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명 일하는 해외기업 한국법인은 '5인미만 사업장' 아니라는데…
외국기업의 경우 국내에 연락사무소 또는 지점을 두거나, 작은 규모의 법인 정도를 설립하여 사업을 영위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이때 국내에서 고용하는 상시근로자의 수가 5인 미만이라면, 기업으로서는 근로기준법 제11조에 따라 근로기준법 조항의 상당수에 대한 적용 제외를 기대하기 마련이다. 특히 근로기준법 제11조에 따라 적용 제외를 받는다면, 정당한 이유 없이도 비교적 자유로운 해고가 가능하게 되는 등 인력운용을 유연하게 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일부 하급심 판례는 설령 ‘법인’을 설립한 경우라고 하더라도, 경우에 따라서는 본사와 실질적으로 하나의 사업장으로 보아 근로기준법 제11조의 적용 제외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법인의 경우라고 하더라도 이와 같은 기준을 적용하고 있는데, 연락사무소나 지점을 둔 경우에는 더더욱 근로기준법 제11조의 적용 제외를 인정받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점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관련 판례의 입장을 살펴보고 과연 이러한 규율이 타당한지 살펴보고자 한다.
독일계 기업이 한국 법인을 설립하고 상시근로자 5인 미만을 고용한 사안에서, 1심은 근로기준법 제11조의 적용 제외를 인정하였으나, 2심은 독일 본사와 하나의 사업장을 이룬다고 보아 근로기준법 제11조의 적용 제외를 인정하지 않았다. 2심은 근로기준법의 입법취지에 비추어, 사업주가 ‘하나의 활동주체’로서 활동한 것인지 여부는 형식이 아닌 실질적인 근로관계를 기준으로 판단하여야 한다면서, 근로기준법 적용 기준이 되는 하나의 사업장인지 여부는 근로장소의 동일성과 더불어 제공된 설비의 사용관계, 사업의 목적 및 수행 방법, 조직체계, 인사교류, 업무 수행 과정에서의 구체적 지휘·감독관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하여야 한다고 보았다.
그에 따라 여러 사업(장)의 경영상 분리·독립성은 각 목적 사업 사이의 유기적 연관성이나 차별성, 임원이나 근로자 등의 인적 교류 여부, 재정이나 회계의 분리 여부, 업무 장소의 분리·독립 여부, 경영상 의사결정 조직의 분리 여부, 업무상 지휘·감독이나 근태관리의 분리 여부 등을 전체적으로 살펴 판단해야 한다고 했다. 장소적 독립성은 하나의 요소일 뿐, 장소적으로 독립되어 있다고 해서 반드시 경영상 독립된 사업(장)으로 인정할 것은 아니며, 이는 외국에 위치한 본사와 국내에 있는 영업소와 같이 장소적 독립성이 인정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라고 판단했다.
또 다른 하급심 판례사안에서도, 법원은 다국적 기업의 특성과 관련하여, 국적이 다르고 법적으로 분리된 여러 기업으로 구성된 다국적 기업에서 일정 수준의 지휘·감독 관계가 발생할 수 있기는 하지만, 그 업무상 관여 및 지휘·감독을 추상적이고 간접적인 지휘·감독에 불과하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로, 외국 본사와 한국 법인을 하나의 사업장으로 보아 근로기준법 제11조의 적용 제외를 인정하지 않았다.
다만 아직 위 쟁점에 관하여 본격적으로 그 법리를 상세하게 다룬 대법원판례는 발견하기 어렵다.
헌법재판소는 근로기준법 제11조를 합헌으로 결정하면서 “영세사업장의 열악한 현실을 고려하고, 다른 한편으로 국가의 근로감독능력의 한계를 아울러 고려하면서 근로기준법의 법규범성을 실질적으로 관철하기 위한 입법정책적 결정으로서 거기에는 나름대로의 합리적 이유가 있다고 할 것이므로 이로 인하여 청구인의 평등권이 침해되었다고 볼 수 없다”라고 판단하였다(헌법재판소 1999. 9. 16 자 98헌마310 결정).
근로기준법 제11조의 도입 취지를 ‘영세사업장의 열악한 현실 고려 및 국가의 근로감독능력의 한계’에서만 찾는다면, 앞서 소개한 판례들과 같이 해외 본사에서 국내 사업에 적극적으로 관여한 사안에 있어서는 동조를 적용할 수 있는 여지가 크게 줄어들 수밖에 없다. 국내에 진출한 외국 기업들의 경우 업무 특성상 아무래도 상당 부분 국내 사업에 적극적으로 관여하는 사례가 많은데, 이는 어찌 보면 국내 기업이 해외에 진출하여 소규모 현지 법인을 설립하여 현지에서 이루어지는 사업에 적극적으로 관여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국내에서 5인 미만을 고용하는 외국 기업의 경우 언어·문화의 차이, 인사관리의 한계 등으로 적어도 국내에서는 영세사업자에 비하여 법 준수능력이 훨씬 크다고 평가하기는 어려우므로, 근로기준법 제11조를 적용하더라도 그 취지가 크게 훼손된다고 평가하기는 어렵다고 생각된다. 헌법재판소는 영세사업장의 열악한 현실 고려할 때 법 준수능력을 동일하게 기대하기 어렵고, 이에 입법자가 근로기준법 적용을 제한하더라도 차별의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고 판단했다. 해외에 본사를 두고 있는 외국 기업의 경우, 자금력은 국내 영세사업장보다 나을 수 있지만, 그렇다고 법 준수능력이 훨씬 크다고 평가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외국 기업이 국내에서 5인 미만을 고용할 경우, 아무래도 언어·문화·법제의 차이, 인사관리의 한계 등으로 법 준수능력을 내국인 사용자와 동일하게 요구하는 것이 현실적이지 않을 수 있다.
그렇다면 근로기준법 제11조를 적용하더라도 그 취지가 크게 훼손되지 않을 수 있고, 정책적으로 근로자에게 유익한 순기능의 측면도 있다면, 충분히 그 결론을 수긍할 수 있지 않을까? 외국 기업의 일자리는 일반적으로 급여·복지 수준이 높아 선호되는 경우가 많고, 상대적으로 유능한 고연봉 근로자들이 주로 지원한다는 점에서 더 많은 고용기회 창출을 위해 근로자로서의 권리를 일부 양보할 여지가 있다고도 생각된다.
그렇지 않다면, 현실적으로 우수한 외국 기업들의 양질의 일자리가 위축되는 효과가 발생할 것이다. 국내 고용보다는, 싱가폴 등 다른 법정지에 Asia Head Office를 두고 국내에서는 판매·공급 계약만 체결하거나 위촉직을 선임하는 경우가 늘어날 수도 있는 일이다. 특히 글로벌 기업들을 다수 보유한 국가들(대표적으로 미국, 중국)은 해고가 자유로운 법정지(At-will Jurisdiction)인 경우가 많고, 이에 아시아 지역에서 Head office를 많이 유지한 도시(대표적으로 싱가폴, 상하이) 역시 해고가 자유로운 법정지라는 공통점이 있다. 물론 사용하는 언어와 시장규모를 주요하게 고려하지만, 실무를 경험하면서 우리나라의 고용 유연성이 다른 나라에 비하여 크게 떨어진다는 점이 분명 우리 나라를 아시아 Head office 소재지로 선택함에 있어 장애요인으로 작용하는 측면이 있음은 부인하기 어렵다.
나아가 최소한 국내 법인을 설립한 경우에는, 법인격 남용에 이를 정도(법적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함부로 이용)로 보기는 어렵다고 생각된다. 우리나라 기업의 경우도 해외 진출시 현지 법인을 설립하여 소규모로 고용하는 사례가 많다. 역지사지로 생각해 본다면, 국내 기업이 해외 현지 법인을 설립하는 주요 목적이 법적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수단을 만들어 내려는 데 있지 않음은 쉽게 알 수 있다. 이에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적어도 해외 기업이 국내에 법인을 설립하였고, 국내 법인에 고용된 상시근로자 수가 5인 미만이라면, 최소한 동조를 적용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국제적으로 우리나라 법제에 대한 예측가능성을 높이고, 외국 투자기업이 합리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는 법정지로 평가받기 위해서도, 최소한 국내 법인을 설립한 경우에는, 법인격 남용에 이를 정도의 사정이 없다면, 근로기준법 제11조의 적용을 인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된다. 국내 진출 초기에는 영세사업장의 혜택을 주어 외국 기업의 진출을 장려하고, 그를 통하여 궁극적으로는 해당 기업이 성장하여 더 많은 국내 일자리를 창출하고 근로기준법 전체 조항을 준수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보다 유익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상시 고용하는 근로자가 5인 미만인 ‘사용자’라고 규정하지 않고 ‘사업 또는 사업장’이라고 규정한 점은, 앞서 소개한 판례들과 같이 법인격 남용을 더 쉽게 인정하려는 취지가 아니라, 반대로 외국 기업이 국내에 영업소 또는 지점을 설립한 경우에도 근로기준법 제11조를 적용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주려는 취지로 이해된다. 위 판례들은 근로기준법 제11조가 ‘사업 또는 사업장’이라고 규정하고 있다는 이유로, 국내 법인이 설립된 경우임에도 더 쉽게 법인격 남용을 인정하여 동조의 적용을 배척하였다.
하지만 근로기준법 제11조가 ‘사용자’가 아닌 ‘사업 또는 사업장’이라고 규정한 취지는, 기본적으로 외국 기업이 국내에 ‘영업소 또는 지점’을 설립한 경우에도 동조를 적용받을 수 있는 길을 확보해주려는 취지로 이해하는 것이 보다 타당하다고 생각된다. 추후 이에 관한 대법원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해본다.
구교웅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
Copyright © 한국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