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케가 알아본 천재 소년, 고양이를 잃고 그리다[그림책]
미츄
발튀스·라이너 마리아 릴케 지음|윤석헌 옮김|을유문화사|124쪽|1만5000원
고양이를 잃은 열두 살 소년이 그린 그림책이다. 그런데 그 소년이 바로 프랑스의 유명한 화가 발튀스다. 서문을 쓴 사람은 20세기를 대표하는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다. 지극히 화려한 컬래버레이션이다.
발튀스의 본명은 발타사르 클로소프스키 드 롤라(1908~2001)다. 발튀스는 어린 시절 애칭이었다. 발튀스 어머니의 연인이었던 릴케는 일찍이 발튀스의 재능을 알아보고 미술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후원했다.
<미츄>는 열두 살 발튀스가 반려 고양이 미츄를 잃고 슬픔에 젖어 그린 40점의 연작 그림이다. 이 그림을 본 릴케는 발튀스의 천재성을 감지하고 책으로 출간해주면서 직접 서문까지 써주었다. 화가로서 활동명을 본명 대신 애칭 발튀스로 할 것을 권한 것도 릴케다.
40점의 그림은 발튀스가 니옹 성에서 떨고 있던 작은 고양이 미츄를 데리고 집에 오는 순간부터 함께 일상을 나누는 순간들을 단순하지만 생동감 넘치게 묘사한다. 미츄는 턱시도 무늬를 지닌 근사한 고양이었다. 발튀스와 미츄는 놀이를 하고, 밥을 먹고, 산책을 하며 모든 순간을 함께한다. 미츄는 새로운 집으로의 이사도 씩씩하게 해낸다. 하지만 상실의 순간은 난데없이 찾아온다. 크리스마스 케이크를 너무 많이 먹어 병이 난 발튀스가 앓다 깨어나자 미츄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진다. 미츄를 찾아 지하실과 집 주변을 샅샅이 뒤진 발튀스가 집으로 돌아와 마침내 다시는 미츄를 만날 수 없다는 걸 깨닫고 눈물을 훔치는 순간 그림은 끝난다. 발튀스는 열한 살부터 열두 살에 걸쳐 이 그림들을 그렸다. 짧지 않은 시간 동안 그려나간 그림은 발튀스가 고양이와의 이별을 받아들이고 애도하는 긴 과정이었던 셈이다.
릴케의 재치 넘치는 서문이 이 책을 더 풍성하게 한다. 릴케 역시 고양이를 사랑하고 고양이의 매력을 간파했다. “고양이를 발견하는 건 아예 놀라운 일입니다! 그 고양이는 마치 무슨 장난감처럼 당신의 삶에 들어오지는 않으니까요. 고양이는, 지금 당신의 세계에 와 있다 하더라도, 조금은 밖에 머물러 있어요.” 릴케는 발튀스가 그림으로 보여준 상실감을 이렇게 우아하게 표현한다. “상실이란 두 번째 소유일 뿐이며, 그 두 번째 소유는 아주 내적인 것이며, 첫 번째와는 다른 식으로 강렬합니다.”
발튀스는 소녀들을 관능적이면서도 권태롭게 그린 그림으로 유명해졌다. ‘미투 운동’ 이후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걸린 그림 ‘꿈꾸는 테레즈’의 철거 청원이 이뤄지기도 했다. 성인이 된 발튀스의 그림에 대한 논란과 관계없이, 열두 살의 발튀스는 고양이와 함께 나눈 일상의 행복과 상실감을 섬세하고 충실하게 그림 속에 담아냈다.
이영경 기자 samemin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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