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기조 바꿔라" 성난 민심 … 尹, 인적 개편으로 돌파구
대통령실 수석 5명 전원 사의
향후 개편 수위·폭에 관심쏠려
주요 개혁과제 동력 확보위해
巨野와 협치 더 절실해진 상황
이재명과 영수회담 가능성도
수직적 당정관계 탈피도 시급
한덕수 국무총리와 이관섭 비서실장을 비롯한 대통령실 고위급 참모진 대부분이 총선 패배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나겠다고 밝혔다.
윤석열 대통령이 어디까지 인적 개편에 나설지는 아직 미지수지만 이 같은 움직임은 윤석열 정부의 국정 기조 변화를 알리는 신호탄으로 해석된다.
선거 결과가 보여준 민의가 윤 대통령과 여당에 근본적인 변화를 주문했다는 점을 인정한 셈이기 때문이다.
11일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기자들과 만나 "선거 결과를 보셔서 아시겠지만 국민의 뜻을 받들자면 국정을 쇄신하는 게 당연한 거고, 국정을 쇄신한다는 건 인적 쇄신이 선행돼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행정 각부를 통할하는 한 총리를 포함해 장관급인 이 실장과 성태윤 정책실장, 차관급인 한오섭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 박춘섭 경제수석, 장상윤 사회수석, 박상욱 과학기술수석까지 수석비서관 5명이 모두 사의를 표명한 배경을 설명한 것이다.
이날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사퇴한 점까지 감안하면 당정대 수뇌부가 동시에 총선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나는 것이다.
역대 정부에서도 선거에서 패배한 후 당정의 인적 쇄신이 이뤄지기는 했지만 이처럼 여권 고위직 전원이 사의를 표명한 전례는 찾기 어렵다.
어느 선까지 사의를 수용할지는 윤 대통령 결단에 달렸다. '2기 대통령실' 체제가 출범한 지 약 4개월에 불과하다는 것이 윤 대통령의 고민 지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참모 총사퇴에 따른 국정 공백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에 따라 현실적으로는 일부 참모의 사의만 수용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다만 대통령실 고위 참모 중 국가안보실 소속 인사는 자진 퇴진 대상에서 제외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이 도발 수위를 높이고 전 세계적으로 국지전이 벌어지는 등 한층 엄중해진 외교·안보 상황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두 번째 쇄신 방향은 야당과의 협치다. 다음달 10일 취임 2주년을 앞둔 윤 대통령은 남은 임기 3년 동안 여소야대 국면에서 국정을 운영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현실적으로 범야권이 192석을 차지하게 된 만큼 윤석열 정부가 추진하는 연금·노동·교육 등 3대 구조 개혁과 세제·규제 개혁 등은 더불어민주당 협조 없이 불가능하다.
이와 함께 한 총리의 사의를 윤 대통령이 받아들이면 후임 총리 지명자의 임명 동의부터 예산안 처리까지 민주당 '동의' 없이는 어떤 일도 하기가 어렵다.
이날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도 '야당의 의석수를 고려할 때 민생안정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윤 대통령의 발표는 야당과 긴밀한 소통에 나서겠다는 것을 의미하냐'는 질문에 "그렇게 해석하셔도 좋다"고 답했다.
이는 그동안 야당이 줄기차게 요구해왔던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의 영수회담 가능성까지 열어놓은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윤 대통령은 취임 이후 과반 의석을 차지한 이 대표와 별도 회담을 열지 않았으며 이를 두고 야권에서는 협치 부족이라고 비판해왔다.
이 밖에 윤 대통령은 참모들을 통해 선거에서 드러난 변화의 필요성에 대해서도 수용하겠다는 뜻을 나타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기자들과 만나 "대통령은 선거 시작 전부터 어떤 결과가 나오든 그동안 국정 수행에 대한 국민의 평가라고 생각하겠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어 "총선 결과나 원인에 대해서도 저희가 되돌아보는 시간이 곧 있을 것이다. 다시 발표하겠다"고 덧붙였다.
마지막 단추는 수평적인 당정 관계 수립이다. 그동안 윤 대통령은 여당에 대해 강한 장악력을 보여왔다.
윤 대통령은 취임할 당시 국민의힘 대표였던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 축출, 나경원 전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 해임, 김기현 전 국민의힘 대표 사퇴, 김건희 여사의 명품 가방 문제를 둘러싼 한동훈 위원장에 대한 사퇴 요구 등 당과 이견이 있을 때마다 영향력을 행사했다. 대부분 윤 대통령이 주도하는 상황이 됐고 당은 끌려가는 모양새였으며 이는 수직적 당정 관계라는 여권의 고질적 문제점이 됐다.
이에 따라 새로운 국민의힘 지도부가 꾸려질 때는 수평적인 당정 관계 수립이 중요한 과제가 될 수밖에 없다. 현실적으로 윤 대통령이 지금과 같은 장악력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분석도 나온다. 앞으로 당정 갈등이 발생할 때 윤 대통령에 대한 당내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최악의 경우에는 탈당 요구까지 불거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윤 대통령이 국정 운영 기조를 변화할 움직임을 보이면서 현재 가장 큰 현안인 의료개혁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관심이 모인다. 의료계는 물론 여권 내부에서도 의대 2000명 증원을 고집하지 말고 증원 조치를 1년간 유예하자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당장 대표적인 비윤석열계 중진이자 의사 출신인 안철수 의원은 당선 다음날 곧바로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그는 "의대 증원을 1년간 유예하고 단계적 증원 방침을 정해 국민의 분노에 화답해야 한다"면서 "의대 증원 정책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인 책임자들의 경질이 불가피하다"고 공개적으로 요청했다.
[우제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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