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양란의 좌충우돌 해외여행 15] 보케리아 시장에서 공짜 맥주 마신 사연

이지혜 기자 2024. 4. 12.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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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된 이유도 모르는 채 공짜로 마시고 나온 맥주와 콜라. 지금 생각하니 식탁보의 색깔로 식당들을 구별하는가 본데, 바르셀로나에 처음 간 우리는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신양란 작가

[여행작가 신양란] ‘보케리아 시장에 없는 것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이 말은 좀 과장이라 해도, 그런 말이 나올 정도로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그 시장엔 먹을 것이 넘쳐났다. 온갖 식재료를 파는 가게가 즐비한 것은 물론이고, 식당도 많았다. 마침 점심 무렵에 그곳에 간 우리 부부는 거기서 끼니를 해결하기로 하고 메뉴를 물색했다.

그때 내 눈에 해물찜을 먹고 있는 사람들이 들어왔다. 어찌나 푸짐하고 맛있어 보이는지 대번에 꽂히고 말았다. 마침 한국인으로 보이는 여행자도 그것을 먹고 있기에 “이 메뉴 이름이 뭐냐?”고 물어보았다. 그들은 “이름이 뭔지는 모르지만, 39유로짜리”라고 일러줬다.

그런데 워낙 인기가 많은 식당이어서인지 자리가 없었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하나 망설이고 있는데, 여자 종업원이 다가와서는 “저 자리가 곧 빌 테니 그 옆에서 기다려라”라고 했다. 아, 물론 그의 스페인어는 못 알아들었고 다만 몸짓말을 내가 그렇게 해석했다는 뜻이다.

보케리아 시장 정문을 들어선 뒤 왼쪽으로 쭉 가면 식당가가 나온다. 바르셀로나가 항구 도시이기 때문인지 해산물 요리를 취급하는 식당이 많았는데, 하필 운 나쁘게도 우리가 않은 자리의 식당은 해물찜을 취급하지 않았다.

아닌 게 아니라 그 자리가 곧 비었다. 우리가 앉자마자 그는 다가와 음료는 뭘로 할 건지 물었다. 우리는 해물찜을 먼저 주문하고 싶었지만 일단 맥주와 콜라를 주문했다.

그가 냉큼 맥주와 콜라를 가져왔고, 그제야 음식은 뭘로 할 건지를 물었다. 우리는 옆 테이블의 39유로짜리 해물찜을 가리키며 그것을 달라고 했다.

뜻밖에 그가 고개를 저으며 “해물찜은 옆집 메뉴이며 저희는 그걸 취급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런 낭패가 있나. 우리는 해물찜 먹을 생각에 그 자리에 앉은 것인데 주문할 수 없다니.

해물찜이 안 되니 할 수 없다며 일어날 수도 없는 게, 이미 맥주와 콜라가 나와 잔에 따르기까지 해버렸다. 참으로 곤란한 상황이었다. 남편은 “할 수 없으니 기왕 나온 음료나 마시고 일어서자”고 했다. 내 생각에도 그럴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바르셀로나의 근교 도시인 몬세라트는 ‘톱으로 자른 산’이라는 의미를 갖는데, 실제로 깎아지른 듯한 산세로 보는 이를 아찔하게 만든다. 그곳에 세운 몬세라트 수도원은 ‘검은 성모자상’을 보려는 여행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음료를 다 마신 다음, 남편이 음료를 가져다준 종업원을 불러 계산서를 달라고 하니 뜻밖의 말을 하는 게 아닌가. “It's free(계산할 필요 없어요).” 그러고 나서 우리가 마신 컵을 챙겨 식당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우리는 그게 무슨 말인지 순간 이해하지 못했다. 프리라면 공짜란 말인데, 설마 맥주와 콜라 값을 안 받겠다는 말일까? 아니, 왜? 그럴 이유가 없잖아? 아니면 프리에 다른 뜻이 있나?

점심시간의 식당은 몹시 붐볐고, 사람들은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으며, 우리는 종업원을 붙잡고 왜 프리냐고 물어볼 능력이 안 되었다. 할 수 없이 그냥 나오면서 계속 찜찜했다.

“왜 우리한테 돈을 안 받은 걸까? 우리가 너무 꾀죄죄해 보여서일까?”

“그래도 우린 무려 39유로짜리 해물찜을 먹으려고 한 사람인데, 설마 음료수 값이 없을까 봐.”

“우리가 식사를 하려고 한 곳이 자기네 식당이 아니란 걸 아니까 돈 받기가 미안했나?”

“그래도 어쨌든 우리가 주문한 걸 내어 온 거니까 돈을 받는다고 해도 종업원 잘못은 아닌데….”

“스페인은 원래 맥주와 콜라 인심이 후한가? 공짜로 줄 정도로…. 식당에서 빵은 공짜로 잘 주잖아.”

“설마….”

우리는 끝내 이유를 알지 못한 채, 보케리아 시장의 어느 식당에서 맥주와 콜라를 공짜로 먹은 기이한 경험을 하고 시장을 나왔다.

안토니오 가우디의 또 다른 작품인 구엘 공원 입구 쪽에 설치된 도마뱀 조각상은 바르셀로나의 마스코트이기도 하다.

|신양란. 여행작가, 시조시인. 하고 싶은 일, 즐겁고 행복한 일만 하면서 살고 있다. 저서로 <여행자의 성당 공부><꽃샘바람 부는 지옥><가고 싶다, 바르셀로나><이야기 따라 로마 여행>등이 있다.

카탈루냐 광장에서 항구 쪽으로 이어지는 람블라스 거리. 바르셀로나의 대표적인 길로, 물결무늬 바닥이 독특하다. 보케리아 시장은 람블라스 거리에 접해 있다. /신양란 작가
보케리아 시장에 없는 것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로, 그곳에는 온갖 식재료가 넘쳐난다. 사진 속 가게는 하몽을 비롯한 육가공품을 취급하는 곳이다./신양란 작가
바르셀로나를 대표하는 관광 명소인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내부. 스페인이 낳은 천재 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의 대표작으로, 현재도 공사 중이다. 가우디 사망 100주년이 되는 2026년에 완공할 예정이었는데, 코로나19 때문에 공사가 지연되어 몇 년 더 기다려야 된다고 한다. /신양란 작가
몬주익 언덕에 조성된 황영조 선수 기념비.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막바지까지 각축을 벌이던 일본 선수를 물리치고 금메달을 딴 황영조 선수를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잊지 못할 것이다. 이 기념비는 바르셀로나가 경기도와 자매 결연을 맺은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것이다./신양란 작가
람블라스 거리 끝에서 만나게 되는 콜럼버스 기념비. 콜럼버스는 오른손을 뻗어 대서양 건너 신대륙을 가리키고 있다. 신대륙의 원주민들에게는 치명적인 불행을 가져다 주었지만, 그 덕에 거대 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던 스페인 사람들에게는 영웅 대접을 받는 이가 바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이다. /신양란 작가
다양한 올림픽 성화 점화 방식 중 가장 독특하고 인상적인 것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이 바르셀로나 올림픽 개막식에서 궁수가 활을 쏘아 점화한 것이 아닐까 싶다. 바르셀로나 사람들도 그것에 자부심을 갖고 있는지 올림픽 스타디움 앞에 이런 조각상을 설치해 놓았다./신양란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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