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태 기자의 책에 대한 책] "주머니에 책이 들어 있지 않다면 그는 군인이 아니다!"

김유태 기자(ink@mk.co.kr) 2024. 4. 12.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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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떠보니 전쟁터라고 상상해보자.

책 '전쟁터로 간 책들'은 "어떤 물건으로도 해소되지 않는 감정인 죽음의 공포와 불안을 이겨내려 군인들은 책을 읽었다"고 쓴다.

전쟁 당시 미국 군인들에게 보급됐던 서적인 '진중문고'를 미국인 시각에서 넓고 깊게 분석한 책이다.

천막으로 지은 군용 막사에서 식사를 기다리면서, 또 참호 속에 틀어박혀 고향을 생각하면서, 군인들은 주머니에서 책을 꺼내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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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세계대전 당시 책 1억부를 전쟁터로 보냈던 이유

눈을 떠보니 전쟁터라고 상상해보자. 비가 내려 질퍽한 참호에 벌레가 꼬인다. 옆자리의 동료 환부에서 피가 울컥 뿜어져 나온다.

거기에 찜통 더위, 장티푸스 감염의 위험, 언제 날아들지 모르는 포탄 때문에 온몸의 털이 곤두선다. 세상을 보는 눈이 냉정해진다. 이제 아무도 사랑할 수 없을 것만 같다.

무엇이 삶을 치유하고 회복시킬 수 있을까.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군인들은 놀랍게도 극단의 공포를 이겨내기 위한 최후의 물건으로 책을 읽었다. 책 '전쟁터로 간 책들'은 "어떤 물건으로도 해소되지 않는 감정인 죽음의 공포와 불안을 이겨내려 군인들은 책을 읽었다"고 쓴다. 전쟁 당시 미국 군인들에게 보급됐던 서적인 '진중문고'를 미국인 시각에서 넓고 깊게 분석한 책이다.

육군과 해군 소속 병사들에게 미국 정부가 책을 제공한 건 남북전쟁 이후였다. 제1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책은 군인의 필수품으로 통했다. 그러나 예산은 언제나 부족했다. 책보다 총알이 급했다. 소규모 부대에는 책이 보급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러한 불합리를 역류시킨 위대한 군인이 있었으니, 당시 34세였던 중위 레이먼드 L 트라우트먼이었다.

컬럼비아대에서 수학한 트라우트먼은 학부 재학 즈음에 서점을 경영했다. 그는 육군에서 5년을 복무하면서 '육군 도서관과 책임자'로 선발됐다.

당시 미국 정부는 '병사 한 명당 1권의 책'을 원칙으로 삼았지만 1000명 미만 부대엔 배정된 예산이 없었다.

트라우트먼은 꾀를 낸다. 도서관 사서를 대상으로 책 수집 운동을 벌인 것. 뉴욕의 한 사서가 책 수천 권을 모으자 미국도서관협회는 전국 사서를 동원키로 결정한다.

1933년 나치가 유럽에서 불태운 서적은 1억권쯤 되는데, 미국 진중문고는 1억2000만부를 넘어섰다. 사서들이 확보한 책이 전장으로 떠났다. 부두에는 책 상자가 도열해 있었다.

군인들에게 책은 휴대하기 좋고 쉽게 집을 수 있는, 가장 간편한 엔터테인먼트였다. 천막으로 지은 군용 막사에서 식사를 기다리면서, 또 참호 속에 틀어박혀 고향을 생각하면서, 군인들은 주머니에서 책을 꺼내 읽었다. 군인들은 책을 교환했다. 책에는 그리운 고향이 담겨 있었고 보고 싶은 어머니가 밥을 짓고 있었으며 사랑하는 애인의 얼굴이 또렷하게 그려져 있었다.

그러다 보니 군인들 사이에선 이런 말도 나왔다. "주머니에 책이 한 권 들어 있지 않으면 그는 군인이 아니다!"

절망의 고통으로 몸부림칠 때 독서는 단지 다른 세상을 기웃거리는 염탐만은 아닐 것이다. 책은 고통을 잊게 해준다. 독서는 지옥과도 같은 현실로부터의 도피다. 이 도피는 현실로부터의 망각을 넘어 희망을 찾으려는 낙관적인 도피다.

그렇다. 펜은 칼보다 강하다. 책은 총보다 더 강했다.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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