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일본 '전범국가' 넘어 '보통국가' 날개 달아주나
미일 양측이 정상회담을 통해 안보 협력을 강화하는 '글로벌 파트너십'을 선언했다. 일본이 전범국가를 넘어 '보통 국가'로 갈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가운데, 양측은 경제적 문제에서는 이견을 보이기도 했다.
10일(이하 현지시각) 미국 워싱턴 D.C에 위치한 백악관에서 정상회담을 가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는 이후 성명에서 양국 관계를 '글로벌 파트너'로 정의했다.
양측이 언급한 '글로벌 파트너십'의 핵심은 양자 및 다자 간 안보협력이다. 양측은 성명에서 미사일 공동 개발과 생산 등을 위한 방위산업 협력·획득·지원에 관한 포럼(DICAS) 개최와 평시 및 유사시 상호운영성을 강화하기 위한 양국군 지휘·통제 체제 업그레이드를 추진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극초음속 위협 대응을 위한 활공단계요격기(GPI) 개발 추진, 미국·일본·호주 간 미사일 방어 체제 네트워크 구축, 미국·일본·영국 간 정기 합동 군사훈련 실시 등도 주요 추진 사항으로 언급됐다.
여기에 미국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지난 2021년 9월 미국, 영국, 호주 간 안보네트워크로 출범한 '오커스'(AUKUS)에 일본의 참여를 논의했다고 밝혔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이날 회담 이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인공지능(AI)과 자율시스템 등 첨단 능력에 초점을 맞춘 '필러 2'(Pillar 2)에 일본이 참여하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기시다 총리는 공동 기자회견 이후 "오커스와 협력 관계에 대해 현재 결정된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고 일본 TBS 방송이 보도했다.
또 미일 양국 간 지휘‧통제 업그레이드와 관련해 일본 정부 대변인격인 하야시 요시마사(林芳正) 관방장관은 11일 "자위대와 미군은 각각 독립된 계통에 따라 행동하고 있다. (올해 안에 출범시킬) 자위대의 통합작전사령부가 미군의 지휘통제 하에 들어가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일본 <지지통신>이 전했다.
미일 간 이같은 안보 협력은 일본의 방위 정책을 바꾸는 계기가 될 것으로 관측된다. 일본은 그간 평화헌법 체제 하에서 '공격을 받을 경우에만 방위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을 골자로 하는 '전수방위'(專守防衛) 원칙을 가지고 있었는데, 미국과 안보 협력이라는 명분을 통해 군사력 강화에 박차를 가할 구실을 얻게 됐다는 평가다.
또 '방위산업 협력·획득·지원에 관한 포럼'이 사실상 무기 거래를 위한 목적에서 운영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무기 수출에 대한 족쇄를 풀고 본격적으로 이를 추진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양측의 이날 합의는 중국을 견제해야 하는 미국과 전범국가를 넘어 정식 군대를 보유할 수 있는 '보통국가'로 가고 싶은 일본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진 결과로 풀이된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번 결정에 대해 "순전히 방어적인 차원"이라고 선을 그었지만 파트너십 추진 과제들의 성격 상 목적에 있어 공격과 방어를 구분하기 힘들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바이든 대통령의 발언은 군사 협력의 명분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읽힌다.
양측의 군사 협력이 강조되면서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의 식민지 지배 등 과거사 문제에 대한 반성은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바이든 대통령은 한일 양측이 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했다는 것을 높이 평가하면서 "상처를 치유하고 새로운 장을 열기로 했다"고 말했다.
일본이 최근 북한과 정상회담을 추진하는 것에 대해 바이든 대통령은 환영의 뜻을 표했다. <AP> 통신은 바이든 대통령이 "우리 동맹국이 북한과 대화를 시작하려는 것을 환영한다"라며 "그들(북한)과 대화를 모색하는 것은 긍정적인 일"이라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기시다 총리는 납치자 문제 해결을 포함해 핵과 미사일 등 북한과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다면서 "북한과 여러 현안 해결을 위해 고위급 협의를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안보 사안에서 일치된 의견을 보이던 양 정상은 일본제철이 US 스틸을 인수하는 사안에 대해서는 다른 입장을 내놨다.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 철강 노동자들에 의해 움직이는 강력한 미국 철강 회사를 운용할 필요가 있다"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했으나 기시다 총리는 "법에 근거해 적절한 절차가 진행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AP> 통신이 전했다.
한편 일본 언론들은 일본 총리로는 9년 만의 국빈 방문에 달갑지 않은 평가를 하기도 했다. 집권당인 자민당의 '비자금 스캔들'로 낮은 지지율을 보이고 있는 기시다 총리에 대한 일본의 내부 여론이 보도에도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일본 <마이니치 신문>은 양측의 정상회담 이후 기자회견에서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했다.
신문은 "미 외교는 지금 이스라엘에 의한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침공,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시리아 공관 공격을 받은 이란에 대한 대응"등으로 분주하다면서 "바이든 외교 최측근 2명의 부재는 '국빈 대우라고는 해도 일본만 상대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라는 사정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지지통신>은 기시다 총리가 바이든 대통령과 공동 기자회견에서 중국을 동맹국이라고 발언하는 실수를 저질렀다고 보도했다. 통신은 기시다 총리가 "공동 기자회견에서 중일 외교에 관한 견해를 물었을 때, '동맹국인 미국'이라고 발언해야 할 부분을 잘못 발언했다"며 "그는 곧 실수를 깨닫고 황급히 다시 말했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 일본 매체 <주니치>는 기시다 총리의 이 발언 실수로 인해 일본 내에서 비판이 나오고 있다면서 "지지율이 떨어지는 가운데 이번 국빈방문에서 역전을 노리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스스로 발목을 잡는 결과를 초래한 것 같다"고 혹평하기도 했다.
[이재호 기자(jh1128@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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