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증원 규모 재조정해야"…전문가들이 보는 의정갈등 해법은
4·10 총선이 지나고도 의정갈등이 극으로 치달은 채 해결되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의사단체들이 하루빨리 의대 증원 규모를 조정하는 등으로 협상해 의료대란 국면을 마무리지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정부가 면허정지 행정처분을 집행하지 않은 상태로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을 추진하면 시간이 해결해줄 것이란 견해도 있다.
전공의들을 필두로 의사들의 집단사직이 시작된 지 52일째인 11일 의료역량은 약화하고 있다. 지난 4일 기준 27개 중증응급질환 중 일부 질환에 대한 진료제한 메시지를 표출하는 권역응급의료센터는 16개소로 지난달 첫 주 10개소 대비 증가했다. 상급종합병원은 의사 부재로 환자를 받지 못해 경영환경이 악화하고 있다. 이번 주(8~9일) 기준 '빅5' 상급종합병원의 일 평균 일반입원병상 입원 환자 수는 4556명으로 평시(2월1~7일) 7893명 대비 약 42% 감소했다.
전문가들은 정부와 의사들이 협상에 나서 의정갈등을 해소해야 한다고 본다. 신응진 대한병원협회 의료현안 관련 상황대응위원회 위원장(순천향대학교 중앙의료원 특임원장)은 "지금처럼 의정갈등이 강대강으로 가면 몇 년 동안은 부작용이 있을 것"이라며 "단순 의사만의 문제가 아니다. 많은 병원들의 경영환경이 어려워지면서 노동계 문제로까지 확대되고 있고 제약·의료기기 산업도 환자 감소로 어려움에 처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는 2000명 증원을 고수하고 전공의들은 의대 증원과 필수의료 패키지를 백지화하라고 하는데 양쪽 다 억지 주장인 면이 있다"며 "증원 규모를 재조정하는 방향으로 양쪽이 다 양보를 해 해결방안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를 통해 전공의들이 의료현장으로 복귀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정부가 의대 증원 필요성의 근거로 든 보고서를 작성한 신영석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명예연구위원은 증원 규모를 2000명씩 5년이 아닌 1000명씩 10년으로 조정해 타협하되 별도의 위원회를 꾸려 의대 정원을 정할 것을 제시했다. 신 위원은 "정부와 의료계가 강대강으로 계속 부딪치면 환자들이 피해를 볼 것이기 때문에 시급히 의료체계 정상화를 모색해야 한다"며 "의료계는 대표성 있는 창구를 구성하고 정부와 의료계가 대화를 통해 합의점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부가 전공의 면허정지 처분은 하지 않고 의대 증원 규모를 1000명 정도로 줄여 협상하는 식으로 유연하게 대처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며 "이후 다른 나라처럼 상설기구를 운영해 3년마다 추계한 뒤 의대 정원을 탄력적으로 조정하는 매커니즘을 만들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달 말까지만 의대 정원 규모를 정하면 되기 때문에 신속히 합의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2000명의 증원 규모를 유지해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정형선 연세대 보건행정학과 교수는 "총선에서 여권의 패배는 예견됐던 것이고 더불어민주당도 의대 증원에는 찬성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정부가 2000명 의대 증원 정책은 그대로 추진해야 한다"며 "행정적으로도 이미 증원을 발표를 한 상황이라 바꿀 수 없다"고 봤다. 또 "20년 이상 의사를 더 안 뽑아 생기는 문제에 비하면 전공의들이 1년 못 와서 유급되는 과정은 큰 문제가 아니다. 사회 발전을 위해 일정 정도의 마찰적 고통을 겪는 것"이라며 "사태 악화를 막기 위해 면허정지 처분은 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병원 경영 문제는 병원들이 알아서 해결하되 장기적으로 건강보험 수가로 해결해야 한다"고도 했다.
한편 환자단체에선 의정갈등의 문제 해결을 위해 국회가 중재할 것을 요구한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는 이날 논평을 내고 의료현장 정상화를 위해 국회가 중재하고 사태 재발 방지를 위해 국회가 입법을 추진할 것을 촉구했다. 환자단체는 제22대 국회에 바라는 10가지 환자 정책도 제안했다. △환자의 투병과 권익 증진에 관한 법률(환자기본법) 제정 △의료인 인력 확충과 배분, 재정 투입은 기피과 필수중증의료에 집중할 것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 정책 강화 △신약의 신속한 건강보험 등재 △간병·생애말기 돌봄 환자중심 재설계·지원 △환자참여형 환자안전 환경 조성 △장기이식 비용 국가책임제 △의료인 집단행동 시에도 필수의료가 정상 작동할 수 있도록 하는 법적 근거 마련 △전문의 중심의 수련병원 구축 △진료지원인력 법제화 등이다.
박미주 기자 beyond@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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