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세기, 기록의 기억] (118) 신문사 윤전기
종이신문 전성기가 있었다.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한국인 최초로 양정모 선수가 금메달을 획득했을 때 신문사는 ‘호외(號外)’를 발행했다. 호외는 나라를 뒤흔든 사건·사고 발생 시 그 소식을 빠르게 전하려 발행하는 신문 형태의 인쇄물이다. 신문배달원들이 거리에서 “호외요!” 하고 호외 신문지 뭉치를 하늘 위로 뿌리면 뉴스속보가 삐라처럼 내려왔다.
“사회에서 일어난 사건을 신속히 전달한다”는 신문 본연의 임무 외에 종이신문은 재래식 변소(화장실) 휴지, 가난한 집의 도배지, 학생들 교과서 책 표지 그리고 땡볕을 막아주는 모자로도 변신했다. 그뿐만 아니라 종이신문을 모아놓은 신문스크랩은 정보의 보고(寶庫)였다.
열혈 신문 구독자 헤겔은 “조간신문을 읽는 것은 현실주의자의 아침기도”라고 했다. 앞날을 점치기 어려운 인간이 신에게 기도로 매달리는 것보다 신문을 펼쳐 세상 이치를 알아나가는 게 낫다는 말이다. 부르주아들이 정보를 독점하던 시절, 민중도 저렴한 가격으로 종이신문을 살 수 있었던 건 종이의 양면을 동시에 대량으로 인쇄할 수 있는 윤전기(윤전인쇄기)의 발명 덕분이다.
2024년 사진은 시간당 12만부, 28면의 신문을 컬러로 찍어낼 수 있는 3층 높이의 윤전기다. 윤전기 전원 스위치를 켜면 코를 찌르는 짙은 잉크냄새가 종이를 타고 흐르고 “웽~” 하는 기계 돌아가는 굉음에 윤전실 바닥이 요동친다. 새벽녘, 전국의 신문보급소에 신문이 배포될 수 있도록 윤전기는 촌각을 다투며 신문을 뱉어낸다. 그러다가 신문 기사 중에 ‘오보’로 판명되거나 혹은 ‘특종’이 터지면 그 내용의 첨삭을 위해 “윤전기 멈춰!” 외침이 다급히 들려온다. 윤전기 작동이 중단되면 그동안 인쇄된 신문들은 모두 폐지가 된다. 신문사에서 ‘윤전기 멈춰’는 달콤 살벌한 말이다.
종이 위 활자가 디지털에 밀려나고 종이신문은 온라인 뉴스 그림자에 가려져 구독자 수와 광고 매출이 시들시들해지고 있다. 그로 인해 ‘신문사의 심장’으로 대당 수백억원을 호가하던 윤전기도 노후화되고 있고, 점차 애물단지로 전락하고 있다. 미래의 어느 날, 신문사들이 모두 종이신문 발행을 중단하고 윤전기를 고철덩어리로 처분한다면, 그 소식은 ‘호외’처럼, 인터넷 온라인뉴스에 속보로 뜨게 될까?
* 이 칼럼에 게재된 사진은 셀수스 협동조합 사이트(celsus.org)에서 다운로드해 상업적 목적으로 사용해도 됩니다.
김형진 셀수스협동조합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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