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뉴스타파] ‘2024 위기의 한반도’ 1부 <김정은의 헤어질 결심?>
북남 관계는 더이상 동족관계, 동질관계가 아닌 적대적인 두 국가관계, 전쟁 중에 있는 두 교전국 관계로 완전히 고착됐다.
- 김정은 총비서 (2023년 12월30일, 노동당 제9차 전원회의)
80년 간의 북남 관계사에 종지부를 찍고 조선 반도에 병존하는 두 개 국가를 인정한 기초 위에서 우리 공화국의 대남정책을 새롭게 법화하였습니다.
- 김정은 총비서 (2024년 1월15일, 최고인민회의 제10차 회의)
‘김정은은 전쟁을 준비하고 있는가?’
2023년에서 2024년으로 해가 바뀌는 시기, 북한은 대남정책의 근본적 전환을 선언했다. 남북을 ‘통일을 지향하는 과도기적 특수관계’가 아닌 ‘전쟁 중에 있는 두 교전국 관계’로 규정한 김정은의 연이은 선언은 단지 구두선에 그치지 않았다.
북한은 곧바로 6·15공동선언실천 북측위원회 및 해외위원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민족경제협력국, 금강산국제관광국 등 거의 모든 대남기구를 해체했고, 통일을 지향하며 평양 남쪽에 세운 ‘조국통일3대헌장기념탑’도 철거했다. 그뿐만 아니라 지하철 역사, 노랫말, 교과서 등 북한의 일상생활에 담겨 있던 ‘통일’과 ‘민족’이라는 단어도 일제히 없앴다.
이러한 북한의 급격한 변화는 왜 일어났고,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궁극적으로 한반도 안보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분석을 채 마치기도 전에, 이번엔 ‘한반도 전쟁 위기설’이 대두됐다. 진원지는 미국 연구자들이었다.
올해 1월, 미국의 북한 전문매체 38노스에 ‘김정은은 전쟁을 준비하고 있는가?’라는 의미심장한 제목의 기고문이 실렸다. 시거프리드 헤커 박사와 로버트 칼린 연구원이 공동 집필했다. 두 사람은 북한을 여러 번 방문하고, 과거 북미 협상 과정에도 참여하는 등 미국 내 손꼽히는 북한 전문가이었기에 기고문이 던지는 경고의 무게감은 남달랐다.
대다수 국내 언론, ‘한반도 전쟁위기설’ 심도 깊은 분석 없이 전달에 그쳐
헤커와 칼린, 이 두 미국 연구자는 현재 한반도 상황이 ‘한국전쟁이 일어난 1950년 6월 이후 그 어느 때보다 위험하다’고 진단했고, ‘북한 김정은으로서는 절망적으로 내린 결정이겠지만, 북한은 전쟁을 하겠다는 전략적인 결정을 내렸다’고 주장했다.
국내 대다수 언론은 두 사람이 제기한 ‘한반도 전쟁위기설’을 대대적으로 보도했고, ‘전쟁이 임박한 게 아니냐?’는 불안감을 불러왔다. 그러나 국내 언론 대부분은 공동 저자들과 인터뷰는커녕 미국발 ‘한반도 위기설’을 별다른 검증이나 냉철한 분석 없이 중계·전달하는데 그쳤다. 더구나 미국발 한반도 위기설에 대한 국내 전문가들의 비판적인 논쟁과 평가도 학계를 넘어 대중에게까지 확산되지는 못했다.
공동 기고문을 ‘과장된 화법’으로 치부하기에는 현재 진행 중인 북한 내부의 변화가 심각하다. 그렇다면, 헤커와 칼린 두 미국 연구자가 제시한 ‘한반도 위기설’을 어떻게 읽어내야 할까.
뉴스타파 <목격자들> 제작진은 평화운동가인 임재성 변호사와 함께 남북 및 국제외교 전문가들을 두루 만나 의견을 구했다.
뉴스타파 <목격자들> 국내 언론으로는 ‘한반도 전쟁위기설’ 헤커 박사와 첫 인터뷰
우선, 미국의 북한 전문 매체인 ‘38노스’에 기고문의 공동저자인 시거프리드 헤커 박사와의 화상 인터뷰를 통해 한반도 ‘전쟁위기설’을 주장하는 근거를 물었다. 올해 1월, ‘김정은은 전쟁을 준비하고 있는가?’라는 기고문을 발표한 이후, 국내 언론이 저자인 헤커 박사와 직접 인터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임재성 변호사와의 화상 인터뷰에서 헤커 박사는 북한의 최근 변화는 “전술적인 게 아니라 전략적”이라고 강조하고,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하게 됐기에 기고문에 담긴 내용을 지나친 주장이라고 백안시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헤커 박사가 주장하는 김정은의 ‘근본적 변화’와 이에 바탕을 둔 ‘한반도 전쟁위기설’을 놓고, 여러 국내 전문가들에게도 평가와 의견을 두루 물었다.
국제정치학자 문정인을 포함해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김연철 전 통일부 장관, 김동엽 북한대대학원대학교 교수,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김창수 전 코리아연구원 원장, 정재원 국민대 유라시아학과 교수, 최은아 6·15남측위 사무처장 등을 만났다.
북한을 변화시킨 결정적 계기는 2019년 ‘하노이 노딜’
평가의 차이는 있어도, 제작진이 만난 전문가들은 하나같이 북한이 근본적인 변화를 결심하게 된 계기로 2019년 북미 하노이 회담의 결렬을 꼽았다. 북한은 김정은의 할아버지인 김일성 주석 때부터 수십 년간 북미 관계 정상화를 추구했지만, 2019년 하노이 회담이 성과 없이 결렬되면서 미국과의 관계 개선 기대를 접었고, ‘자력갱생’ 독자 노선으로 돌아섰다는 것이다.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북한은 미국과 일본 등 이른바 ‘남방 세력’과의 관계를 닫고, 중국과 러시아 등 이른바 ‘북방 세력’과 더 긴밀하게 협력하고 있다. 지난해 9월, 북러 정상회담이 대표적인 사례다.
(북한은) 남북 관계와 북미 관계, 남방 정책을 추진했는데 아무런 성과를 얻지 못했죠. (중략) 미련을 버리고 중국과 러시아 사이에서 경제적으로 군사적으로 외교적으로 생존을 추구하는 걸로 방향을 튼 거죠.
- 김연철 전 통일부 장관
북한의 ‘전쟁 중에 있는 두 교전국 관계’ 노선, 전술이 아닌 전략으로 일시적 현상 아냐
북한은 흡수통일을 추구하고 적대정책을 펼치는 대한민국 정부와 더는 통일을 지향하는 ‘특수관계’로 얽매이지 않겠다고 선언했고, 나아가 남북을 ‘전쟁 중에 있는 적대적인 두 교전국 관계’로 규정했다.
남한과 쭉 해 보니까 보수정부, 진보정부 할 것 없이, 특히 진보정부도 (중략) 실상은 흡수통일론자들 아니냐는 결론을 내린 것 같아요. 그러니까 우리 길로 가자, 우리 국가 제일주의로 가자라고 하는, 근본적 변화라고 봐요.
- 문정인 국제정치학자
핵심은 남한을 대하는 이러한 북한의 변화가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헤커 박사는 북한 김정은의 결정이 “전술적(tactical)”이 아니라 “전략적(strategic)”인 것이라고 믿기 때문에 “이런 상황이 조만간 끝날 것 같아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정은은 매우 실용적이고, 우리로 치면 북한의 MZ세대. (중략) 이건 오래 갈 것이다. 감히 말씀드리면 김정은 위원장 죽기 전에는 이 문제는 해결되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 김동엽 북한대대학원대학교 교수
윤석열 정부의 대북 정책은 여전히 “각주구검(刻舟求劍)”
따라서 ‘현재의 북한’은 더는 ‘과거의 북한’이 아니며, 북한 내부의 변화와 맞물려 한반도에는 이전과는 다른 전혀 새로운 국면이 펼쳐지고 있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는 올해 3·1절 기념사에서도 드러났듯, 흡수통일 노선과 북한에 대한 적대 정책을 좇고 있다.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이러한 윤석열 정부의 대북 정책을 “각주구검(刻舟求劍)”으로 표현했다. 고사성어인 각주주검은 ‘강물에 칼을 떨어뜨리자, 칼을 빠뜨린 뱃전 자리에 표시해 뒀다가 나중에 그 칼을 찾으려 한다’는 뜻으로, 시대가 변했는데도 낡고 보수적인 사고를 고집하는 융통성 없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북한은 이미 엄청나게 달라져 있어요. 저만치 가 있어요. 그런데 과거의 북한을 찾는 거예요. 여전히 시선도 과거의 북한에 머물러 있고. 시선이 과거의 북한에 머물러 있으니까 처방이나 대책도 마찬가지인 거예요
-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1950년 한국전쟁 이후 가장 위험한 상황이라 진단받는 한반도의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다음 주 방송할 '2024 위기의 한반도' 2부 <김정은의 전쟁할 결심?>에서는 현재 상존하는 한반도 위기 상황을 관리할 방법은 무엇인지 모색한다.
뉴스타파 목격자들 witness@newstap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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