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처 살해 혐의 ‘세기의 재판’ OJ 심슨 사망
재판 중 인종차별 부각 미국 사회 반분…결국 ‘무죄’
미국 전역을 떠들썩하게 했던 ‘세기의 재판’의 주인공인 미식축구 선수 OJ 심슨이 향년 76세로 사망했다.
프로풋볼 명예의전당 회장 짐 포터는 11일(현지시간) 성명을 내고 심슨이 전립선암을 진단받고 투병생활을 하던 중 사망했다고 밝혔다.
심슨은 1994년 전처와 그의 연인을 잔인하게 살해한 혐의로 기소돼 오랜 재판을 받은 인물이다. 형사상으로는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민사 재판에서는 혐의가 인정돼 논란이 커졌다. 사건은 미제로 남았지만, 미국의 엄격한 증거주의 판단 등에 대한 논란을 불러일으키며 ‘세기의 재판’으로 기록됐다.
심슨은 1960년대부터 전국적인 인기를 얻은 미식축구 스타였다. 그는 선수 생활 이후에도 영화배우, 광고모델로 활동했다. 그러나 1994년 6월 전처와 그 연인이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자택에서 잔인하게 흉기에 찔려 사망한 채 발견되면서 운명이 달라졌다.
당시 경찰은 사건 발생 며칠 만에 심슨을 유일한 용의자로 지목했다. 이후 경찰과 도로 위에서 추격전을 벌이고, 도주로가 차단되자 심슨이 자신의 관자놀이에 총을 대고 자살하겠다고 외치는 모습이 약 2시간 동안 생중계되면서 스포츠 영웅이었던 그의 위상은 순식간에 곤두박질쳤다. 결국 그는 살인 혐의로 체포돼 재판에 넘겨졌다.
당초 경찰 조사에서는 사건 현장에 남은 장갑에서 심슨의 DNA가 검출되는 등 다수 증거가 발견돼 유죄 판결이 나올 것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심슨은 유력 변호사들을 대거 고용해 경찰이 증거를 조작했다고 주장했다. 특히 변호인단은 심슨을 인종주의의 희생양으로 부각시키는 전략을 세웠다. 이후 재판이 혼란에 빠지면서 배심원단은 372일간의 법정 공방 끝에 무죄를 판결했다.
그러나 2년 뒤 유가족이 제기한 소송으로 진행된 민사재판에서는 패소해 3350만달러(약 459억원)를 지급하라는 명령을 받고 파산했다. 앞서 종결된 형사 재판과 달리 민사 재판에서는 혐의가 인정되면서 다시금 논란이 커졌지만, 미국에서 무죄 평결을 받은 경우에는 항소가 허용되지 않아 사건은 미제로 종결됐다.
심슨의 재판은 미국 사회 전반에 큰 후유증을 남겼다. 재판이 인종차별 문제를 파고들면서 사회가 흑백으로 갈라졌다. 당시 CNN과 타임지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백인의 62%는 심슨이 유죄라고 믿은 반면,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66%는 심슨이 무죄라고 답했다. 사법체계에 대한 불신이 커졌고, ‘유전 무죄 무전 유죄’ 인식이 강하게 남았다.
심슨은 재판 후에도 줄곧 결백을 주장했다. 2007년에는 자신이 범행을 저질렀다는 가정하에 살인 사건을 자세히 설명하는 ‘만일 내가 그랬다면: 살인자의 고백’(If I Did It: Confessions of The Killer)이라는 책을 출판하기도 했다.
그는 같은 해 라스베이거스의 호텔에 침입해 공범 5명과 함께 스포츠 기념품 중개상 2명을 총으로 위협하고 기념품을 빼앗은 혐의로 체포됐다. 이후 그는 무장강도죄 등으로 최대 33년의 징역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다 2017년 가석방으로 풀려났다.
최혜린 기자 cher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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