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 웃음코드 현대음악과 통하다…오페라 '한여름밤의꿈'

강애란 2024. 4. 12.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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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오페라단 한국 초연…환상과 현실 경계 넘나드는 무대 연출
오페라 '한여름 밤의 꿈' [국립오페라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이용숙 객원기자 = 1막부터 촘촘히 박힌 웃음 코드에 키득거리던 관객들은 휴식시간 뒤 3막이 시작되자 아예 폭소를 터트렸다.

지난 11일 국립오페라단이 한국 초연으로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무대에 올린 벤자민 브리튼(1913∼1976)의 오페라 '한여름 밤의 꿈'은 현대오페라를 두려워하는 관객들의 우려를 가볍게 날려줬다. 귀에 익숙한 스타일은 아니어도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음악, 그리고 연출의 빈틈없는 디테일로 원작보다 훨씬 풍성해진 희극성 덕분이다. 장난스러운 요정이 뿌린 마법의 꽃즙 때문에 사랑이 어긋나고 관계가 얽히는 혼란을 겪는 남녀 주인공들은 한바탕 소동 뒤에 모두 제자리를 찾고, 군주의 결혼식 축하 공연을 열심히 준비한 직공들은 관객의 열렬한 호응으로 보상을 얻는다.

연출가 볼프강 네겔레는 요정의 왕 오베론과 요정의 여왕 티타니아를 오랜 세월 서로에 대한 스트레스가 누적된 노부부로 설정했다. 부부가 만나자마자 언쟁을 벌이는 첫 장면의 배경은 요정들이 날아다니는 신비로운 숲속이 아니라 침실과 주방이 붙어있는 지극히 일상적인 주거 공간이다. 서로에게 미움과 분노가 쌓여있는 부부는 사소한 일로도 부딪히고 폭발하며, 뻔히 이해되는 그 상황을 바라보는 관객은 웃음을 참지 못한다.

오페라 '한여름 밤의 꿈' [국립오페라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당나귀로 변한 직공 보텀을 사랑하게 된 티타니아는 빅토리아 여왕의 모습으로 무대에 등장하고, 티타니아를 섬기고 돌보는 요정들의 복장은 빅토리아 시대 귀족 출신 간호사로 영국의 산업화 시기에 보건위생 및 간호 이론을 정립한 나이팅게일을 연상시킨다. 이처럼 등장인물들은 여러 차례 의상을 바꾸며 영국사의 수백 년 세월을 살아온 존재임을 보여준다.

그룹 '신화'의 멤버 김동완이 맡아 화제가 된 장난꾸러기 요정 퍽은 자기복제가 가능한 '고블린'이어서, 마치 스트라빈스키 발레의 등장인물 '풀치넬라'처럼 복제된 세 명이 같은 옷을 입고 무대를 누빈다. 의상디자이너 아네테 브라운은 이 다양한 시대의 의상 하나하나에 역사적인 의미를 담았다.

오페라 '한여름 밤의 꿈' [국립오페라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독일의 유명 무대디자이너 슈테판 마이어의 아름다운 무대와 조명은 환상과 현실의 경계를 넘나드는 연출 콘셉트를 성공적으로 구현했다. 전후좌우로 끊임없이 이동하는 여러 개의 무대세트는 실내와 숲, 인공과 자연을 하나로 통합했고, 역동적인 움직임으로 지루할 틈을 주지 않았다.

관객에게 가장 큰 웃음을 선사한 장면은 여섯 명의 직공이 펼친 3막의 극중극이었다. 이들은 원수 가문의 두 연인이 오해로 죽음을 맞이하는 비극 '피라무스와 티스베'를 공연하지만, 단순하고 소박한 직공들이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비극을 희극으로 만들어버린다. 이번 공연에서 직공들을 연기한 여섯 명의 성악가는 가창력도 모두 뛰어났지만, 저마다 탁월한 연기자인 동시에 감탄할 만한 팀워크를 과시했다. 특히 보텀 역의 바리톤 박은원과 플루트 역의 테너 강도호는 여러 차례 객석의 폭소를 끌어냈다. 이 장면에서도 역시 정교하고 치밀한 연출이 극의 재미를 더했다.

오페라 '한여름 밤의 꿈' [국립오페라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오베론 역의 카운터테너 제임스 랭은 유연하고 관능적인 음색으로 관객의 귀를 사로잡았고, 노련한 무대 장악력이 남달랐다. 명징한 고음을 지닌 소프라노 이혜정은 티타니아 역에 최고의 적역이었다. 헤르미아 역을 노래한 정주연은 따뜻하고 풍성한 음색에 안정된 레가토를 구사하는 이상적인 메조소프라노였다. 테너 김효종의 라이샌더는 곧게 뻗는 자연스러운 고음과 치밀한 표현력으로, 바리톤 최병혁은 안정적인 가창과 깊이 있는 인물 해석으로 빛났다. 헬레나 역의 소프라노 최윤정은 2막의 싸움에서 사실적인 연기로 장면의 재미를 살렸다.

이날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와 CBS소년소녀합창단을 이끈 지휘자 펠릭스 크리거는 타악과 금관, 하프와 첼레스타, 하프시코드 등이 다채로운 음색의 향연을 펼치는 이 유희적이고 풍자적인 음악의 미묘한 뉘앙스와 복잡한 리듬을 섬세하게 살렸다. 19세기 낭만주의 오페라의 과장을 조소하는 3막의 음악적 유머 감각 역시 지휘자의 손끝에서 설득력을 얻었다. 공연은 14일까지.

오페라 '한여름 밤의 꿈' [국립오페라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rosina@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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