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문일답] 이창용 한은 총재 "사과값, 금리로 잡을 문제 아니다"
이 총재는 12일 금융통화위원회 통화정책 방향 회의 후 기자간담회에서 "농산물 등 물가 수준이 높은 것은 통화정책이나 재정정책으로 해결할 문제가 아니다"라며 "지금과 같은 정책을 계속할지 농산물 수입을 통해 근본적으로 이런 문제를 해결해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더불어 "근원물가 상승률은 예상대로 움직이고 있지만 유가가 어떻게 변할지 모르기 때문에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지켜봐야 한다"며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3%보다 높아지거나 지연되면 하반기 금리인하가 어려울 수도 있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다음은 이 총재와의 일문일답.
-금통위원들의 3개월 내 금리 전망이 궁금하다.
▶개별 위원의 3개월 내 기준금리 수준에 관해서는 지난 2월과 동일하다. 저를 제외한 여섯 분 중 다섯 분은 3개월 후에도 3.50%를 유지하는 것이 적절하단 견해, 나머지 한 분은 3.50%보다 낮은 수준으로 인하할 가능성도 열어둬야 한다는 견해였다.
그 이유와 관련해선 다섯 분은 근원물가와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물가목표 수준에 수렴한다는 확신이 들 때까지 긴축을 지속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나머지 한 분은 공급 측 요인의 불확실성에도 불구하고 기조적인 물가 둔화 추세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고 내수 부진이 이어지면 이에 대한 대응도 필요하기 때문에 금리인하 가능성을 열어둬야 한다고 했다.
-통화정책방향문을 보면 소비자물가보다 근원물가 둔화세가 강조된 것 같다. 헤드라인 물가와 근원물가 중 어느 쪽에 더 방점을 두고 있나.
▶사실 그동안은 근원물가와 헤드라인 물가가 같이 움직였는데 이제 차별화하고 있기 때문에 어떤 부분에 웨이트(중점)를 둘지 한마디로 말하긴 어렵다.
기본적으로 통화 정책은 수요를 조정하는 것이다. 이에 공급 측 요인이 많이 작용하는 부분을 뺀 근원물가를 보는 게 더 의미 있단 견해도 있다. 다만 여러 가지 물가의 기대심리는 소비자물가 영향을 많이 받는다. 둘 다 보면서 조정해야 한다.
지금 고민하는 건 근원물가가 예측대로 둔화해 통화 정책을 끌고 가고 싶은데, 농산물과 유가가 많이 올라서 헤드라인 물가는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 그래서 물가 불확실성은 더욱 커진 상황이다. 한두 달 정도는 헤드라인 물가가 예상한 흐름대로 움직이는지 좀 더 볼 필요가 있다.
-전 세계적으로 금리인하 지연 가능성 높아진 것 같다. 특히 지난 2월 통화긴축 기조를 '충분히 장기간' 유지하겠단 표현이 이번에는 '충분히'로 바뀌었다. 어떤 의미인가.
▶지난 2월에 6개월 이내 금리와 관련해선 제 사견으로 상반기에는 금리인하 어렵지 않겠나 하고 말씀드린 적 있다. 지금 말씀드리면 저를 포함한 금통위원 전원이 하반기 금리인하 가능성을 예단하긴 어려운 상황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근원물가 상승률은 예상대로 움직이고 있지만 유가가 어떻게 변할지 모르기 때문에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지켜봐야 한다. 연말 소비자물가가 2.3%에 부합할 건인지가 가장 중요하다. 예상대로 유가가 안정돼서 2.3%까지 간다면 금통위원 전체가 하반기에는 금리인하를 배제할 수 없단 의견 갖고 있다. 반면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3%보다 높아지거나 지연되면 하반기 금리인하 어려울 수도 있는 상황이다.
'장기간'이란 표현을 뺀 것은 장기간 문구를 유지하면 (금리인하를) 하반기에 할 수 없다는 메시지가 될 수 있고, 그렇다고 다 없애면 하반기에 (인하를) 하겠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 비유를 들자면 한은이 '금리인하 깜빡이를 켰다'는 표현을 많이 하더라. 사실 깜빡이를 켠 거면 (인하를) 한다는 얘긴데, 지금 상황은 깜빡이를 켠 것이 아니고 '깜빡이를 켤까 말까' 하는 것을 생각하고 있다.
-미국보다 한국이 먼저 금리를 내리는 상황도 고려하고 있는지.
▶미국의 금리인하 시점이 지연되고 있는 것은 사실인 것 같다. 미국보다 먼저 인하할 것인가 하는 문제와 관련해선 미국이 계속 금리를 인상하는 기조에선 환율 등 여러 제약이 있어 마음대로 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지금 문제는 미국이 피벗(통화정책 전환)을 하긴 할 텐데 시점에 관한 문제다. 통화정책에 주는 영향이 예전과는 다른 상황이다. 전 세계적으로 금리 정책에 대해 탈동조화가 되고 있다고 본다.
미국이 피벗에 대한 시그널을 줬기 때문에 탈동조화는 이미 시작됐다. 제 말은 미국보다 (인하를) 먼저 하겠단 것도, 나중에 하겠단 것도 아니다. 과거에는 미국의 자료를 굉장히 많이 보고 결정을 했다면 지금은 국내 소비자물가를 보는 게 더 크다는 뜻이다. (결과적으로 인하를) 먼저 할 수도, 뒤에 할 수도 있다.
-앞서 국제유가가 배럴당 90달러를 넘기면 물가 전망에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물가 상승률 전망의 상향 가능성이 있나.
▶2월 전망에선 유가가 80달러 후반에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최근 유가를 보면 90달러를 넘었다 다시 내려왔다. 다만 저희 전망은 평균을 본다.
유가가 잠시 올라갔다 내려가면 전망에서 벗어나지 않는데, 장기간 90~100달러에 머물면 당연히 전망을 바꿔야 할 것이다. 농산물 가격은 시간이 지나면 안정될 것으로 보는데 유가는 이란-이스라엘 문제도 있고 불확실성이 커 예단하기 어렵다.
-지난 2월에는 물가 불확실성이 이전보다 줄었다고 했다. 지금은 국제유가 오르고 환율도 최고치를 찍었는데 2월과 비교해 불확실성이 늘었다고 보나.
▶지금 상황에서의 불확실성은 당연히 커졌다. 유가가 예상보다 많이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 투자은행(IB)들이 미국 금리인하 시점을 9월 이후까지도 전망하고 있다. 한은은 어떻게 보고 있나.
▶미국의 정책금리 인하 기대가 6월보다 뒤로 미뤄진 것은 사실 같다. 이것이 우리 통화정책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는 환율, 특히 환율이 물가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봐야 한다.
-국내 물가나 미 금리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져 통화정책을 분명히 하기 어려운 상황 같다. 5월 전망 땐 좀 더 선명한 신호를 줄 수 있나.
▶5월 전망은 굉장히 중요하다. 상반기에 예측하지 못한 유가 등 여러 변수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5월에는 하반기 통화정책을 확실히 할 수 있냐고 한다면 5월도 중요하지만 한두 달 더 봐야 할 것 같다.
5월 전망에서도 말씀은 드리겠지만 개인적인 생각으론 두 번 정도 데이터를 더 보고 확신을 갖는 게 좋을 것 같다. 섣불리 금리를 움직였다가 물가가 다시 오르면 왔다 갔다 하는 상황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금통위원 두 명이 교체된다. 포워드 가이던스(정책 방향 예고)에 변화가 있는지.
▶포워드 가이던스는 내부적으로 스터디하고 있다. 앞으로 어떻게 할지는 새로운 금통위원이 오면 의견을 반영해서 얘기해 봐야 할 것 같다. 다만 지난번에 말씀드린 대로 올해 중에 바꾸긴 어렵다. 바꾼다 하더라도 준비하고 테스트도 해봐야 하기 때문이다. 내부적으로 연구를 진행 중이.
-물가 수준 자체가 높아서 국민들이 고통을 겪고 있다. 물가 수준을 고려해서 물가 상승률 목표를 현재의 2%보다 아래로 낮추는 것은 고려하지 않나.
▶현재 물가 수준이 높기 때문에 물가 상승률을 한동안 낮게 유지하는 '에버리지 인플레이션 타기팅'은 오히려 변동성을 키울 수도 있다. 국제적으로 비교할 때 우리는 농산물과 주택 등 물가는 상대적으로 높지만 전기와 교통 등 유틸리티 부문은 상대적으로 낮다.
중앙은행이 곤혹스러운 점은 사과 등 농산물 가격이 높은 것은 기후변화 등이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농산물이 CPI(소비자물가지수)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8%인데 최근 2∼3개월 동안 우리 CPI 오른 것의 30% 정도가 농산물의 영향을 받았다. 과실이 CPI 비율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5%지만 과실 가격 상승이 최근 CPI 오른 것의 18% 정도다.
농산물 가격, 사과 가격이 오르면 서민 생활에 직접 영향을 주고 정부가 나서서 보조금도 주고 물가를 안정시키려고 노력할 수밖에 없다. 금리로 잡을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니까.
그런데 기후변화로 작황이 변했는데 재배면적 늘리고 재정을 쓴다고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재배면적을 늘렸는데 기후가 좋아서 농산물 생산이 늘어나면 가격이 폭락해 생산자는 어려워지고 또 재정을 투하해 보조하게 된다. 반면 기후가 나빠졌다고 하면, 재배면적이 크더라도 생산량이 줄어 보조해야 하는 문제가 생긴다. 참 불편한 진실인데, 농산물 등 물가 수준이 높은 것은 통화 재정 정책으로 해결할 문제가 아니다.
이제 근본적으로 생각해봐야 할 때다. 기후변화 등이 심할 때 생산자를 보호하기 위해 지금 같은 정책을 계속 수립할 것이냐, 이게 국민의 선택이라면 그렇게 할 수도 있고 그게 아니면 수입을 통해 근본적으로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다. 이제는 구조적인 문제를 고민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후변화 등 때문에 생기는 구조적인 변화에서 우리 국민의 합의점이 어디인지 등을 생각해봐야 하는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근원물가 상승률과 관련해선 올해 말 2% 수준까지 낮아질 것으로 예측했다. 소비자물가는 어떻게 보나.
▶지난 2월 전망 때 근원물가 상승률은 하반기 2.0%, 소비자물가는 2.3%로 발표했다. 근원물가는 현 추세를 보면 2.0%에 수렴할 것으로 생각한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3%에 갈 것인지는 무엇보다 유가에 많이 달렸다. 예단하기 어려워 몇 달 더 살펴보고 결정하겠다.
강한빛 기자 onelight92@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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