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함이 낯섦 되는 순간 [책이 된 웹소설 : 이세계 TRPG 게임마스터]

김상훈 기자 2024. 4. 11. 2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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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된 웹소설 넘겨보기
이미 익숙한 소재들
새로운 형식에 넣으면
익숙한 이야기도 TRPG라는 게임에 넣으니 새로운 이야기가 됐다.[사진=펙셀]

창작에서 익숙함과 낯섦의 균형 잡기는 최대의 과제일 거다. 작품이 낯설면 독자는 거부감을 드러낸다. 반대로 익숙하면 작품을 접할 이유가 사라진다. 창작자들은 이런 난제 속에서 균형점을 찾기 위해 골몰한다.

웹소설에서도 균형 찾기는 꽤 어렵다. 웹소설은 큰 틀에서 규칙을 공유하며 장르적 문법의 틀을 과하게 벗어나려 하지 않는다. '무협이라서' '판타지라서' 장르 그 자체가 장점이 될 수 없어서다.

많은 웹소설이 직업이나 상황으로 이목을 끄는 이유도 같은 맥락에서다. 예컨대, 무협에선 남들이 검과 마법을 휘두를 때 정작 주인공은 조각을 하거나 대장질을 한다. '아카데미물'은 '소수자 전형'이나 '차별주의자' 주인공이 등장하곤 한다. 낯선 설정으로 신선함을 준 후 익숙한 법칙을 따라가는 방법으로 익숙함과 낯섦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는 것이다.

'1_394' 작가의 웹소설 「이세계 TRPG 게임마스터」는 독특하게도 낯섦이 아니라 익숙함을 앞세운다. 주인공인 '미친 마법사'는 대한민국에서 살았지만 마법이 있는 다른 세계에 환생한 인물이다. 자신에게 대마법사의 재능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주인공은 '환상' 마법사의 길을 걷는다.

주인공은 '환상' 마법을 활용해 전생에서의 취미였던 TRPG를 하고 싶어 한다. TRPG는 테이블톱 롤플레잉 게임(Tabletop Role-Playing Game)의 머리글자다. 참여자들이 캐릭터를 설정해 그 캐릭터를 조종하고, 게임마스터가 상황이나 설정을 부여하는 놀이다. 간략하게 설명하면 일종의 역할극이다.

흥미롭게도 주인공이 환상 마법으로 펼쳐놓은 역할 놀이를 다른 인물들은 '차원 이동 마법'으로 착각한다. 이렇게 인식의 격차가 발생하는 순간부터 작품이 흥미로워진다. 첫 'TRPG' 플레이 참여자는 황제의 둘째 아들 '이리드'다. 이리드 역시 주인공의 마법을 '차원 이동'으로 착각한다. 이리드는 주인공이 펼쳐놓은 '100년 후 미래'란 환상 속에서 모험을 겪고 사랑을 하며, 황위 경쟁을 벌인다.

[사진 | 노벨피아 제공]

이때 펼쳐지는 이야기는 클리셰를 충실히 따라간다. 특별히 새로울 게 없는 등장인물과 통속적인 전개지만 체험의 주인공이 이리드라는 점이 독특함을 준다. 그가 보여주는 생생한 반응은 정보 우위에 있는 독자가 느끼는 전능감과 겹쳐진다. '이미 아는 이야기'가 '나는 이미 알지만 등장인물은 모르는 이야기'로 변하는 거다. 익숙함이 낯섦으로 변하는 순간이다.

작품은 간략한 소개문을 통해 이후 진행할 플레이를 설명해놓았다. 무협이나 호러 등 익히 알려진 이야기들이다. 독자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저마다 자신이 알고 있는 클리셰를 언급하며 등장인물이 어떻게 반응할지 상상함을 통해서다.

다른 작품이었다면 이 익숙함은 단점으로 전락했을 거다. 그러나 「이세계 TRPG 게임마스터」에서 익숙함은 강점이 된다. 등장인물의 반응을 지켜보며 독자는 '즐거움'의 지점을 찾아낸다. 새로운 이야기를 접했던 과거의 자신을 추억할 수 있는 순간도 만끽할 수 있다.

김상훈 더스쿠프 문학전문기자
ksh@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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