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50이 이렇게 투표할 줄, 내 20년 전에 알고 있었다” [유석재의 돌발史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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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이 왜 이런 결과가 나왔는가? 아무리 윤석열 대통령이 밉더라도 어떻게 도덕적인 문제가 있는 야당 후보들까지 당선될 수 있는 것인가? 한국 사회의 어떤 변화가 이번 선거에 나타났던 것인가?
이런 문제에 대한 답변을 듣기 위해 11일 송호근 한림대 석좌교수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는 자신도 이정도로 투표 결과가 나온 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고민하는 중이라며 이런 말을 했습니다.
“지금의 30대에서 50대에 해당하는 ‘3050′ 세대는 기본적으로 진보 쪽으로 신념화가 이뤄진 세대입니다. 경제성장의 혜택을 특권층이 독점했다는 인식을 지니고 있는데 이들을 끌어안지 못한 것이 여당 패배의 큰 요인이라 봐야겠지요.”
“특검법을 거부하고 정치적 복수에 집착하는 듯한 대통령의 꽉 막힌 모습 앞에서 이들이 지닌 인내심은 한계를 넘어서게 된 것으로 보입니다. 이 세대가 모두 진보 성향을 지닌 사람들이 됐다기보다는, 대통령과 정부가 이들이 진보 쪽으로 쏠리도록 통치를 했다고 봐야 합니다.”
그러니까 권위주의를 혐오하는 동시에 이른바 ‘진보’ 진영에 마음이 열린 세대가 대한민국의 주축을 이루고 있는데, 이들의 마음을 돌리는 데 실패했다는 얘깁니다.
송 교수는 “나는 노무현 정부 때 ‘지금의 진보 세력이 향후 주류로서 계속 갈 것’이라고 했는데 아무래도 그 생각이 맞았던 것 같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2004년 4월 21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아시아재단과 한미협회 주최로 열린 심포지엄 ‘한국의 신세대와 대외관계의 인식’에서 송호근 교수가 발표한 내용이었습니다. 바로 엿새 전 제17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이 152석을 얻어 승리한 상황이었습니다. 당시 ‘대패’했다던 한나라당은 이제 보니 121석은 얻었었군요.
이때 송호근 교수가 뭐라고 했는지 복기해 보겠습니다.
“성장주의에 대한 거역(Revolt)과 권위주의에 대한 저항(Resistance), 국가주의에 대한 거부(Rejection)가 지금 우리 사회의 변화를 이끌어가는 이른바 ‘386′세대의 특성으로, 이 같은 ‘3R’은 향후 계속될 것이다.”
이게 뭔가 싶기도 하겠지만, 저는 당시에 ‘상당히 정치(精緻)한 분석’이라고 여겼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당선은 권력 교체의 시작이었고, 이번 총선은 그 교체의 완료를 의미한다”며 이 같은 구조적 변화의 핵심에 ‘세대’가 있다. 이들은 구질서의 해체를 원하며, 지역주의와 명망가·수구·고령자·엘리트를 기피하는 성향을 지닌다.”
그는 당시 20~30대를 크게 세 그룹으로 나눴습니다. 1980~1987년 사이에 대학에 입학했거나 성인이 된 ‘혁명세대’(현재 56~63세)는 시민항쟁과 광주민주화운동을 배경으로 ‘사회과학의 시대’를 살았으며, 이들에게 문화는 성장·권위·국가 주의와는 상반되는 저항 이데올로기를 의미했습니다.
다음은 ‘방황세대’로, 88학번부터 92학번(현재 51~55세)까지의 이들은 사회주의 몰락과 함께 정체성이 붕괴되는 혼란을 가장 절실하게 겪었다고 했습니다.
막내라고 할 94학번에서 04학번까지(현재 40~49세)는 ‘탐닉세대’라고 할 수 있으며, ‘외환위기와 민주화·세계화의 변화과정 속에서 자아실현·문화소비와 채널 다기화(多岐化)라는 정체성을 지니게 된다는 것이었습니다.(웬일인지 93학번이 빠져 있는데 단순 실수가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송 교수는 그러나 “이 세대가 성공한 것은 기존 질서의 부정과 파괴까지였을 뿐, 그 자리에 어떤 대안적 질서를 세울 것인가에 대한 합의는 이뤄지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앞으로 정국이 매우 심한 요동을 겪을 것임을 의미했습니다. 국내 정치에서는 세대적 열망이 실정법과 충돌하고, 부유세·소득평등·노동권익 같은 좌편향적 정책비중이 상승할 것이라는 얘기였습니다. 국제관계에선 민족적 동질성이 이념적 차이보다 우선시되며 구미·일본보다 중국·러시아 쪽으로 편향되며 친북과 반미 노선은 더욱 심화될 것이라는 전망이었습니다.
여기에서 비롯되는 위험성은 어떻게 할 것인가? 아직 그 해답은 없다고 했습니다. 송 교수는 “유럽의 경우 학생·노조·지식인에 의해 좌파 이념이 확산됐던 1970년대는 1인당 GNP가 8000~1만 달러였던 때였고, 이후 등장한 신보수 세력에 의해 2만달러가 달성됐다”고 말했습니다.
…송 교수가 분석했던 80학번에서 04학번에 이르는 사람들은 현재 한국 사회의 주류인 ‘3050′ 세대의 대부분을 차지하며 활약을 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이번 총선에서도 주류 세력이었습니다. 그런데 꼬박 20년이 흐른 지금 과연 ‘그 대안적 질서에 대한 합의’는 이뤄진 것일까요. 이제 그들은 기성세대인데 말입니다. 또 다른 교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정권 심판이라는 거대한 회오리바람 앞에서 개별 후보들의 도덕성 문제는 ‘잔가지’처럼 인식된 것”이라고요. 이쯤되면 문제는 세대 특성이라기보다는 다른 곳에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살짝 머리를 스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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