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東語西話] 벚꽃장 옆 일본 절
벚꽃이 피고 또 지는 것을 미리 알리는 소식은 한국과 일본을 가리지 않고 검색률이 날씨 예보만큼이나 높을 것이다. 하지만 예보는 예보일 뿐이다. 올해는 기상이 순조롭지 못하여 꽃피는 시기가 늦어졌다. 그 때문에 “하늘을 이길 수가 없습니다. 벚꽃 축제 두 번 합니다”라는 웃지 못할 해설까지 듣게 되었다.
원조 벚꽃을 찾아 경남 창원시 진해구로 갔다. 해가 뜰 무렵 도착하니 엄청 여유롭다. 명성 그대로 온 시가지가 꽃구름이다. 한국과 일본의 벚꽃 역사가 함께하는 곳이기도 하다. 일제강점기 군항으로 개발되면서 심기 시작했으니 벌써 그 세월이 백 년을 훌쩍 넘긴다. 당시 진해고등여학교를 졸업한 한국인·일본인 동문들의 지역 모임 회지(會誌) 이름도 ‘벚꽃그늘[櫻蔭]’이었다. 조선총독부에서 발행하던 조선어 신문인 매일신보(1930년 3월 2일 자)에서 한반도 명승지를 투표한 결과 진해 벚꽃이 8위를 차지했다고 하니 그 시절에도 꽤나 유명했던 모양이다. 광복 이후에도 재일 한국인들이 묘목을 많이 기증했다. 현재 전체의 절반 정도라고 한다. 한일 관계가 화사한 벚꽃처럼 평화롭길 바라는 민간 외교사절들의 바람과 정성이 적잖게 보태진 것이다. 벚꽃 원산지는 제주도라는 연구 결과도 반감(反感) 해소에 한몫했다. 어쨌거나 벚꽃은 나라와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다.
압권은 봄하늘을 꽃으로 뒤덮다시피 한 여좌천 개울의 벚꽃 터널이다. 관광객을 위해 건너지른 여러 다리 가운데 가장 유명한 ‘로망스’ 다리를 건넜다. 서쪽에는 일본에 뿌리를 둔 천리교(天理敎) 진해교회가 있다. 한·일·중 삼국의 인연이 겹겹이 포개진 숨은 이야기가 전해오는 곳이다. 몇 년 전 서점에서 ‘진해의 벚꽃’(다케쿠니 도모야스)이란 책을 우연히 발견했다. 발로 뛰면서 수집한 좋은 자료 덕분에 이 자리에 감춰진 사연까지 살펴볼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가 되었다.
이 터에 덕환사(德丸寺)라는 절이 있었다. 중국 베이징(北京) 근교에 있던 진해사(鎭海寺)라는 일본 사찰이 그 시작이었다. 외세를 배격하던 의화단 사건으로 소실되면서 주지 스님은 본존불과 관음상만 모시고 일본 대사관으로 피신하였다. 대사관에서 통역 일을 하던 도쿠마루(德丸)씨를 만나 33cm의 작은 관세음보살상을 맡겼다. 선생은 귀국 후에도 구마모토(熊本) 본가에서 개인 원불(願佛)로 소장했다. 그 무렵 새로 건설하는 군항인 ‘진해’라는 이름을 듣고서 영감(靈感)을 받았다. 인연 터라고 확신하면서 절을 세우고자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전후 사정을 듣고서 당시 진해에 거주하던 일본인 유지들이 힘을 모아 1922년 덕환사를 준공하고 관음상을 봉안하게 되었다. 하지만 해방 이후 절을 비우면서 부지와 관음당 건물은 천리교에 편입되었다. ‘진해산(鎭海山) 덕환사’라는 표지석은 2008년 구청 수장고로 옮겨진다. 러일전쟁 때 일본 함대를 지휘했던 도고 헤이하치로(東卿平八郞·1848~1934) 글씨라고 전한다. 법당은 너무 낡아 안전 때문에 2014년 철거했다.
중국 베이징 한편의 작은 절이었던 진해사는 일본 열도의 가정집을 거쳐 한반도의 남쪽에 ‘진해산’이라는 큰 글씨만 남겨두었다. 보이는 것은 모두 환상(幻相)이라고 금강경은 말했다. 봄날 벚꽃장에서 물 위를 흐르는 꽃잎처럼 잠시 나타났다가 신기루처럼 사라진 그 법당 모습은 사진 기록을 통해 상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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