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 선수들의 생존법, 마르고 탄탄한 몸?[책과 삶]
근육질 몸 강요받아 건강 해쳐
월경 장애 겪는 청소년도 증가
저자, 코치생활 하며 대안 제시
“신체 긍정하며 훈련할 때 성과”
여자치고 잘 뛰네
로런 플레시먼 지음 |이윤정 옮김 |글항아리 |312쪽 |16800원
미국 콜로라도주에서 2021년에 실시한 연구에 따르면, 평균 연령 17세의 여성 달리기 선수들 중 절반 가량이 무월경 또는 기타 월경 이상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선수들은 훈련 과정에서 달리기 선수의 이상적인 신체로 여겨지는 ‘마르고 탄탄한 몸’을 요구받는다. 코치들은 선수들에게 제한적인 식단을 강요하고 식사를 감시한다. 아랫배를 꼬집으며 동료 선수들 앞에서 체중을 이야기하는 등 수치심을 주기도 한다. “비생산적인 체중을 감량”해야 “숫자(기록)가 바뀔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비생산적인 체중’은 선수들의 나태해서가 아니라 사춘기 이후에 일어나는 여성의 자연스러운 신체 변화의 결과다. 지방은 여성의 생식 호르몬인 에스트로겐과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 그러나 ‘비생산적인 체중’ 감량을 위해 지방 섭취가 제한되면서 달리기 선수에게 무월경은 일반적인 현상이 됐다.
<여자치고 잘 뛰네>의 저자 로런 플레시먼은 많은 여성 선수들이 사춘기를 극복해야 할 장애물로 여기는 현실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는 미국대학체육협회(NCAA) 선수권대회에서 챔피언을 다섯차례 석권하고 세계육상연맹이 주최하는 다이아몬드리그에서 두 차례 우승을 차지하는 등 화려한 경력을 보유한 장거리 달리기 선수다. 현재는 은퇴해 코치로 일하며 뉴욕타임스 등에 선수의 권리와 스포츠 공정성에 대한 글을 기고하는 작가로도 활동 중이다.
그에 따르면, 대략 12세까지 여성은 다양한 스포츠 분야에서 또래 남성과 경쟁하며 연령대별 기록도 다수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사춘기 호르몬이 여성과 남성의 신체에 서로 다른 변화를 일으키면서 운동 수행 능력의 경로는 갈라진다. 복부팽만, 체중 증가, 감정 기복 등을 동반하는 월경은 대표적으로 운동 능력을 저해하는 위협적인 요소로 인식된다. 그 결과 여성 선수들은 남성과 다를 바 없는 낮은 에스트로겐 수준을 유지하는 것을 이득으로 생각하고 무월경의 위험을 간과하기도 한다. 무월경은 섭식장애, 골다공증과 함께 여성 운동선수의 삼중고로 불린다. 이들은 서로 맞물려 있는데, 엄격한 칼로리 제한은 섭식장애를 불러오고 이는 내분비계의 호르몬 수치를 바꿔 월경 이상과 함께 뼈 건강에도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이는 여성 운동선수의 부상과 선수생활 단명을 야기하는 요소로 작동한다. “여자 선수들 사이에서는 마르고 아픈 소녀들이 계속해서 기록을 경신하고 우승한 후 한두 시즌동안 성공했다가 사라지곤 했다.”
로런 플레시먼은 이같은 문제는 남성의 몸을 기준으로 설계된 스포츠 교육과 산업 시스템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그는 어릴 때부터 운동에 뛰어난 재능을 보여왔는데, 그럴 때마다 ‘남자’를 기준으로 평가를 받았다. 그의 아버지는 그가 남자 아이들을 능가할 때마다 “우리 딸은 불알이 텍사스만 하다고!”라며 자랑했다. 본격적으로 운동을 시작한 후에는 주위에서 “넌 보통 여자들과는 달라. 남자처럼 경쟁하고 남자처럼 생각하지”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그는 “남성의 눈으로 스스로를 바라보는 법”을 배우면서 자신 또한 사춘기가 가져올 신체의 변화를 두려워했다고 고백한다.
남성의 신체를 기본값으로 보고 우선시하면서 많은 여성 선수들은 자신의 몸과 불화한다. 남성에게 18~22세는 테스토스테론이 최고조에 달하고 훈련 능력이 극대화하며 회복력이 강해지는 시기다. 로런 플레시먼은 지금의 스포츠 산업이 18~22세의 남성 신체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며, 그에 따라 운동 선수들에게 마른 체형, 이상적인 몸, 꾸준한 운동 능력을 요구하게 됐다고 분석한다. 반면 18~22세의 여성은 생물학적으로 생식력 극대화가 이루어지는 시기다. 여성의 신체는 운동과 직접 관련이 없는 유방이나 자궁내막 등을 만들고 이러한 조직은 체중을 한 달 주기로 변화시킨다. 이러한 신체 구성의 자연스러운 변화는 “꾸준하고 선형적인 개선”이라는 “남성적 표준”과 어긋난다. 그는 이 시기 여성 선수들은 정체기를 겪는 경우가 많고, 전성기는 오히려 20대 중반부터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고 말한다.
‘사춘기’는 여성 선수들의 건강하고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 고유하게 고려돼야 할 상수임에도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았다. 2020년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10대 후반의 캐나다 남자 청소년 10명 중 1명이 운동을 그만두는 반면 여자 청소년은 3명 중 1명이 그만두는 것으로 나타났다. 로런 플레시먼은 “여성스포츠재단이 25년간 조사한 바에 따르면, 여학생이 스포츠를 그만두는 여섯 가지 주된 이유는 접근성, 안전 및 교통수단의 차이, 동성애자 꼬리표와 같은 사회적 낙인, 경험의 질 저하, 비용, 긍정적인 롤모델의 부재 등이었다. 하지만 경쟁 스포츠를 떠나는 근본 요인 중 하나인 사춘기는 언급이 안 되고 있다”라며 현실을 지적했다. 단편적인 사례로 여성 청소년들의 운동에 필요한 스포츠 브라에 대한 인식도 저조하다. 2016년 영국에서 11~17세 여학생 2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연구에 따르면 73퍼센트의 응답자가 운동할 때 유방과 관련한 고민이 한 가지 이상이 있다고 답했다. 상당수의 학생이 ‘적합한 스포츠 브라를 찾을 수 없다’ ‘가슴이 과도하게 움직여서 부끄럽다’는 답을 하며 스포츠에서 유방과 스포츠 브라에 대해 더 알고 싶다고 답했다. 현재 스포츠 교육과 시스템은 여성 청소년들의 이러한 기본적인 요구에도 제대로 응답하지 못하고 지체돼 있다.
로런 플레시먼은 “스포츠 시스템 자체가 여성의 필수적인 생리적 경험을 평가절하하거나 부정하고 잘못된 시기에 잘못된 우선순위를 강조함으로써 여성에게 막대한 해를 끼치고 있다”고 말한다. 2016년 선수생활을 은퇴한 그는 “여성을 중심에 두고 프로 선수의 대안적인 모델을 만들면 어떤 모습일까. 그렇게 하면서도 성공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안고 코치생활에 전념했다. 그가 찾은 대답은 “그렇다”이다. 그는 2021년 자신이 육성한 선수 6명 모두 생애 최고 기록을 세웠고 모두 올림픽 선발전에 출전할 자격을 얻었다고 전한다. 무엇보다 선수들이 여성으로서 자기 자신과 불화하지 않으면서 승리할 수 있었다는 데에서 중요한 가능성을 찾는다. “이들 중 누구도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몸을 망가뜨리거나, 생식 능력과 골밀도를 위태롭게 하거나, 자해를 하거나, 달리기를 사랑하지 않게 된 선수가 없었다. 모든 선수가 자신을 더 깊이 이해하고, 자기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그것을 활용하는 법을 배웠으며, 월경 주기를 되찾고, 신체를 긍정하는 환경에서 훈련하고, 삶에 영향을 미치는 결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으며, 더 강한 사람이 되어 팀을 떠났다.”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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