쌓고 무너뜨리고 다시 쌓으며 단단해지는 세계 [책&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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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들은 항상 무언가에 쫓기며 살아간다.
집안의 모든 잡동사니가 하늘 높이 올라가고 결국 꼭대기에 집까지 통째로 올려놓은 아이들은 비둘기 기자에게 '진짜 이유'를 알려주겠다며 다시 땅으로 내려간다.
"다시 쌓으려고요." 이번엔 마이크 대신 당근을 든 비둘기 기자까지 쌓아올리며 아이들은 탑쌓기에 다시 열중한다.
언제든 부수고 다시 쌓으면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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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가 뭐냐? ‘무너뜨리려고’
무너뜨린 이유는? ‘다시 쌓으려고’
탑쌓기 자체가 즐거움이자 성취
특종! 쌓기의 달인
노인경 지음 l 문학동네 l 1만5000원
현대인들은 항상 무언가에 쫓기며 살아간다. 학창 시절에는 성적에 매달리고, 20대가 되면 각종 스펙쌓기에 열중한다. 차곡차곡 통장을 불려가는 30대를 지나 40대에 접어들면 연금 붓기라는 새로운 코스가 시작된다. 모든 준비에는 목적이 있다. 대입, 취업, 결혼, 내집마련, 노후대비 등등. 그런데 그렇게 열심히 쌓아올린 모든 것이 한순간에 무너진다면?
새 방송국의 비둘기 기자는 매일매일 탑을 쌓는다는 사람들을 인터뷰하러 그 집에 찾아간다. 의자, 쿠션, 변기, 물병 등 온갖 것을 차곡차곡 쌓아 올리는 밤이와 달이에게 기자는 마이크를 들이대며 탑을 쌓는 이유를 묻는다. “좋아하니까요.” 아이들의 대답은 간단하지만 비둘기 기자는 이들을 끈질기게 따라 붙으며 ‘진짜 이유’를 캐묻는다. “아슬아슬해서인가요?” “관심 받고 싶어서인가요?” 그러나 탑쌓기에 몰입한 아이들에게 비둘기 기자의 질문은 잘 들리지 않는다.
집안의 모든 잡동사니가 하늘 높이 올라가고 결국 꼭대기에 집까지 통째로 올려놓은 아이들은 비둘기 기자에게 ‘진짜 이유’를 알려주겠다며 다시 땅으로 내려간다. ‘툭!’ 탑의 맨 아래에 놓인 의자를 건드리자 구름 위까지 올라간 집기들이 비처럼 우수수 떨어진다. “무너뜨리려고요.” 비로소 아이들은 탑쌓기의 진짜 이유를 알려준다. 그리고 한마디를 덧붙인다. “다시 쌓으려고요.” 이번엔 마이크 대신 당근을 든 비둘기 기자까지 쌓아올리며 아이들은 탑쌓기에 다시 열중한다.
매일 힘들게 쌓아올렸던 무언가가 와르르 무너졌을 때 어른들은 있는 힘껏 절망한다. 하물며 자신이 쌓아온 굳건한 세계를 스스로 허물어뜨리는 행동이란 애초 그들의 선택지엔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아이들의 탑쌓기에는 목적도 이유도 없기에 넘어져도, 망가져도 상관 없다. 탑을 쌓는 과정 자체가 아이들에겐 즐거움이자 성취이기 때문이다. 언제든 부수고 다시 쌓으면 그만이다. 책의 마지막 장에 나오는 ‘비둘기 기자의 날카로운 질문들’ 코너에는 어른들에 대한 아이들의 통쾌한 일갈이 담겨 있다. “공든 탑이 무너질 땐 어떤 기분이 드나요?” “춤을 춰요.” “너무 마음에 들어서 무너뜨리기 싫을 때도 있나요?” “그럴 리가요.”
책에서 아이들은 온갖 기상천외한 물건을 쌓아 올린다. 도저히 쌓아질 것 같지 않은 뾰족한 우산이나, 식물이 담긴 화분, 물이 흘러넘치는 욕조와 빨래가 삐져나온 세탁기가 아슬아슬하게 위아래로 연결된다. 사진 콜라주와 색연필 드로잉을 조합해 표현한 이 물건들은 현실과 상상을 넘나들며 자신만의 세계를 창조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투영한다.
송채경화 기자 kh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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