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청도 미라’와의 대화
3000년 전 이집트 파라오 투탕카멘은 10대 때 일찍 죽는 바람에 업적을 남기지 못했지만 람세스 못지않게 유명한 파라오가 됐다. 그의 무덤만 유일하게 도굴을 면했기 때문이다. 황금 마스크 등 유물 수천점과 그의 미라가 3000년 전 고대로 가는 문을 열었다.
▶투탕카멘 미라는 장기를 모두 제거하고 40일간 건조한 뒤 톱밥을 넣고 아마포로 감아 만들어졌다. 자연 상태에서 미라가 되기도 한다. 1991년 알프스 빙하 지대에서 발견된 ‘얼음 인간 외치’는 추운 환경 덕분에 시간의 무게를 견뎠다. 외치는 키 160㎝, 몸무게 50㎏, 혈액형은 O형이었다. 몸에 문신을 새겼고 등에 화살 상처가 있는 그는 용맹한 전사였을 것이다. 죽기 전 마지막 식사는 밀과 고사리, 염소와 사슴 고기였다. 그의 몸이 5300년 전 선사시대 인류의 삶을 들려줬다.
▶우리나라에서도 미라가 적지 않은데 대부분 15~16세기에 유행했던 회곽묘(灰槨墓)에서 나온다. 석회로 목곽을 둘러싸는 회곽묘는 석회 두께가 최대 35㎜여서 물과 짐승이 침범하지 못한다. 석회는 굳을 때 고열을 낸다. 이때 내부가 건조되고 미생물도 사멸해 미라가 만들어지고 유물도 온전하게 보전된다는 것이다.
▶가슴 절절한 사연도 함께 세상 빛을 보곤 한다. 경북 안동에서 미라로 발견된 이응태는 1586년 31세로 죽었다. 관을 열었더니 아내가 저승 가는 남편에게 신고 가라며 자기 머리를 깎아 만든 신발과 남편에게 보내는 한글 편지가 출토됐다. ‘당신, 항상 내게 이르시기를 머리 세도록 살다가 함께 죽자고 하시더니 어찌하여 나를 두고 먼저 가시나요’로 시작한다. ‘여보 남들도 우리처럼 서로 어여삐 여기고 사랑할까요?(중략) 내 마음 어디다 두고 살아야 할지 모르겠으니 이 편지 보시면 내 꿈에 나타나 자세히 말해 주세요’라 적혀 있다. 중세 한국어를 파악할 수 있어 자료 가치도 크다.
▶국립 대구박물관이 경북 청도에서 10년 전 발굴된 미라를 연구해 그 성과를 최근 공개했다. 미라 주인공은 1642년 숨진 이징이란 인물이다. 회곽묘에 안장된 덕분에 누비저고리와 도포 적삼 등 당시의 복식에서부터 기생충 4종과 헬리코박터균에 감염됐다는 사실 등이 밝혀졌다. 미라가 시공을 초월해 들려주는 이야기는 풍성한 문화의 샘도 된다. 1932년 유니버설 스튜디오에서 영화 미라(The Mummy)를 선보인 걸 계기로 많은 영화가 제작됐다. 우리도 이응태 부부의 사연이 소설과 창극, 오페라로 만들어져 사랑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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