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지 마, 연결되지 마 [김소민의 그.래.도]

한겨레 2024. 4. 11.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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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행 도서정가제는 할인 여력이 있는 판매자에게만 유리하다. 한 동네책방의 모습. 정용일 기자

김소민 | 자유기고가

내가 대체 무슨 짓을 하려는 거지? 지난 2월 경남 남해, 을씨년스러웠다. 시작은 지난해 5월이었다. 그때 나는 구불구불 해안선을 따라 마을을 품은 남해에 반했다. 그리고 1년 뒤 남해로 이사하기로 한 거다. 20여명이 돈을 모아 동네책방을 열기로 했다. 2월 회색빛 바다를 끼고 진눈깨비에 따귀를 맞으며 남해 동네책방들을 돌아다녔던 까닭이다.

“돈 벌기를 포기했구나.” 내 계획을 들은 사람들의 반응을 요약하면 이랬다. 맞는 말이다. 인구 4만명인 남해에 도서관은 딱 두 군데다. 10~20평 규모 작은 동네책방 10여곳이 점점이 흩어져 있다. 첫번째 방문한 책방엔 엽서, 달력 등 소품들이 진열돼 있었다. 사장님이 디자이너다. “제가 오늘(일요일) 하루 매출 얼마 올린 줄 아세요? 1만3천원이요. 그것도 책이 아니라 제가 만든 판화 팔았어요.”

한국의 출판시장에 대해 알아갈수록 동네책방이 있다는 게 신기할 지경이다. 한국에서야 뭐든 안 그렇겠느냐마는 서점은 클수록 유리하다. 대형 서점이나 온라인 서점은 책을 정가의 65% 정도에 입고한다. 동네책방은 75% 정도다. 게다가 대형, 온라인 서점은 안 팔린 책을 반품할 수 있지만 동네책방은 재고를 떠안아야 한다. 현행 도서정가제는 정가제인 듯 정가제 아닌 정가제다. 15%까지 할인해줄 수 있다. 책을 싸게 들여오는 대형 서점에서나 해볼 수 있는 가격 정책이다. 이미 테마파크 롤러코스터보다 가파르게 기운 시장이다.

국무조정실·방송통신위원회·과학기술정보통신부·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 1월22일 정부서울청사에서 합동브리핑을 열어 단통법 폐지, 도서정가제 개선, 대형마트 영업 규제 개선 등의 내용을 담은 생활규제 개혁 방안을 발표했다. 연합뉴스

이런 상황에서 문화체육관광부는 약 올리기가 아니면 대체 무엇인지 모를 정책을 최근 내놨다. “지역 서점을 살린다”는 명분으로 지역 서점은 책값을 15% 이상 깎아줄 수 있게 하겠다는 거다. 정부는 상반기 중 이런 내용을 담은 출판·인쇄진흥법 수정안을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란다. 현행 15%도 할인하기 힘든 지역 동네책방들한테? 책을 기부하란 이야긴가? 게다가 지역에서 자본력을 갖춘 몸집 큰 책방이 맘먹고 제 살 깎는 할인에 돌입하면 그 주변 책방은 다 죽는다.

이렇게 “지역 서점을 살리는” 데 지대한 관심을 지닌 정부는 정작 동네책방의 숨통이었던 예산은 대폭 삭감해버렸다. 동네책방이 그나마 경쟁력을 가질 수 있었던 건 북토크, 독서모임 등을 꾸려 커뮤니티의 구심점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이런 프로그램들을 뒷받침하던 ‘지역 서점 문화활동 지원’ 예산 6억5천만원은 올해 모두 사라졌다. 독서동아리 활동비 등을 떠받치던 ‘국민독서문화증진 지원사업’(2023년 기준 60억원)도 전액 삭감됐다. 동네책방은 책만 팔지 않는다. 책을 매개로 낯선 사람들을 연결하는 ‘제3의 장소’다.

내가 남해에 반한 이유 중 풍경은 절반이다. 나머지 절반은 사람이었다. 남해상주동고동락협동조합은 아이들에게 다랭이논 생태농업을 가르치고, 노인들의 집 마당에 작은 텃밭을 함께 꾸린다. 방과후 아이들이 함께 노는 상상놀이터를 운영한다. 동네 사람들을 연결하는 사회적기업인 동고동락은 7명을 고용하고 있는데 그 가운데 3명은 취약계층이다. 이들의 인건비가 올해 간당간당한다. 정부의 손길이 닿지 않고, 보통 기업은 돈이 안 될 게 뻔해 하지 않는 복지서비스를 유지해온 사회적 경제 전체가 올해를 넘겨 생존할 수 있을지 골몰한다. 정부가 지난해 1조1183억원이던 예산에서 60%를 깎아버렸기 때문이다.

‘읽지 마, 연결되지 마!’ 윤석열 정부의 문화 정책을 요약하면 이렇다. 정부가 꿈꾸는 인간은 ‘나’라는 점으로 축소된 소비자가 아닐까? 트라우마를 연구해온 베셀 반 데어 콜크는 책 ‘몸은 기억한다’에서 사람은 타인과의 연결 속에서만 안전함을 느낄 수 있다고 했다. 오다가다 만나는 느슨한 연결이 필요하다. ‘혼자인 나’는 두려움이 삼킨다. 법철학자 마사 누스바움은 두려운 사람은 두 가지 함정에 빠지기 쉽다고 했다. 하나는 절대 권력에 복종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소수자 혐오다. 자기 약함을 직면하기 두려워 사회적 소수자에게 투사한다. 읽고 생각하지 않는, 연결되지 않은 개인이야말로 지배하기 좋다.

남해에서 두번째로 들른 책방은 기념품점 안에 자리 잡았다. 책마다 책방지기가 손글씨로 쓴 감상이 빼곡하다. 책방지기는 “왜 책방을 하는지 모르겠다”면서도 한 글자씩 또박또박 적는다. 그가 쓴 글자들은 초대다. 그래도 “미련한 연결”을 열망하는 사람들은 있고, 남해엔 봄이 오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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