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사진’ 찍는 젊은 여성은 나르시시스트? 천만에! [책&생각]

양선아 기자 2024. 4. 12.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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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대 여성들의 제 사진 찍기
과시 아닌 놀이·기록·소통 목적
‘피사체’에서 ‘촬영 주체’로
역사적 맥락에 새로운 관점 제시
20~30대 여성은 스마트폰으로 자기 사진을 찍는 것을 즐긴다. 이들은 자기 삶의 어떤 순간을 기록하고 또래들과 공동의 기억을 만들기 위해 사진을 중요한 도구로 사용한다. 사진은 젊은 여성들이 함께 사진을 찍고 있는 모습. 게티이미지뱅크

빈틈없이 자연스럽게
좋아서 찍는 내 사진의 즐거움과 불안, 욕망
황의진 지음 l 반비 l 1만8000원

바야흐로 이미지의 시대다. 스마트폰 하나만으로 언제 어디서든 사진을 자유롭게 찍고, 보정하고, 또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쉽게 그 이미지를 공유할 수 있는 시대다. 이제 ‘사진 찍기’는 우리의 일상 문화가 됐다. ‘빈틈없이 자연스럽게’라는 독특한 제목의 이 책은 이러한 사진 찍기 문화에 주목하면서 특히 사진 찍는 주체 가운데 20~30대 젊은 여성들을 중심에 두고 분석한 책이다. 왜냐하면 이들은 남성들보다도 또 다른 연령대 사람들보다도 훨씬 빈번하게 자신의 모습을 촬영하고 그 사진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스마트폰 사용자에 대한 양적 연구를 보더라도 한국 사회에서 스마트폰을 가장 많이 사용하는 집단은 여자 대학생이고, 여자 대학생들과 20~30대 여성 직장인들은 스마트폰 사용 목적에서 ‘사진 찍기’라고 응답하는 비율이 남성이나 다른 연령대 사람들보다도 훨씬 높았다.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에서 인류학 박사과정을 수료한 저자 황의진은 같은 또래 여성들처럼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 그이기에 ‘내 또래 여성들은 왜 자신의 몸과 얼굴을 촬영하고 외부에 공유할까?’라는 의문과 함께 흔히 사회에서 얘기하는 것처럼 ‘젊은 여성들은 자신을 과시하기 위해 ‘셀카’를 찍는 나르시시스트들일까?’라는 궁금증을 갖고 20~30대 여성들을 직접 만나 인터뷰를 진행한다. 사진 찍기 행위를 너무 당연하게 여기고 한번도 그 행위가 갖는 의미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던 독자들도 저자가 이처럼 진지하게 접근하니 호기심이 발동하게 된다. 저자는 그런 독자에게 수많은 젊은 여성들의 생생한 인터뷰를 들려주고 카메라 기술의 변천사와 카메라와 사진 찍기 문화가 우리 생활 깊숙이 자리 잡기까지의 생활문화사를 요약해 들려준다. 그러면서 현재 20~30대 여성들에게 사진 찍기 행위가 역사적 맥락 속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지 새롭게 짚어낸다.

흥미롭게도 저자가 직접 만난 수많은 젊은 여성들은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해 또는 에스엔에스에서 어떤 반응을 얻기 위해 사진을 찍는다고 응답하지 않았다. “왜 사진을 찍느냐?”는 질문에 “그냥 내 모습을 남기고 싶다”거나 “내가 찍고 싶을 때 찍는다”고 답하는 여성들이 많았다. 또 지나치게 보정을 많이 하는 사진보다는 ‘자연스러운’ 그러나 ‘예쁘게 보이는’ 사진을 선호했다. 저자는 이런 응답을 “여성들에게 ‘자기사진’(촬영·보정·전시에 이르는 모든 과정을 자신의 관점에서 관리하는 사진을 가리키는 말)은 나의 역사적 아카이브를 구성하는 부분적인 조각이자 다른 사람들과 관계 맺게 하는 중요한 연결고리”라고 해석했다. 촬영자 여성에게 사진은 재미있는 놀이이자 그 순간을 남기기 위한 기록적 측면이 강하다는 것이다. 또 사진은 그들에게 힘든 현실에서 자신을 위로하고 긍정하는 도구로서도 기능한다. 이 외에도 인스타그램과 같은 플랫폼에 올리는 자기사진은 친구들 사이에서 대화 소재가 되고 만남을 이어가는 구실이 되며 공동의 기억을 꾸리는 역할도 한다. 책은 이렇게 젊은 여성들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그들에게 사진 찍기가 가진 다양한 층위의 의미를 읽어낸다. 저자의 설명을 따라가다 보면, 젊은 여성들을 ‘셀카족’이라 칭하며 자기과시적인 집단으로 몰아붙였던 일부 관점이 얼마나 협소하고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지 깨닫게 된다.

1930년대 전후 신문에 실린 ‘신여성’의 모습. 당시 사회에서는 신여성을 ‘모던걸’이라고 부르며 허영에 찌든 이미지로 묘사했다. 반비 제공

특히 저자는 지금처럼 카메라가 대중화되기까지의 역사를 통시적으로 훑어보면서, 최근 들어서야 젊은 여성들이 자신의 카메라를 소유하고 촬영 주체로 나서게 된 사실에 주목한다. 책에 따르면, 사진 기술은 19세기 말 조선에 도입되었지만 소수의 사람만 사용했다. 1920년대에 엽서나 광고 같은 대중매체가 확산되면서 사진이 일반화되는데 이때 여성은 에로틱하거나 정숙한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피사체로 존재했다. 이후 1960~1970년대 카메라는 ‘단란한 중산층 가정’이라면 갖고 있으면 좋을 고급품으로 부상했고, 이때도 촬영자는 주로 남성이었다. 여성이 촬영 주체로 나서더라도 ‘주부 촬영자’라는 단어가 보여주듯 아이나 가정 내 모습을 찍는 데 국한됐다. 가정 내 성별 분업이 강화되던 산업화 시기의 사회적 흐름이 이처럼 사진 기술과 여성의 관계에도 영향을 미친 것이다.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을 거치며 외제 카메라가 국내에 반입되고, 보급형 카메라인 ‘콤팩트 카메라’가 출시됐다. 1990년대 접어들어 본격적으로 카메라 대중화 시대가 열리면서 카메라는 개인의 물건이 됐고, 이때부터 오로지 재미를 위해 사진을 찍는 여성들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이후 2000년대 들어 디지털카메라의 등장과 싸이월드라는 소통의 장이 생기면서 ‘셀카’ 사진을 통해 자신의 개성을 표현하는 문화가 생겼고, 카메라폰과 스마트폰이라는 개인용 통신기기와 함께 디지털 이미지의 범용화, 2010년대 인스타그램이라는 공간의 부상이라는 사회문화적 환경 속에서 젊은 여성들은 비로소 자기 사진의 촬영자가 될 수 있었다고 저자는 짚는다. 저자는 “‘자기사진’은 젊은 여성들이 기술 변화를 감지하고 새로운 기기와 인터넷을 활발하게 전유하는 방식으로 여성들이 그 변화의 흐름에 참여했다는 증거”라고 풀이한다.

이렇게 젊은 여성의 입장에서 그들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사진 찍기의 의미를 짚어주는 동시에 저자는 또 사진을 찍고 공유하는 문화가 가진 부작용과 위험성도 함께 짚는다. 예컨대 여성들은 ‘자기사진’을 보며 끊임없이 타자의 시선으로 자기 외모를 평가하게 된다거나 쉽게 복제가 가능한 디지털 사진은 익명의 남성에게 불법적으로 수집되고 성적 대상화가 될 수 있는 위험성이 있음을 짚는다. 이로 인해 독자는 젊은 여성들이 지금과 같은 환경에서 갖고 있는 공포심이나 불안도 이해할 수 있다.

기술 발달로 인한 사회문화적 변화 그리고 그 중심에 서 있는 젊은 여성들의 문화를 깊이 있게 또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들여다볼 수 있도록 안내하는 책이다.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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