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불화가 돌연히…4년차 소설가의 나직한 하드코어 [책&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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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팬데믹 이후 출현한 소설가 가운데 가장 확연한 족적을 꼽으라면 성혜령이다.
2021년 창비신인소설상으로 등단한 이래 제 서사를 '양생'하는 방식과 속도가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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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섯 농장
성혜령 지음 l 창비 l 1만5000원
코로나 팬데믹 이후 출현한 소설가 가운데 가장 확연한 족적을 꼽으라면 성혜령이다. 2021년 창비신인소설상으로 등단한 이래 제 서사를 ‘양생’하는 방식과 속도가 그러하다. ‘버섯 농장’은 그의 첫 소설집으로 등단작 ‘윤 소 정’을 포함, 지난 3년 작가 성혜령의 모든 것이다.
여러 작품의 차별성은 ‘급변’의 서사 역학에서 비롯한다. 각 단편에 닥쳐오는 인물, 관계, 사건은 급작스럽지만 여파는 웬일인지 천연스럽다. 바꿔 말하면 돌연한 균열과 불안의 일상화.
표제작 ‘버섯 농장’의 주인공 기진과 진화는 기숙사 고등학교 동창이다. “모든 것을 나누어도 괜찮은” 사이였다. 가정형편이 애초 다르긴 했다. 기진은 스무살 때 교통사고로 부모를 잃은 뒤에도 경제적 어려움은 없었다. 충격으로 집에서 나오지 못하던 기진을 먼저 찾아가 돌봤던 진화는 성인이 되어 일을 쉬어 본 적이 없다. ‘문득’ 둘의 관계가 멀어진 건 이런 계급 차이 때문이겠다. 그리고 “까맣게 잊고 있던” 진화의 연락에 당황하던 기진은 진화가 “대뜸” 해온 부탁을 들어주게 된다. 진화는 휴대폰을 명의 도용한 옛 남자친구의 지인 때문에 600만원 넘게 빚을 지게 되고, 기진의 차로 잠적한 지인 대신 그의 아버지를 겨우 만난다. 하지만 고급 승용차를 끌고 고급 요양원에 자신의 어머니를 맡긴 버섯 농장 주인의 뻔뻔함만 확인하는 길. 그 지점으로부터의 진화의 ‘진화’된 행동은 ‘돌연’하기 그지없다. 나직한 하드보일드 문체로 노정한 서스펜스로의 급변은 사회 불평등을 조장하고 선택적 책임만 지려는 (나의 또는 모두의) 아버지에 대한 청년의 아찔한 마음을 대변한다 해도 무리가 없겠다.
대학 동창 셋(부부와 여성 1인)이 머물던 별장이 폭우에 갇히자, 산사태 대비 지원 나온 군인 하나가 화장실을 찾다 숙소에 발을 들이고 급기야 이들 대화에 섞이는 ‘사태’, 사실상 아버지 강요로 지독한 항암치료를 받다 어머니가 눈을 감고 딸(39살 독신)도 미리 발암 요인을 제거하는 동안 아버지가 부른 낯선 ‘간병인’, 허락 없이 피운 공장 동료(무슬림)의 담배가 거래용 마약류였고 때문에 낯선 외국인에게 거금 500만원을 뜯기는 ‘주말부부’ 등도 ‘돌연성’에선 예외가 아니다. 실은 수면 아래 팽배한 불신과 불화가 비로소 서늘하게 감각되는 계기다. 나아가 드물게 불신을 극복하는 가능성(‘간병인’)이 되기도 하지만, 작중인물은 대개 더 ‘의심’함으로써 경계 짓는 쪽을 택한다.
“근데 (농장 주인) 쓰러진 폼이 꼭 자위하려던 거 같지 않아?”(‘버섯 농장’)
‘내 아이가 동물학대하는 사이코패스인가’(‘사태’)
한강변을 뛰는 히스패닉을 보자 “확인은 해야지. 범죄자 주제에 대낮에, 그럼 안 되니까.”(‘주말부부’)
사회 병리적으로 허락된 양, 어떤 의심은 경계가 없이 극악해지고 만다. 젊은작가상, 이상문학상 우수상 등을 받은 작가의 첫 소설집 속 풍경이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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