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형원의 Insight] 인구 소멸 시대 영토를 지켜야 하는 어려움
신생아 출생률 세계 꼴찌! 자살률 1위! 한국사회는 지금 심각한 중병에 걸려있다. 현재처럼 출생률이 계속 낮아지는 추세라면 머지않아 세계에서 가장 빠른 인구소멸국이 돼 대한민국의 존립 자체가 위협받게 될 것은 아닌지 참으로 걱정되고 안타까운 심정이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필자는 1960년대 말 국민학교(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배운 애국가에서 처음으로 백두산을 알게 됐다. 동네 아이들이 줄어들기 시작하면서 지금은 폐교돼 사라졌지만 당시만 해도 교실은 콩나물시루처럼 아이들로 빼곡했던 기억이 새롭다. 70년대 중반 전 가족 이민 이후 대부분의 시간을 미국에서 보내온 필자는 대학 때 배운 국제외교 과목에서 백두산 절반을 한국전쟁 이후에 모택동(毛澤東)이 가져갔다는 것을 알고는 매우 분노했다. 이 세상에 백두산을 장백산이라고 부르는 인구가 한국사람 보다 더 많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다가왔던 것은 1988년 로스앤젤레스(LA) 타임즈 기자로 베이징을 방문했을 때였다.
베이징 지국장 데이비드 할리 집에 머무르면서 고등학교 때부터 배워왔던 만다린(普通話)을 집중해서 쓸 수 있었다. 베이징 지국에서는 정부에서 보낸 통역관 한명을 LA 타임즈가 봉급을 주며 일을 시켜야 했다.
중국인 통역관은 미국에서 온 필자와 영어 연습을 하고 싶었는지 많은 질문을 했다. 필자가 ‘1987년 한국 민주화 운동’을 취재하고 왔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한국 상황에 호기심을 보내며 더욱 관심있게 물어봤다.
중국인 통역관은 그 당시 대학원 학생이었는데, 국영TV 방송을 통해 한국에서 데모하는 시위대 영상을 많이 봤다고 했다. TV뉴스 자막에 민주주의가 혼란을 가져온다고 설명하는 영상을 보면서, “우리는 대한민국 젊은이들이 아주 용감하다고 생각한다”라며 그 당시 중화인민공화국 젊은이들의 생각을 알려줬다. 1989년 천안문 광장에 민주화를 요구하는 북경 시민들이 모이기 정확하게 1년 전이었다.
필자가 백두산에 올라가 보고 싶다고 하니까 장백산이라고 고쳐 말하면서 길이 아주 멀고 험하다고 걱정했다. 등소평(鄧小平)이 도요타 랜드크루저 4륜차를 타고 올라갔다는 장백산은 아무나 가는 데가 아니고 중화인민공화국에서도 선택받은 사람들만 방문하던 특별한 산이었다.
심양에 도착해 택시를 타고 한나절 걸려 길림성 통화시(通化市)에 다다랐다. 그 다음날 백두산 정상에 올라 긴 세월 동안 아무런 변화 없이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웅장하고 장엄한 백두산 천지를 바라보며 가슴 깊은 곳에서 울컥하고 올라오는 뜨거운 감정을 느꼈다. 곧바로 여기저기 다니면서 눈으로 흡입하고 카메라 두대로 네거티브 필름과 슬라이드 필름으로 이 역사적인 우리의 땅, 백두산 천지를 기록했다.
먼 훗날 다음 세대들이 왜곡된 역사관을 가지고 영토분쟁을 할 때 백두산은 한국 사람들의 영토라는 증빙자료로 필자의 사진이 쓰이길 기대하며 북경에 도착할 때까지 동북지역의 기차 안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기차 안에 타고 있던 많은 사람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마시고 난 빈 콜라병과 온갖 음식 쓰레기들을 차창 밖으로 내던지는 것을 보고 놀랐었다. 그 백두산이 지난 주 중국의 장백산이라는 명칭으로 유네스코(UNESCO) 세계지질공원으로 등재됐다.
저출생으로 인구소멸의 위기를 겪고있는 대한민국은 먼 미래에 우리 영토를 지킬 인구가 있을지 걱정된다. 노동현장에서는 외국인 노동자를 데려다 우리의 노동력을 대신하면서 그들이 한국에서 아이를 낳으면 한국인 국적을 주지 않는 비합리적인 제도를 이제는 과감히 뜯어고칠 때가 왔다.
미국에서 출생한 모든 아이들에게 차별없이 똑같은 시민권을 주듯이 우리도 우리 땅에서 태어난 모든 아이들이 한국인이 되도록 국적을 부여해 주는 것이 참으로 시급하고 마땅하다고 본다. 인구소멸의 재앙을 예방하기 위해 지금부터라도 각고의 노력이 절실한 시점이다.
누구나 자기가 태어난 곳이 정체성의 시발점(始發點)이다.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모든 아이들이 한국인이라는 자부심을 갖게 하려면 우선 국가에서 선진국 기준에 입각한 출생증명서를 줘야겠다.
현재 대한민국 출생등록 제도는 매우 미흡하다. 대한민국에서 태어나는 아이들이 출생했다는 것을 증명하는데, 인위적인 자격을 적용하는 것이다. 아니 어떻게 인간의 탄생에 조건을 걸 수가 있느냐 말이다.
양 부모의 결혼증명을 입증해야 되는 관료적인 요구 조건을 맞춰야만 출생등록이 가능한 한국 제도에서는, 생(生) 부모와 친(親) 부모를 구별하는 개념 조차도 없다.
누구나 결혼을 입증할 수 있는 성인은 아무 아이라도 본인 호적에 출생등록을 할 수 있다. 조선시대 가문의 대를 잇고 부를 상속시키기 위해서 생 부모와는 별개로 족보에 양자를 들여오는 제도가 고스란히 21세기 출생등록 과정에 남아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 출생증명 제도에서는 영원히 생 부모가 누군지 확인할 수 있는 구조는 없다. 아이의 인권에 입각해서 아이가 평생 생 부모가 누군지를 알 권리를 국가에서 보장해 주지 못하고 있다. 국가에서 아직까지도 생 부모를 기입한 출생증명 조차도 만들어주지 않기 때문이다.
신생아 출생이 급감하는 이 시대에 이 땅에서 태어난 모든 아이들을 제대로 대한민국 국민으로 인정하는 합리적인 제도 도입이 시급하다.
대한민국을 먼 미래에도 우리 영토를 지킬 인구가 있을 수 있게 하는 모든 결정권은 현 시대를 책임 맡은 기득권에 있다. 아이를 낳고 싶은 사회를 만들면 된다.
필자에게는 세 명의 미국 태생 아들이 있다. 첫 두 아이들이 태어났을 때 많은 행복을 가져왔다. 세 번째 아이는 웃음을 가져왔다.
첫 아이가 출산 예정보다 6주 미리 태어났을 때 병원에서 신생아 집중치료실에서 바로 못 나왔다. LA타임즈 직장에서 데스크 상관이 “Take as much time as you need to take care of your son(아들에게 필요한 시간 충분히 갖고 아들을 보살피게)”라고 해서 퇴원할 때까지 아이 곁에서 태어나서 첫 일주일 동안 작은 호스로 식도 깊숙히 주입하는 주사기에 우유를 부어 먹여주며 체중을 늘려서 퇴원할 수 있었다.
로이터통신 캐나다 파견근무 때 동료 기자 쏠라리나가 출산휴가로 1년간 자리를 비웠다. 가끔씩 그녀가 아이를 유모차에 데리고 사무실을 방문하면 동료들이 하던 일을 멈추고 돌아가며 아이를 안아주면서 아기의 탄생을 축하해 주고 기쁨을 같이 나눴다.
1년 후, 그녀가 아이와 더 많은 정을 쌓겠다고 2년으로 출산휴가를 연장했을 때는 회사에서도 기꺼이 허락했고, 모든 의료보험혜택은 근무할 때와 변함없이 유지됐다. 3년 째에는 본인이 쓰던 사무실 공간으로 바로 엊그제 일하다 며칠 쉬고 돌아온 것처럼 다시 기자로서의 커리어를 계속 이어갔다.
이 땅에서 아이를 낳고도 직장과 직업을 지속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면 한국에서도 아이를 갖지 않을 이유가 없어지리라 생각된다. 우리 농사는 외국인 노동자들을 불러다가 일을 시킬 수 있지만, 영토만큼은 외국인 노동자에게 맡길 수 없다.
hongi@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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