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찰하는 인공지능 ‘로보다자인’은 출현할 수 있을까 [책&생각]
역사적 분석철학
이승종 지음 l 서강대출판부 l 2만6000원
언어와 논리를 분석하는 ‘분석철학’은 20세기에 태어난 철학 사조다. 고틀로프 프레게, 버트런드 러셀,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이 분석철학을 탄생시킨 주역으로 꼽힌다. 이승종 연세대 철학과 교수가 쓴 ‘역사적 분석철학’은 분석철학의 탄생에 관한 이런 상식적 이해에 도전하는 저작이다. 지은이는 분석철학의 분석정신이 20세기에 갑자기 튀어나온 것이 아니라 서양철학의 유구한 역사와 함께 자라났다는 ‘가설’을 제시한다. 이 책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수학에 관한 사유에서 시작해 근대 초기 흄과 라이프니츠를 거쳐 18세기 칸트의 철학에 이르기까지 서양철학의 주요 마디를 분석철학의 관점에서 재검토함으로써 그 가설을 입증해 간다.
이 책에서 특히 흥미로운 부분은 이 ‘분석철학의 역사’를 살피는 본론에 앞서 총론 격으로 서술한 제1장의 내용이다. ‘태초에 정보가 있었다’는 제목의 제1장은 본문의 내용을 포괄하면서 동시에 지은이의 독특한 정보 이해의 관점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먼저 지은이는 컴퓨터를 비롯해 오늘날 기술의 대세를 장악한 ‘정보기술’의 정보(information)라는 말을 분석하는 데서 논의를 시작한다. 정보에는 형식(form, 형상)이라는 말이 들어 있는데, 이 말은 플라톤의 철학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형상’은 플라톤 철학의 ‘이데아’를 부르는 다른 말이다. 플라톤은 이 형상이 천상의 세계에 따로 있어 세상 만물에 본질을 준다고 생각했다. 형상 곧 정보가 세상을 창조한 셈이다.
지은이는 플라톤의 형상론 곧 정보론이 플라톤주의의 대중적 판본이라 할 ‘중세 기독교 신학’으로 계승됐다고 말한다. 이 중세 기독교 신학에서 정보는 ‘태초의 말씀’으로 숭상받고 정보의 입력은 ‘계시’로 신격화되며 만물은 정보의 출력물인 피조물로 해석된다. 이런 구도 아래서 세계는 “신적 정보를 처리하는 거대한 컴퓨터”가 된다. “신학과 철학은 중세의 정보과학이자 컴퓨터과학인 셈이다.” 중세 신학의 이 근본 구도는 근대의 데카르트나 칸트에 이르러서도 바뀌지 않았다. 칸트는 고대 그리스 철학의 형상론을 바탕으로 삼아 마음을 일종의 ‘정보처리 시스템’으로 이해했다. 또 20세기 언어철학도 플라톤의 형상론 속에서 태어났다. 서양철학사의 이런 긴 흐름의 끝에서 등장한 것이 현대의 정보기술이다. “정보처리 기술의 총아인 컴퓨터는 2500년 서양철학의 한 결정체다.”
그렇다면 그 기술의 총아인 인공지능은 어디까지 발전할 수 있을까. 지은이는 여기서 사람과 인공지능의 근본적인 차이를 ‘디자인’(Design)과 ‘다자인’(Dasein)이라는 두 낱말을 통해 보여준다. ‘다자인’이란 하이데거가 인간 존재의 성격을 특화하여 제시한 낱말이다. 자기 존재를 문제 삼는 인간 존재가 바로 ‘현존재’ 곧 다자인이다. 인공지능이 계산능력의 최대화를 위해 설계된 일종의 ‘디자인’이라면, 사람은 “특정 목적에 맞춤형으로 설계된 디자인이 아니라, 자기 존재에 대해 물음을 던질 수 있는 열린 존재자인 다자인”이다. 인간은 자기 자신에게 물음을 던질 수 있는 유일한 존재자다. 인공지능이 사람의 지능을 구현하려면 계산적 지능을 넘어 ‘다자인’으로서 사람의 사유를 구현할 수 있어야 한다.
지은이는 만약 정보기술이 ‘다자인’을 구현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인류문명사의 획기적인 이정표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때 비로소 정보기술은 특정 능력만 탁월한 기계장치가 아니라, 온전한 주체로서 사람과 2인칭적 소통의 상대가 될 것이다.” 지은이는 그런 능력이 구현된 인공지능을 ‘로봇’과 ‘다자인’을 결합해 ‘로보다자인’이라고 부른다. 기존의 로봇과 로보다자인의 결정적 차이점은 이것이다. “로봇이 정보 기능을 구현하고 있는 데 반해, 로보다자인은 지혜라는 능력을 구현하고 있다.” 이때의 지혜는 축적된 정보를 반성하고 성찰하는 능력, 특히 반성을 수행하는 자신의 정체성 자체에 대해 물음을 던지는 능력이다. “그 반성의 총체적 수행 과정에서 로보다자인은 존재자적 계산의 차원에서 존재론적 사유의 차원으로 진입한다.” 반성적 사유를 통해 인공지능은 자신을 자각하는 차원에 이르게 된다. 정보처리를 넘어 지혜의 주인이 되는 것이다. 이 차원에 이르면 로봇은 사람과 사실상 아무런 차이가 없는 존재자가 된다.
지은이는 ‘로보다자인’이 탄생할 날이 언젠가는 올 것이라고 예견한다. 그런 날이 온다면 인류에게는 재앙이 되지 않을까? 지은이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자기성찰적 로봇의 등장을 걱정하는 데는 ‘로봇은 도구 이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도구주의적 기술관과 인간중심주의가 깔려 있다는 것이다. 지은이는 이런 태도를 과거에 노예를 부리던 주인의 심리와 다르지 않은 것이라고 주장한다. 주인이 노예를 2인칭적 소통의 상대로 인정하지 않았던 것처럼 로봇을 그렇게 대한다는 것이다.
지은이는 로보다자인의 탄생을 우려하기만 할 것이 아니라 로보다자인이 올바른 정체성을 형성할 수 있도록 정보기술을 바르게 사용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부모의 양육이 자녀의 정체성 형성에 큰 역할을 하듯, 정보기술에 대한 올바른 철학적 성찰이 있을 때 그 기술이 올바른 로보다자인을 잉태할 수 있을 것이라는 얘기다. 그러므로 “다가올 로보다자인과의 만남을 위해 우리부터 거듭나야 한다.” 인공지능의 발전을 우려하는 논의들과는 확연히 다른 주장이다.
고명섭 선임기자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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