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27년 후배' 김재섭, 도봉에 붉은 깃발 어떻게 꽂았나
4.10 총선에서 집권 여당이 역대 최악의 참패를 당한 가운데 더불어민주당의 전통적 텃밭인 서울 북부권역에서 나 홀로 당선된 김재섭 국민의힘 후보가 눈길을 끈다. 국민의힘에 서울 도봉갑 승리는 단순한 1석의 문제가 아니라 보수 몰락의 선거 결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기회를 엿볼 수 있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분석이다.
특히 김 당선인은 1987년생 청년 정치인으로서 진영에 국한되지 않는 현장 중심 민생 정치의 가능성을 열었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남다르다.
11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개표 결과에 따르면 김 당선인은 서울 도봉갑 선거구에서 4만6374표를 얻어 4만5276표의 안귀령 민주당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박빙의 승부 끝에 1000여표 차의 역전승이었다.
김 당선인의 승리 소식은 단숨에 정치권의 화제로 떠올랐다. 이번 총선에서 범야권이 190석 이상을 휩쓰는 등 국민의힘이 헌정사상 여당으로서는 가장 큰 패배를 당한 탓에 김 당선인의 국회 입성은 더 눈에 띄었다. 각종 선거 현황판에서 서울 강북 대부분 지역이 온통 파란색(민주당 상징색)이었지만 김 당선인 덕에 도봉갑만 빨간색(국민의힘 상징색)으로 칠해졌다.
김 당선인은 서울대 법대 출신으로 1960년생인 윤석열 대통령의 27년 후배이기도 하다. 스타트업 창업 등의 과정을 거쳐 청년 정치를 시작했고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 등을 역임했다.
지난 2020년 제21대 총선에서는 도봉갑에서 현역인 인재근 민주당 의원과 맞붙어 40.5%의 득표율로 패배했다. 도봉갑은 수도권에서도 호남 출신이 많은 대표적 지역구로 꼽히며 과거 32년 동안 제18대 총선(신지호 전 의원) 때 단 한 차례를 제외하면 모두 민주당 계열 후보들이 당선됐던 곳이다.
김 당선인의 승리 비결은 기본에 충실했다는 점이다. 먼저 지역 기반이 확실하다. 곧 출산 예정인 딸을 포함하면 김 당선인 집안의 4대가 도봉구에 살게 된다. 해당 지역구에서 나고 자랐고 지금도 살고 있는 말 그대로 '주민'이다.
소통은 적극적이되 낮은 자세로 임했다. 유세원들을 대동하고 다니는 방식보다는 주로 아내와 함께 이동하는 형태로 선거운동에 나섰다. 40대 여성 A씨는 "부부가 같이 다니는 모습을 보면 위화감도 덜하고 인사 나누기도 편해 보였다"고 했다.
또 국민의힘 지지세가 상대적으로 약한 쌍문역 일대에서 더욱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았다. 민주당 지지자였던 60대 남성 B씨는 "항상 웃으면서 겸손하게 몸을 숙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무엇보다 주민들의 가려운 곳을 정확히 파악했고 '공약'이 시민의 입을 통해 자연스레 퍼지도록 만들었다. 대표적인 게 '잔디 공약'이다. 김 당선인은 지역구 내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인근에서 아이들과 수시로 만났다. 선거권도 없는 학생들이지만 "형이 당선되면 학교 운동장에 잔디를 깔아주겠다"는 약속은 제대로 먹혔다.
아이를 키우는 가정이 상당수를 차지하는 도봉구 특성상 집집마다 부모들은 "재섭이형 찍어달라"는 자녀의 아우성과 직면해야 했다. 실제 이 때문에 본투표 마감 직후 출구조사에서 김 당선인이 오히려 뒤처지는 예측 결과가 나오자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밑바닥 분위기와는 다르다"는 반응이 나왔다는 후문이다.
특별한 뒷배 없이 스스로 지역을 다져 값진 1승을 빚어낸 김 당선인이 제22대 국회에서 어떤 역할을 보여줄지 기대된다. 김 당선인은 이날 당선 소감에서 "보수 험지라 불리는 도봉에서 저를 선택해주신 주민분들의 선택에 존경과 경의를 표한다"며 "초심을 잃지 않는 국회의원이 되겠다"고 했다.
당이 처참한 패배를 당한 것에는 "국민들의 엄중한 경고를 깊이 통감한다"며 "정부가 바로 갈 수 있도록 당 내에서 혁신적인 목소리를 많이 내겠다"고 밝혔다.
박종진 기자 free21@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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