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핍한 시대’에 시인은 무엇을 찾는가? [책&생각]
철학‧시학 포함 미완성 작품 주목
광기 속에 쓴 말년의 시편
파울 첼란 등 현대시에 큰 영향
생의 절반
프리드리히 횔덜린 지음, 박술 옮김 l 읻다 l 1만 5000원
프리드리히 횔덜린(1770~1843)은 19세기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시인이자 20세기 독일 현대시의 선구자로 불린다. 옛 신들이 떠나고 새로운 신들은 오지 않은 ‘궁핍한 시대’를 노래한 영성의 시인이기도 하다. ‘생의 절반’은 이 시인이 평생에 걸쳐 쓴 시와 산문을 가려 뽑아 묶은 선집이다. 박술(독일 힐데스하임대학 철학박사)씨가 편집‧번역하고 상세한 해제를 달았다.
횔덜린은 일흔세 해 삶의 절반을 광기의 어둠 속에서 보낸 불행한 시인이다. 튀빙겐신학교에서 헤겔‧셸링과 함께 공부한 횔덜린은 성직자가 되기를 바란 어머니의 뜻을 거스르고 시인의 길을 걸었다. 1796년 프랑크푸르트 은행가 야코프 공타르 집안의 가정교사로 들어가 그 집 안주인 주제테와 사랑에 빠졌는데, 그 불행한 사랑은 횔덜린 삶과 문학에 지울 수 없는 화인을 남겼다. 가정교사로 전전하던 횔덜린은 1802년 주제테의 와병과 죽음에 큰 충격을 받았다. 이때 처음 정신에 깊은 균열이 났고, 다시 3년 뒤 두 번째 발작으로 일상의 삶과 영원히 이별했다. 광증이 정신을 침범해오던 그 몇 년 동안 횔덜린의 시적 상상력은 최고조에 이르러 수많은 작품으로 영글었다. 그러나 횔덜린의 ‘유례없이 독특한 언어’는 당대의 눈을 스쳐 지나갔고 20세기에 들어와서야 재발견됐다. 제1차세계대전 직전 문헌학자 노르베르트 폰 헬링라트가 횔덜린의 숨은 원고를 발굴해 네 권짜리 전집을 펴냈고, 이후 횔덜린 불길이 독일 전역에서 타올랐다.
횔덜린의 문학은 통상 1800년을 기준으로 삼아 전기와 후기로 나뉜다. 그러나 옮긴이는 시기를 더 세분화해 1797년까지를 초기로, 1798년부터 1801년까지를 중기로, 1802년부터 1806년까지를 후기로, 다시 1807년 이후를 최후기로 나눈다. 이 선집의 특징은 완성된 작품보다 미완성 작품들에 더 주목한다는 데 있다. 특히 횔덜린이 초기에 쓴 철학‧시학 단편들은 다른 선집에서는 볼 수 없는 글이다. 횔덜린 연구자들은 헤겔과 셸링이 철학자로 성장하는 데 횔덜린이 상당한 지적 자극을 주었다고 보는데, 1775년에 쓴 ‘존재와 판단’이라는 ‘철학 단편’에서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이 글에서 횔덜린은 절대자로부터 주체와 객체가 분리돼 나오는 과정을 서술하는데, 마치 헤겔의 ‘정신현상학’ 초안을 보는 듯하다. 횔덜린의 시학은 이 분리된 주체와 객체가 다시 하나로 합일할 수 있는 길을 찾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분리의 고통에서 합일의 기쁨으로 나아가는 길이 횔덜린 시의 길이다.
횔덜린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빵과 포도주’는 이런 사유가 시어로 구현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옮긴이는 횔덜린의 이 작품을 동시대 낭만주의 시인 노발리스의 대표작 ‘밤의 찬가’와 비교한다. 거의 비슷한 시기(1800년경)에 쓰인 두 시는 “그리스 신화의 세계와 그리스도교적 세계를 아우르는 역사철학적 구상”을 품고 있다는 점에서 쌍둥이처럼 닮았다. 시의 배경이 밤이라는 것도 같다. 그러나 닮은 점만큼이나 다른 점도 있다. 노발리스의 ‘밤의 찬가’가 연인(조피 폰 퀸)의 이른 죽음이라는 커다란 상실을 노래한다면, 횔덜린의 ‘빵과 포도주’는 예고 없이 찾아오고 떠나는 시적 영감을 주제로 삼는다. 노발리스에게 죽음은 연인과 다시 만나는 통로다. 죽음은 단순한 사라짐이 아니라 잃어버린 것을 되찾는 재회의 약속이다. 노발리스는 ‘죽음을 향한 그리움’으로 시를 끝낸다.
그러나 횔덜린의 시는 신들이 떠난 이 황량한 세계 자체에 더 관심이 있다. “비록 신들은 살아 있으나, 머리 위 저 멀리 다른 세상에 살고 있다.” 이 구절에 이어 유명한 시구 “이렇게 가난한 시대에 시인을 어디에 쓰려는가?”가 나온다. 흔히 “궁핍한 시대에 무엇을 위한 시인인가?”라고 번역되는 그 시구다. 여기서 ‘궁핍한 시대’란 신들이 떠나버린 시대를 뜻한다. 시인의 쓸모는 그 떠나버린 신의 말씀을 받아내 대지의 백성에게 전해주는 데 있다. 시인의 그런 운명을 이야기하는 시가 또 다른 작품 ‘마치 축제일처럼’이다. 이 시에 그려진 시인의 임무는 “아버지가 내리는 빛의 줄기”를 잡아 “민중을 향한 노래 안에 감추어 넘겨주는 것”이다. 하지만 이 시는 “내 재앙이로다” 하는 불길한 말과 함께 미완성으로 끝난다.
이 미완성 시의 육필 원고 여백에 따로 쓴 것이 ‘생의 절반’이라는 시다. 2연으로 된 이 시의 두 번째 연에서 횔덜린은 “가엾어라, 겨울이 오면/ 나는 어디에서 꽃들을, 또/ 햇볕을, 그리고 어느/ 대지의 그림자를 취하면 좋으랴?” 하고 탄식하는데, 마치 자기 생의 후반부를 예고하는 듯하다. 이후 횔덜린은 두 번의 충격적인 사건을 겪고 1806년 튀빙겐의 정신병원에 강제로 입원했다가 8개월 뒤 치료 불가 판정을 받고 퇴원한다. 이때 횔덜린을 받아준 사람이 목수 에른스트 치머였다. 횔덜린 소설 ‘휘페리온’에 감명받은 치머는 그 불운한 시인을 자기 집으로 들인다. 횔덜린은 죽을 때까지 36년 동안 그 집 작은 탑 2층 방에 머물렀다.
이렇게 광기의 난바다에서 표류하던 시기에도 횔덜린의 시적 정신은 계속 타올라 마지막까지 수많은 시를 생산했다. 그 최후기 시 가운데 48편이 살아남아 탑에 갇힌 광인의 내면을 전한다. 횔덜린의 그 시들은 2층 탑에서 바라본 풍경을 계절의 변화에 따라 묘사하는데, 시 안에는 3인칭 현재의 이미지만 존재한다. “나도 너도 없고 이름도 시간도 없는” 이 환상의 공간에서 이미지가 흘러간다. 이런 기이한 시적 세계가 20세기 아방가르드 시에 영감을 주었고, 게오르크 트라클, 파울 첼란 같은 당대 최고의 시인들이 횔덜린의 이미지 속에서 시어를 길어 올렸다.
이 유폐의 시기에 횔덜린은 ‘스카르넬리’라는 낯선 필명을 사용했다. 더 눈길을 끄는 것은 스카르넬리라는 서명이 달린 그 시들에 ‘상상 속의 날짜’를 써 놓았다는 사실이다. 가장 이른 것이 1648년이고 가장 늦은 것이 1940년이다. 횔덜린은 스카르넬리의 가면을 쓰고서 과거와 미래를 자유롭게 오갔던 것이다. 탑에 갇힌 시인은 자신의 시가 재발견되는 미래를 보았던 걸까. 1940년이면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가 횔덜린의 시를 철학적 언어로 한창 재해석하던 때다. 이 재해석을 통해 횔덜린은 궁핍한 시대를 넘어 새로운 미래를 예언하는 사상가로 떠오른다.
고명섭 선임기자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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