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목의 스시 한 조각] [167] 인재 유치 경쟁

신상목 기리야마본진 대표·前주일대사관1등서기관 2024. 4. 12.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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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에도 시대에 도쿠가와 막부를 정점으로 한 번주(藩主) 연합체를 ‘막번(幕藩) 체제’라고 한다. 중앙집권적 성격과 지방분권적 속성이 뒤섞여 있는 이중 체제라고 할 수 있다. 권위가 반쯤 집중되고 반쯤 분산된 특이한 체제인 만큼 불안정성을 보완할 다양한 제도를 고안했는데, 대표적인 것으로 ‘호코카마이(奉公構)’를 들 수 있다.

‘호코’는 주군을 섬기는 것을, ‘카마이’는 집단에서 쫓아냄을 의미한다. 호코카마이는 영주가 자기 뜻을 거스른 가신의 관직을 박탈하고, 나아가 다른 영주를 섬기지도 못하도록 하는 일본 특유의 형벌이다. 영주가 파문하는 뜻을 알리는 서장(書狀)을 회람시키면, 그를 접수한 영주들이 해당자를 수하로 거두지 못하도록 의무를 부과하는 것이 제도의 요체이다.

호코카마이 처분을 받으면 아무리 우수한 인재라도 일본 어디에도 발을 붙일 수가 없었다. 당하는 처지에서는 생계를 잃고 사회적 생매장을 당하는 중벌이었다. 다이묘들이 널리 인재를 얻고자 하는 유인이 있음에도 호코카마이 제도가 존속할 수 있었던 것은 막번 체제가 폐쇄적 ‘카르텔’로 운영되었음을 의미한다. 이직(移職)이 쉽지 않은 일본 기업의 ‘종신 고용’ 문화의 뿌리를 여기에서 찾는 견해도 있다.

유사한 분권형 체제라도 유럽에서는 상황이 달랐다. 동시대 유럽에서는 더 좋은 대우와 기회를 찾아 엘리트들이 주군을 바꾸는 일이 드물지 않았다. 인재 유치 경쟁에서 뒤진 왕조나 국가는 쇠락을 걱정해야 했다. 지금은 고급 인력의 국제적 이동이 일상화된 ‘글로벌 인재 시장’ 시대다. 그 시장에서 학계와 산업계의 고급 인력 유지 또는 유치를 위한 한국의 경쟁력은 결코 높다고 할 수 없다. 인재를 키우고 끌어모으는 것만큼 국가 대계에 중요한 일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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