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뒤로 ‘숨긴’ 나라살림 87조 적자…“건전재정” 자화자찬
지난해 나라살림 적자 규모가 애초 계획에 견줘 29조원 가까이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재정 지출을 계획보다 28조원 줄였는데도 대규모 적자가 난 셈이다. 이는 낙관적 세수 예측 탓에 사상 최대 수준인 59조원의 세수 결손이 난 데 따른 것이다. 예정된 지출 축소에 따른 부담은 상당부분 지방자치단체와 지방교육청이 떠안았다.
세수펑크에 지출 줄이고 적자 늘리고
정부가 11일 발표한 ‘2023 회계연도 국가결산’ 자료를 보면, 지난해 정부 총수입은 573조9천억원으로, 재작년 12월 국회를 통과한 본예산상 총수입에 견줘 51조8천억원 줄었다. 세수 추계 실패로 국세수입이 연초부터 쪼그라든 결과 예산 대비 총 56조4천억원의 국세가 덜 들어온 데 따른 것이다. 총수입은 국세와 기금 수입 등으로 구성된다.
총지출은 본예산에 견줘 28조원 줄어든 610조7천억원이다. 예상보다 세수가 덜 들어오자 재정 지출을 공격적으로 줄인 셈이다. 예산보다 줄어든 지출 규모는 전체 예산(본예산 총지출)의 4.4% 규모이자 같은해 국내총생산(GDP)(2236조3천억원·잠정)의 1.3%에 이른다. 이에 따라 2022년 총지출(결산 기준)에 견줘 지난해 총지출은 71조7천억원 쪼그라들었다. 그만큼 부진한 경기의 마중물 구실을 정부 재정이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의미다.
총지출을 공격적으로 줄였음에도 재정적자는 예산 편성 당시 계획보다 크게 늘었다. 총수입에서 총지출을 뺀 통합재정수지 적자 규모는 36조8천억원으로 본예산에 견줘 23조7천억원, 통합재정수지에서 국민연금 등 사회보장성기금수지를 뺀 관리재정수지 적자는 28조8천억원 더 늘어난 87조원이다. 국내총생산 대비 관리재정 적자 비율은 3.9%로, 애초 계획보다 1.3%포인트 더 높다. 국가채무(D1 기준)는 1126조7천억원이다. 지디피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50.4%로 사상 처음으로 50%선을 넘어섰다.
국가채무 지켰다며 건전재정 자화자찬
한덕수 국무총리는 이날 국무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예상치 못한 세수 감소에도 지출 구조조정 노력으로 국채 발행 없이 국가채무를 계획 안에서 관리할 수 있었다”며 “건전재정은 미래 세대에게 빚과 부담을 물려주지 않겠다는 약속”이라고 말했다. 애초 예산상 계획 수준에서 국가채무를 관리한 점에만 주목한 발언이다. 실제 국가채무는 예산상 계획보다 약 18조원 줄었으며 국가채무비율도 0.1%포인트 감소했다.
그러나 이는 대규모 세수 결손에 정부가 지출 축소로 대응한 탓에 재정의 경기안정화 기능이 정상 가동되지 않았다는 점을 외면한 자평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전문위원은 “세수결손 상황에서 정부가 재정의 역할을 축소하지 않았다면 지디피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늘어났어야 하는 것”이라며 “지출을 대폭 줄여버린 결과인 국가채무비율 방어에 대해 정부가 잘한 일이라고 평가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말했다.
정부가 그나마 외국환평형기금(외평기금)에서 재원을 끌어온 덕택에 지출 축소 규모가 28조원에 그친 측면도 있다. 그러나 추가경정예산 편성을 통해 세수 결손에 대응하거나 지출을 조정하는 원칙에서 벗어난 기재부의 자의적 재정운용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이 수석전문위원은 “대규모 세수결손 상황에서도 ‘추경은 없다’는 기존 선언에만 매달리면서 외평기금 활용이란 변칙적 재정 운용을 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재정운용 실패 피해 지자체·교육청에 떠넘겨
기재부의 자의적 재정 운용을 보여주는 또다른 단면은 역대 최대인 45조7천원 규모의 ‘불용’(예산을 편성하고도 실제로는 쓰지 못하는 돈)이다. 앞선 5년(2018년∼2022년)의 경우 불용 규모는 7조원대∼12조원대였다. 지난해 대규모 불용은 세수결손 상황에서 정부가 임의로 지출을 줄인 것이다. 이 과정에서 지방자치단체와 교육청에 줬어야 할 재원 중 18조6천억원이 감액됐다. 기재부가 초유의 세수부족을 추경이란 정공법을 피한 채 그 부담을 지자체와 교육청에 떠넘긴 셈이다.
윤석열 정부 편성 첫 예산부터 꼬여버린 재정 운용은 앞으로도 그 난맥상이 이어질 공산이 크다. 건전재정과 감세, 각종 신규 재정사업 등 서로 아귀가 맞지 않는 정책들이 뒤엉켜 있기 때문이다. 당장 올해의 경우 내수 부진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되는 탓에 또다시 세수 결손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올해 세수에 영향을 미치는 지난해 주요 기업들의 실적도 전년보다 크게 줄어든 터다. 여기에다 정부의 각종 감세안까지 현실화되면 재정 운용이 난맥상을 보일 여지가 크다. 정부가 재정운용의 꼬인 실타래를 풀 수 있을지는 내달 말로 예상되는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가늠될 전망이다.
최하얀 기자 chy@hani.co.kr 박수지 기자 suji@hani.co.kr 안태호 기자 ec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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