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표정 관리가"…실책 늘 감쌌던 류현진, 왜 페라자는 예외였을까
[스포티비뉴스=잠실, 김민경 기자] "그때 솔직히 표정 관리가 안 됐던 것 같아요."
한화 이글스 좌완 에이스 류현진(37)은 11일 잠실 두산 베어스전에서 아주 힘겹게 개인 통산 99번째 승리를 챙겼다. 류현진은 6이닝 94구 1피안타 2사사구 8탈삼진 무실점 완벽투를 펼치며 3-0 완승을 이끌었다. 한국에서 마지막으로 승리를 거둔 2012년 9월 25일 잠실 두산 베어스전(7이닝 1실점) 이후 4216일 만에 거둔 승리였다. 류현진의 국내 복귀 후 첫 무실점 호투 덕분에 한화는 5연패 늪에서 벗어나면서 시즌 성적 9승7패로 5위를 유지했다.
류현진은 누구보다 승리가 간절했다. 류현진은 지난 2월 한화와 8년 총액 170억원에 계약하면서 한국 야구계를 발칵 뒤집어놨다. 메이저리그 10년 커리어 종료 선언임과 동시에 괴물의 귀환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KBO 역대 최고 대우를 자랑하면서 한화를 5강 이상 성적을 낼 수 있는 전력으로 끌어올려 놓았다.
하지만 류현진은 기대와 달리 올 시즌 3경기에서 2패만 떠안으면서 14이닝, 평균자책점 8.36에 그치고 있었다. 한화 선발투수 가운데 승리가 없는 선발투수는 현재 류현진이 유일하다. 게다가 한화는 류현진이 4⅓이닝 9실점으로 부진했던 지난 5일 고척 키움 히어로즈전부터 5연패에 빠져 있었다. 그사이 한화는 1위에서 공동 5위까지 추락했다.
류현진은 스스로 만회하고자 하는 마음이 컸다. 승리 뒤 취재진과 만난 류현진은 "(첫 승이) 늦은 감이 있지만, 많이 늦었다. 그동안 계속해서 한 이닝에 집중적으로 실점으로 이어지면서 어려움이 있었는데, 오늘(11일)은 다행히 넘긴 것 같다. 나 때문에 연패가 시작됐다. 경기 전에 호텔 사우나에서 수석코치님과 만나 내가 잘못 시작된 것을 꼭 끊겠다고 말씀을 드렸다"고 간절했던 마음을 털어놨다.
최원호 한화 감독은 "류현진이 완벽한 피칭으로 상대 타선을 막아 주면서 복귀 첫 승과 함께 팀의 연패를 끊어줬다. 정말 노련한 피칭이었다"고 칭찬하며 마음의 짐을 드디어 덜어낸 에이스를 격려했다.
간절한 마음은 투구에 그대로 나타났다. 직구 최고 구속 148㎞, 평균 구속 145㎞로 구위가 살아 있었다. 그만큼 전력을 다했다는 뜻이다. 그동안 제구가 잘 되지 않아 마음껏 활용하지 못했던 체인지업도 이날은 잘 통했다. 직구(32개)와 체인지업(31개)을 거의 비슷하게 던지면서 커브(19개)와 커터(12개)도 적절히 섞어 던졌다. 커브도 19구 가운데 스트라이크가 16개에 이를 정도로 효과적인 구종이었다.
류현진은 5회까지 시종일관 안정적인 투구를 펼쳐 나갔다. 2회말 양석환 볼넷, 4회말 김재환 볼넷, 5회말 김기연 중전 안타까지 모두 3차례 주자를 내보냈는데, 모두 2사 이후였다. 빠르게 아웃카운트를 잡는 작전이 먹혔고, 특히 두산 타자들이 체인지업과 커브에 좀처럼 대응하지 못하면서 쉽게 경기를 풀어갈 수 있었다.
그사이 한화 타선은 적극적으로 득점 지원에 나섰다. 두산은 3전 전승을 거둔 선발투수 브랜든 와델을 앞세워 시즌 첫 시리즈 스윕에 도전했는데, 1회초 선두타자 최인호가 좌익수 왼쪽 2루타를 날리면서 선취점의 발판을 마련했다. 1사 2루에서는 노시환이 중전 적시타를 쳐 1-0으로 앞서 나갔다. 4회초에는 선두타자 채은성의 볼넷 이후 안치홍이 좌중월 적시 2루타를 쳐 2-0으로 거리를 벌렸다. 안심할 수 있는 넉넉한 점수차는 아니었지만, 류현진의 구위가 워낙 좋다 보니 2점도 꽤 크게 느껴졌다.
그런데 6회말. 우익수 요나단 페라자가 어이없는 수비 실책을 저질렀다. 1사 후 허경민이 평범한 우익수 뜬공을 쳤는데, 페라자가 글러브로 정확히 공을 잡지 못하고 떨어뜨리면서 1사 1루가 됐다. 순간 류현진의 표정은 굳었고, 실책 여파인지 다음 양의지 타석 때 폭투까지 나오면서 1사 2루 위기에 놓였다.
그러나 류현진은 실점하지 않았다. 양의지와 김재환을 차례로 우익수 뜬공으로 처리하면서 본의 아니게 페라자가 만회할 기회를 2번이나 더 줬다. 페라자는 실책 이후 한 손으로 글러브를 받쳐 두 손으로 정성스럽게 포구하면서 미안한 마음을 표현했다. 고개를 가로저으며 스스로 말도 안 되는 실책이었다는 것을 인정하기도 했다.
평소라면 야수 실책에도 너그럽게 대응했던 류현진이 이날만큼은 그러지 않았다. 이겼으니 장난이 섞였지만, 뒤끝 아닌 뒤끝이 남아 있었다. 류현진은 페라자의 실책과 관련해 "그때 솔직히 조금 표정 관리가 안 됐던 것 같다. 중심 타선이었고, 그래서 조금 더 집중하려 했다. 공교롭게도 마지막 두 타구가 다 그리로(페라자 쪽으로) 가는 바람에 페라자가 나보다 더 집중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고 답하며 웃었다.
실책이 돋보였을 뿐, 류현진은 이날 야수들의 든든한 수비 지원 속에 호투를 펼칠 수 있었다. 1회에는 1루수 안치홍이 2번이나 몸을 날려 뜬공을 처리하면서 류현진의 어깨를 가볍게 해줬다.
류현진은 이와 관련해 "경기 초반에 그런 플레이가 나오면 선발투수는 편안한 마음이 든다. 감사하다. 빠르게 아웃카운트를 잡을 수 있다. 야수들이 집중력을 보여줬고, 페라자 빼고는 좋았다"고 답해 한번 더 웃음을 안겼다.
류현진은 주무기 체인지업이 살아난 것에 가장 기쁜 마음을 표현했다. 류현진은 "한국에 와서 체인지업이 말썽이었는데, 다르게 던져서 잡은 것 같아서 만족한다. 그립은 똑같았고 스로잉을 빠르게 했다. 스피드도 그 전 경기보다 많이 나왔다. 각도 직구랑 비슷하게 가면서 헛스윙이나 범타 유도가 많았다"고 이야기했다.
직전 경기의 아픔은 그날로 잊었다. 8.36까지 치솟았던 평균자책점은 이날 무실점 호투 덕분에 5.85까지 낮췄다. 류현진은 "당일만 조금 충격을 받았다. 다음부터는, 초반이라 빨리 잊으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그러다 보니까 오늘 경기가 잘된 것 같다"고 말했다.
누구보다 류현진의 승리를 기다렸던 한화 팬들은 류현진이 등판을 마치고 마운드에서 내려올 때 "류현진!"을 크게 외치며 뜨겁게 반겼다. 승리로 경기를 마친 뒤에도 "류현진"을 외치며 "돌아와 줘서 고맙다"고 소리를 질렀다.
류현진은 "진작에 들었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해서 아쉬웠다. 경기 끝나고 (팬들의 함성을 들은 게) 더 좋았던 것 같다. 요즘 한화 팬분들께서 경기마다 홈과 원정을 가리지 않고 찾아 주시고, 응원해 주셔서 우리 선수들도 그만큼 집중해서 좋은 경기를 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 같다"고 감사한 마음을 표현했다.
류현진은 이제 개인 통산 100승에 도전한다. 정규시즌 개막 전부터 류현진은 2승을 더해 100승을 달성하면 뜻깊을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류현진은 "경기마다 똑같은 마음으로 준비하고 있다. 오늘(11일)처럼 선발투수가 할 수 있는 임무를 다 하면 100승은 따라올 것이라 생각한다. 1회부터 (마운드에서) 내려오기 전까지 항상 똑같이 준비할 생각"이라고 각오를 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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