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떠다니는 군사기지' 루스벨트함…3초 만에 전투기 출격

제주 남방서 실시된 한미일 해상훈련 참여…미 7함대 기함 역할
북핵·미시일 위협 대응 한미일 해상훈련 3국 언론에 첫 공개

미 항모 루스벨트함에서 출격하는 전투기 (루스벨트함=연합뉴스) 국방부 공동취재단 = 11일 제주 남방 공해상에서 실시된 한미일 해상훈련에 참여한 미 해군 항공모함 시어도어 루스벨트함(CVN-71·10만t급) 비행갑판에서 출격하는 F/A-18 '슈퍼 호넷' 전투기 모습. 2024.4.12 [국방일보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루스벨트함·서울=연합뉴스) 국방부 공동취재단 김호준 기자 = 11일 제주 남방 공해상에서 실시된 한미일 해상 훈련에 참여한 미 해군 항공모함 시어도어 루스벨트함(CVN-71·10만t급) 비행갑판. 한 승조원이 손을 들어 올리자 고막을 찢을 듯한 굉음을 내며 F/A-18 '슈퍼 호넷' 전투기가 출격했다.

활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뛰쳐나간 전투기는 허공에서 잠시 왼쪽으로 날개가 기우는 듯하더니 이내 자세를 바로잡고 하늘로 솟구쳤다.

3초 만에 전투기가 떠나간 비행갑판은 '캐터펄트(catapult·사출장치)'가 만들어 낸 매캐한 연기와 수증기로 뒤덮였다. 동시에 엄청난 열기와 몸이 휘청일 정도의 후폭풍이 멀찍이 떨어져 있던 한미일 언론사 소속 취재진을 덮쳤다.

취재진이 비행갑판에 머물렀던 약 10분 동안 5대가 넘는 전투기가 승조원들의 수신호에 맞춰 순식간에 항모를 박차고 날아올랐다.

미 항모서 이륙 준비하는 F-18E 전투기 (동중국해 AP=연합뉴스) 11일 동중국해에서 합동 훈련 중인 USS 시어도어 루스벨트 항공모함에서 F-18E 전투기가 이륙 준비를 하고 있다. 한미일 3국 해군은 중국, 북한의 위협에 맞서 사흘 동안 합동 훈련을 벌이고 있다. 2024.04.12 passion@yna.co.kr

미 해군은 이날 한미일 해상 훈련을 이끈 루스벨트함을 한미일 취재진에게 공개했다. 미군이 한미일 해상 훈련 현장을 3국 공동취재단에 공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한 한미일의 단호한 대응 의지를 과시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한미일 취재진은 일본 오키나와 카데나 공군기지에서 C-2 '그레이하운드' 수송기를 타고 미 7함대에서 기함 역할을 하는 핵추진 항공모함 루스벨트함에 착륙했다. 수송기는 굵은 쇠줄인 '어레스팅 와이어(arresting wire)'에 물고기처럼 걸려 비행갑판 중간에 딱 멈춰 섰다.

항모 비행갑판은 지상 활주로보다 훨씬 짧기 때문에 항공기가 착륙할 때는 굵은 쇠줄로 잡아주고, 이륙할 때는 캐터펄트로 쏘아준다.

루스벨트함 관계자는 "캐터펄트는 멈춰있던 항공기를 3초 만에 시속 160마일(약 249㎞)로 달리게 만드는데, 이 과정에서 탑승자는 지구 중력의 3배에 가까운 가속도를 체험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미 항모 참여 한미일 해상훈련 (서울=연합뉴스) 한국과 미국, 일본 함정들이 11일 제주 남방 공해상에서 북한의 핵ㆍ미사일 위협에 대한 공동 대응능력을 높이기 위한 한미일 해상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아래쪽부터 한국 해군 이지스구축함 서애류성룡함, 미국 해군 항공모함 시어도어 루스벨트함, 일본 해상자위대 구축함 아리아케함. [해군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2024.4.12

루스벨트함 갑판에는 F/A-18은 물론 EA-18G '그라울러' 전자전기, MH-60 '시호크' 해상작전헬기 등 함재기들로 빼곡했다. 루스벨트함과 같은 니미츠급 항모들은 통상 웬만한 나라 전체의 공군력과 맞먹는 90여 대의 함재기를 싣고 다녀 '떠다니는 군사기지'로 불린다.

루스벨트함은 영화 '탑건: 매버릭'의 하이라이트인 전투기 이·착함 장면이 촬영된 항모로도 잘 알려졌다.

한미일 취재진이 수송기에서 내려서 함내로 들어가는 도중에는 함재기에 장착될 공대공미사일로 보이는 무장들도 눈에 띄었다.

루스벨트함 내부는 기지 하나를 통째로 바다 위로 옮겨놓은 것처럼 복잡했다. 숙련된 승조원의 안내가 없다면 함선 내에서 길을 잃기 십상이다.

함장실에는 이 항모 이름의 주인이자, 미국의 제26대 대통령인 시어도어 루스벨트를 다룬 사진과 흉상들로 가득했다. 함장실 벽면의 장식장에는 루스벨트 대통령을 모티프로 한 인형인 '테디 베어'도 놓여 있었다.

함장실 옆방에는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와 북미 아이스하키리그(NHL)의 유명 선수들이 직접 사인한 야구 배트와 하키 스틱이 걸려 있는 '큰 몽둥이 선반(big stick rack)'이 있다.

재임 시절 군사력을 강조하며 강경한 대외정책을 펼쳤던 루스벨트 대통령의 '빅 스틱(실력행사)' 외교 기조를 연상케 했다.

미 제9항모강습단의 알렉산더 단장 (루스벨트함=연합뉴스) 국방부 공동취재단 = 미국 해군 제9항모강습단의 크리스토퍼 알렉산더 단장(해군 준장)이 11일 제주 남방에서 실시된 한미일 해상훈련 관련 한미일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는 모습. [국방일보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2024.4.12

이날 루즈벨트함이 소속된 미 제9항모강습단의 크리스토퍼 알렉산더 단장(해군 준장)은 한미일 취재진과 만나 "이 지역의 위대한 동맹인 한국 해군, 일본 해상자위대와 함께 일하게 돼 매우 기쁘게 생각한다"며 만족감을 표시했다.

이번 해상 훈련에는 루스벨트함은 물론 한국 해군의 이지스구축함 서애류성룡함, 일본 해상자위대 구축함 아리아케함 등 한미일 함정 6척이 참가했다.

한미일 함정들은 북한의 잠수함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등 수중 위협에 대한 대응능력을 높이기 위한 대잠전훈련을 실시했다. 아울러 북한의 불법적인 대량살상무기(WMD) 해상운송을 차단하기 위한 훈련과 조난선박 발생 때 구조절차 숙달을 위해 수색·구조훈련도 병행했다.

알렉산더 단장은 "이번 훈련은 공해상에서의 정례적인 작전이며 (사전에) 잘 조율됐다"며 "우리가 동맹국들을 직접 만날 기회인데, 이는 위기의 시기에 절대적으로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hojun@yna.co.kr

▶제보는 카톡 okje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