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오지 못하는 이들을 기억한다는 것 [책&생각]

한겨레 2024. 4. 12.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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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0번의 금요일'(온다프레스)은 한 세계가 무너지고 난 후의 기록이다.

참혹하게 무너진 한 세계를 잊지 않고 애써 살아온 이들의 기억을 모았다.

'520번의 금요일'은 그렇지 않다고, 산다는 건 기억하는 일이라고, 기억해야 변할 수 있다고 말한다.

돌아오지 못한 이들을 기억해줄 사람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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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부 종이접기 클럽
천 개의 종이학과 불타는 교실
이종산 지음 l 창비(2023)

‘520번의 금요일’(온다프레스)은 한 세계가 무너지고 난 후의 기록이다. 4·16 세월호참사 작가기록단이 가족과 시민을 인터뷰해 지난 10년을 정리한 공식 기록집이다. 참혹하게 무너진 한 세계를 잊지 않고 애써 살아온 이들의 기억을 모았다. 대체 기억한다는 건 무엇일까. 나는 오래도록 기억으로부터 도망치듯 살았다. 밤마다 지난 일을 복기하지 않을 수 있다면 인생은 살 만하리라고 여겼다. 아프고 힘든 일은 더더욱 빨리 잊는 게 최선이라고 믿었다. ‘520번의 금요일’은 그렇지 않다고, 산다는 건 기억하는 일이라고, 기억해야 변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종산의 ‘도서부 종이접기 클럽’도 ‘기억’을 다룬다. 물론 허구의 상상력을 동원해 괴담의 진원을 찾아가는 서스펜스물이자 역사 판타지로 주제에 접근한다. 호기심을 자아내는 서사 덕분에 청소년은 물론이고 초등 고학년도 어렵지 않게 읽어낼 수 있다. 오싹한 긴장감이 들지만, 전반적으로 다정하고 따뜻한 작품이다.

세연, 모모, 소라는 도서부원이자 종이접기 클럽 회원이다. 셋은 여름방학이라 조용한 학교의 도서실에 앉아서 종이접기를 하고 있었다. 비가 내려 그런가, 세 친구가 서늘한 기분을 느낀 순간, 위층에서 둔탁한 소리가 난다. 어릴 때부터 ‘감’이 남다른 세연은 그날 낯선 사람을 보고 이상한 일을 겪는다. 도서부 창문을 통해 1층 나무 아래 세일러 칼라 교복을 입고 서 있는 여자아이를 보았다. 2층 복도를 걷다가 한복 치마와 저고리를 입은 낯선 여성까지 만났다. 여성은 세연에게 다짜고짜 “혹시 괜찮으면 종이학 하나 접어 줄래요?” 하고 부탁한다. 세연은 정성껏 종이학을 접어주었지만 여성은 성냥불로 학을 태우고는 사라져 버렸다.

알고 보니 학교에 오래전부터 종이학 귀신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었다. 3학년 선배도 심지어 담임인 강지문 선생도 학생 시절 종이학을 접어 달라는 여성을 만난 적이 있었다. 한데 아무도 이 여성이 왜 자꾸 나타나는지 모른다. 왜 종이학을 접어 달라고 할까, 무엇을 바라는 걸까. 세 친구는 조사를 시작하고, 급기야 도서부 지하 서고에서 시간 이동을 한다. 1937년 학교 도서부에 가게 된 세 친구는 세일러 칼라 교복을 입고 나무 아래 서 있던 여학생을 만났다. 이름은 수이였다. 종이학을 접어 달라던 여성은 도서부를 맡은 윤경희 선생이었다. 그제야 모든 의문이 풀린다.

1930년대 일본 제국주의는 중국 침략을 시작으로, 식민지 조선을 전쟁에 필요한 인력과 물자를 보급하는 병참기지로 삼았다. ‘도서부 종이접기 클럽’의 또 다른 시대적 배경이다, 이 땅의 사람들이 돌아올 기약 없이 광산으로, 공장으로, 징용으로 끌려가던 때다. 1937년 도서부원이었던 수이도 공장에 갈 예정이었다. 윤경희 선생은 두렵고 무서운 수이에게 사당에 가서 종이학을 태워주겠다고, 꼭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겠노라고 약속한다. 수이는 미래에서 온 세연에게 말한다. “선생님이 여기서 기다려 주신다고 생각하면, 나도 돌아올 수 있을 것 같아.”

돌아오지 못한 이들을 기억해줄 사람이 있어야 한다. 끝내 잊지 않고 그 약속을 이어받아 줄 사람이 필요하다. 과거와 현재는 그렇게 이어지며 더는 돌아오지 못하는 이들이 생기지 않는다. 초등 고학년부터.

한미화 출판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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