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재료가 꽃피운 미식 문명지 페루의 맛, 일본서 만나다

2024. 4. 11.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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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오브테이블
세계 최고 레스토랑 센트럴의
자매 레스토랑 'Maz'
태평양의 해산물·안데스의 육류·아마존의 작물
"마추픽추 아닌 세비체의 나라!"
다양한 지형과 기후가 만든 원재료에
이민자들의 다국적 요리 문화가 융합
카카오·감자 등 20%만 페루산 사용
게·백합·우니 등 현지 제철 재료 더해
독특하고 창의적인 퓨전요리 탄생
도자기 플레이팅으로 '五感 다이닝'


일본 도쿄에서 색다르고 멋진 다이닝을 경험하고 돌아왔다. 지난해 ‘월드 베스트 50 레스토랑’ 1위에 오른 페루의 대표 레스토랑 ‘센트럴’의 시스터 레스토랑 ‘마즈(Maz)’다. 마즈는 2022년 7월 도쿄에 문 열었고, 1년 만에 미쉐린 2스타를 거머쥐었다. 최근 가장 예약이 어려운 곳으로 꼽히는, 일본 미식가들에게 가장 관심을 받는 곳이기도 하다.

페루의 센트럴이 세계에서 제일 유명한 레스토랑으로 꼽힌 이유가 뭘까. 물론 순위라는 것이 늘 긍정의 의미로만 여겨지진 않지만, 온전히 대중적인 인지도로만 따져보자. 페루의 자연 환경과 기후는 대단히 오묘하다.

해안가에서 이어지는 사막지대부터 해발 6000m를 자랑하는 안데스 산맥, 항구 피스코와 호수들까지 다채로운 환경을 자랑한다. 식재료의 풍성함도 자랑거리지만 고산지대 특성상 하루 30도까지 벌어지는 일교차 덕에 음식 저장에 대한 고민이 늘 따르는 편이다. 그래서 레몬과 라임 등의 시트러스, 산을 이용한 절임 음식, 세비체와 같은 요리가 많다.

Maz의 스태프가 페루산 식재료를 소개하고 있다.

센트럴의 비르힐리오 마르티네스 셰프가 세계의 주목을 받기 전인 2011년. 아스트리드 이 가스통 셰프는 뉴 페루비안 퀴진을 세상에 알렸다. 안데스식 요리법뿐 아니라 스페인과 중국, 일본 등의 다양한 식문화를 하나의 접시에 고루 담은 이 재미있는 결실이 사람들의 관심을 끈 것. 철도 건설과 노동 현장에 투입할 인부를 구하기 위해 중국 이주 노동자들이, 사탕수수 농장에서 일하기 위해 도착한 일본 이주 노동자들이 정착해 만든 ‘니케이(Nikkei) 문화’가 결국 세비체를 완성한 것처럼 말이다.

마르티네스 셰프는 캐나다 오타와, 영국 런던 르꼬르동블루를 졸업하고 미국 뉴욕, 스페인 등에서 경력을 쌓았다. 페루를 대표하는 셰프 아쿠리오 가스통의 마드리드 레스토랑을 담당하며 서서히 그만의 창의력이 빛을 발했다. 마르티네스 셰프는 2009년 고향인 페루로 돌아와 센트럴을 열었다. 그와 아내 피아 레온이 함께 운영하는데, 부부는 수년간 육지와 바다, 산을 가리지 않고 페루 전역을 샅샅이 누비며 독창적인 식재료를 찾아냈다. 해발 20~4100m 고산지대에서 나는 다양한 식재료로 17개 이상의 메뉴를 개발해 코스로 다듬었다. 예를 들면 고구마만 해도 2000여 종이, 감자만 해도 3000여 종이 재배된다. 센트럴 레스토랑은 페루의 다양한 생태계를 접시에 담아낸다. 고도(高度) 개념을 활용한 천재적인 코스 메뉴엔 페루 사람들도 알지 못하는 식재료가 등장한다. 세상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스토리텔링과 경험이 세계인의 주목을 받은 이유다.

마즈는 그 센트럴이 처음이자 현재로선 유일하게 해외에 선보인 지점이다. 수석 셰프 산티아고 페르난데스의 지휘 아래 센트럴에서와 마찬가지로 바다와 해안 저지대, 열대 우림, 안데스 고원, 아마존 정글에 이르기까지 페루 리마에 있는 놀라운 생태계의 다양성을 반영한다. 채식 옵션을 포함한 정교한 저녁 식사는 9개 코스로 구성되는데, 각각 다른 지형을 반영한다. 페루는 사막에 가까운 해안가, 안데스 고산지대, 내륙의 아마존 등 크게 세 지역으로 구분되는데 이 다양한 자연환경 때문에 재미있고 다양한 식재료가 분포한다. 불편한 교통과 환경 덕(?)에 자연스레 식재료의 다양성도 보존되고 있다. 마즈는 이와 같은 리마의 풍경과 전통 음식을 더한 고도를 테마로 음식을 낸다. 남태평양의 찬 바다 해수면 2m 아래 가장 낮은 고도에서 시작해 사막, 그리고 높은 열대 우림지역으로 이동하는 흐름으로 진행된다. 그 이름은 ‘버티컬 월드(vertical world)’.


마즈는 센트럴과 다르게 전체 식재료 중 20%만 페루산을 사용한다. 바이오다이내믹 커피, 카카오, 탈수 감자, 식용 차코 클레이를 포함한 핵심 재료 외 나머지 80%는 일본 내에서 조달한다고. 첫 전채요리로 나온 ‘시 리프(sea reef)’는 겨우내 일본에서 나는 세 가지 품종의 게를 한입거리로 만들어 내는 일본식 가이세키와 페루비안 그 사이 어디 즈음에 있었다. 코스 요리 중엔 카모틸로 감자를 쪄서 제공하는, 안데스 원주민 공동체가 사용하는 전통적인 후아티아 흙 오븐 요리도 만날 수 있었다. 겨울에 가면 일본 현지의 제철을 맞이한 유리네(百合根·백합뿌리)를 감자 대신 익혀 내놓는다.


맛도 뛰어나지만 예상치 못한 화려한 색상으로 시각마저 즐겁다. 시그니처 요리인 ‘오션 헤이즈’는 해조류의 섬세한 가닥과 우니의 깊은 맛이 만났다. 대미를 장식하는 디저트 또한 큰 의미를 담았다. 카카오 친척인 모캄보와 코포아주에 초점을 맞춰 놀랄 만큼 다양하다. 그는 초콜릿과 기타 코코아씨 추출물 외에도 주스, 과육, 지금까지 버려진 과일 내부 껍질까지 활용해 맛을 끌어냈다. 카카오로 만든 모든 것으로 산미와 감미, 쓴맛까지 다양한 노트를 창조했다.


20명만 앉을 수 있는 마즈의 이름은 센트럴 레스토랑 연구센터 마테르 이니시아티바의 모토인 ‘Afuero hay mas(저기에 더 많은 것이 있습니다)’에서 따왔다. 페루의 생태계를 통해 손님들을 안내하지만, 그들이 하는 일이 이보다 더 감각적이고 다채롭다는 얘기다. 색상과 질감을 요리에, 예술품과 도자기를 다이닝 경험에 통합하는 시도. 그래서 마즈에 다녀오면 마음 속에 작은 창이 열리는 것만 같다. 정글과 바다, 높은 산맥을 넘나드는 곳에서 낯선 여행을 한 것 같은 느낌이랄까. 페루의 희귀 식재료에 일본 식재료를 결합한 요리는 언젠가 리마로의 생동감 넘치는 여행을 꿈꾸는 이들에게 거부할 수 없는 선택지다.

김혜준 푸드 콘텐츠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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