양한 층위의 콘텐츠들이 겹겹이 쌓이고 얽히면서 방대한 그물이 짜여진다. 이렇게 만들어진 콘텐츠 파워의 원심력을 소비자들이 ‘놀이’와 ‘학습’, ‘팬심’을 통해 스스로 키워가는 구조라는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방탄소년단 메시지 속 힘의 근원은 ‘봄날’과 같은 곡이 품고 있는 공감과 위로의 힘에 있다. 언제나 결국에는 기본으로 돌아가게 된다.
■ 우리의 남은 봄날을 위해
‘봄날’을 듣는 이에 따라 지난 주말의 벚꽃놀이 풍경을 그려볼 수도 있고, 어렸을 적 기차여행을 떠올릴 수도 있다. 정말 그립고 보고싶은 누군가나 잊고 지냈던 기억 저편의 친구를 생각하는 이들도 많다. 이 노래의 뮤직비디오 댓글이나 스트리밍 사이트 감상평 란을 보면 자신이 그리워하는 누군가에 대한 편지를 남겨놓는 이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앞서 언급한 다양한 해석에 따라 힘들어 하고 있는 어떤 이웃이나 동료를, 꽃다운 나이에 스러져 간 이들을 떠올리는 사람들도 있다.
나의 경우 뮤직비디오 속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옷가지들을 보며 ‘나에게는 맞지 않았던, 허울 뿐이었던 욕심’ 같은 것들을 생각한다. 강릉의 푸른 바닷가 풍경에서 고교 시절 향수도 떠올린다.
불안정했던 청춘의 터널을 지나 그 끝자락에 와있는 듯한 느낌의 곡에서 묘한 안정감도 선물 받는다. 성숙의 시작, 희망의 씨앗, 서로를 기다리고, 위로하고, 보듬을 줄 아는 마음이 보여서겠다. 그리고 ‘기억해야 할 사람들을 의식적으로 기억하자’고 다짐한다. 커다란 나무 위에 신발을 걸어두듯이.
오는 4월 16일은 세월호 참사 발생 10년이 되는 날이다. 감정의 근본이 무너지는 듯했던 충격과 슬픔이 시간이 지날수록 옅어졌고, 잊고 지내는 날이 많았고, 우리 사회에 피로도를 준다는 2차 가해적 프레임이 덧씌워지는 것을 보며 애써 외면하기도 했다. 정도의 차이가 있더라도 조금이라도 정파적 ‘이해’와 ‘오해’가 더해지면 이 일은 금방 왜곡됐다. 지난 10일 끝난 총선에서도 귀를 의심하게 하는 막말과 저열한 공세는 난무했다. 그런 모습을 보며 우리의 봄날은 일정 부분 망쳐졌다. 하지만 과정이 어쨌든 ‘출발’의 시점이 되면 사람들은 다시 희망을, 반성을, 화합을 말한다. 별로 믿어지지 않는 얘기다.
어지러운 뉴스 대신 ‘봄날’을 듣는다. ‘화양연화’라는 아름다운 성장을 뒤로 하고 또 하나의 계절이 지나간다. 이 노래의 가사도 곱씹어 본다. 얼굴 한 번 보는 것조차 힘들어진 사람들이 늘어나고, 마음이 온통 겨울뿐이라도 시간은 달려가고 있다.
이 노래는 ‘우리 안과 옆의 이야기’라고 했던 RM의 말을 다시 떠올린다. 보고 싶은 사람, 손 내밀어 도와줄 수 있는 사람, 그런 보통의 ‘안과 옆’ 사람들의 힘으로 우리는 잔인한 봄날도 씩씩하게 걸어왔다.
You Never Walk Alone. 당신이 외로이 혼자 걷게 하지 않을 것이라는, 그 소중한 마음 위로 꽃잎이 흩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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