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이재묵]민심의 사전경고 계속 무시한 與의 패착

이재묵 한국외국어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2024. 4. 11. 23:33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이재묵 한국외국어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큰 이변은 없었다. 집권 여당이 개헌저지선을 가까스로 방어하였지만, 윤석열 정부의 중간 평가로는 너무 초라한 성적표를 받았다. 더불어민주당은 21대 국회와 마찬가지로 170석 이상을 차지하게 되었고, 국민의힘은 비례정당 의석을 합쳐 가까스로 100석을 넘기게 되었다. ‘야당심판론’과 ‘정권심판론’의 대립 구도 속에서 민심은 야당의 손을 압도적으로 들어줬다. 이로써 윤 대통령은 임기 5년을 여소야대와 함께하는 최초의 대통령으로 기록될 것이며, 임기 후반 국정 동력은 크게 위축될 수밖에 없다.


대선 신승-보선 참패에도 안이한 대응

국민의힘은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를 모조리 석권하였지만 불과 2년 사이에 민심이 빠르게 돌아섰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받아들여야 한다. 특히 여당은 이번 총선에서 수도권 122개 지역구 의석 중 오직 19석을 얻는 데 그쳤는데, 이는 전국 정당으로서 집권 여당의 위상에 큰 흠집이라 할 수 있다. 사실 국민의힘 입장에서는 이번 총선 참패를 예견할 수 있었던 여러 경고가 사전에 있었다. 애초에 지난 대선의 0.73%포인트 표차라는 결과 자체가 승자의 지지 기반이 취약하다는 사실을 함의했고, 게다가 총선에서 가장 많은 의석을 갖는 경기도에서는 2년 전 선거에서도 야당에 지지율이 밀렸다. 서울시장 선거와 관내 17개 구청장 선거에서도 승리는 하였지만 결과를 자세히 보면 아슬아슬한 우위인 경우가 많았다. 그런 가운데 총선을 6개월 앞두고 지난해 실시된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국민의힘은 참패하며 민심의 경고를 사전에 학습할 경험을 하였지만, 그렇게 허락된 절치부심의 기회를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또다시 야당의 ‘정권심판론’ 프레임에 갇히게 된 것이다.

정권 심판의 대상은 대통령과 여당을 포함하지만, 집권당 내부에서 대통령실에 대해 이견을 낼 수 없는 위계적이고 폐쇄적 구조라면 민심 이반의 궁극적 책임은 대통령실 쪽에 더 실린다. 실제로 한 달 전에만 해도 국민의힘의 총선 전망이 나쁘지만은 않다는 조사 결과들이 나오기도 하였으나, 호주대사 임명 건과 대파값 발언 논란 등 용산발 지지율 악재가 터지면서 다시금 정권심판론이 부상하였다. 그런데 지난 2년간 대통령 국정 수행 지지율을 보면 이번 총선의 정권심판론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예컨대 한국갤럽 정기 조사 결과에 따르면, 윤 대통령의 국정 수행에 대한 부정 여론은 줄곧 60%를 넘나들었다. 하물며 가장 최근 조사를 보면, 여당의 지역 기반인 TK 지역을 제외한 전국에서, 그리고 70대를 제외한 전 연령대에서 부정 여론이 긍정 의견을 압도하였다.

그렇다면 대통령에 대한 부정 여론의 주된 이유는 무엇일까? 같은 조사를 보면, 다수 응답자가 부정 평가의 이유로 우선 경제와 민생을 꼽으면서도 동시에 ‘독단적/일방적 (통치 스타일)’이나 ‘소통 미흡’ 등 불통과 협치 의지 부족을 높은 빈도로 꼽았다. 경제와 물가 문제가 당정만의 단독 책임은 아닐지 몰라도 그 민생 문제에 대한 당장 해결책이 아쉬운 당정은 입법부 내 다수 의석을 점유하고 있는 야당과 머리를 맞대고 소통하는 노력은 보였어야 한다. 즉, 유권자에게 야당심판론을 호소하려면 적어도 민생 문제 해결을 위해 야당을 향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정부 여당의 모습을 적극적으로 보여주었어야 한다는 것이다.


초라한 중간평가 성적… 협치는 필수

이번 총선 결과를 통해 나라가 정파적으로 또 지역적으로 양분되어 있음을 재확인할 수 있었다. 평범한 시민들은 야당의 입법 독주와 대통령의 반복된 거부권으로 정치가 공전하는 지난 2년이 재현되기를 바라지는 않을 것이다. 대통령이 남은 임기 동안 의미 있는 국정 성과를 남기고자 한다면, 이제 야당을 위한 협치 노력은 선택이 아닌 당위가 된 것이다. 소통하는 대통령실을 지향하며 청와대 용산 이전을 결단했던 초심을 되찾아야 할 것이다.

이재묵 한국외국어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Copyright © 동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