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주주총회 잔혹사
[아이뉴스24 김동호 기자] 제 22대 국회의원선거(이하 총선)가 끝났다. 많은 이들의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는 가운데, 유권자들의 소중한 한표가 누군가를 위해 행사됐다. 누군가는 웃고 누군가는 울고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선거 결과와는 무관하게 오늘도 증권(주식) 시장은 열린다. 오전 9시가 되면 또 수많은 투자자들이 '매수'와 '매도'라는 두 가지 선택지를 마주하게 될 것이다.
만약 매수를 선택한다면 그는 즉시 해당 상장사의 주주가 된다. 주주란 무엇인가? 지금까지의 역사를 돌아보면 국내 증시에서 주주의 지위는 그다지 높지 않다. 주주는 상장사의 자금조달에 도움을 주는 고마운 투자자지만, 어딘가에선 호구 취급을 당하거나 혹은 회사의 정상적인 경영을 방해하는 협잡꾼 취급을 받기도 한다. 이런 일이 꼭 소액주주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최대주주가 됐어도, 회사에 대한 정당한 권리행사에 방해를 받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지금도 생각보다 많은 곳에서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많은 주주들이 자신의 정당한 권리를 찾기 위해 연대를 만들어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그들의 목소리는 여전히 미약한 수준이다. 주주들이 자신의 정당한 한표(의결권)을 행사하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지난 달 열린 다수 상장사의 주주총회 현장을 되돌아보면 현실은 생각보다 더 심각한 수준이다. 지난해 9월 씨티씨바이오의 최대주주가 된 파마리서치는 특수관계자를 포함해 총 18.3%의 지분을 확보했지만, 지난 3월 정기 주총에선 의결권을 제한당해 고작 5%의 지분만을 인정 받았다. 기존 최대주주이자 최고경영자인 이민구 대표 측(15.3% 보유)은 최대주주보다 적은 지분으로 회사의 주요 현안들을 자신의 입맛대로 정할 수 있었다. 씨티씨바이오 소액주주연대가 새 최대주주인 파마리서치에 힘을 보탰지만, 파마리서치의 의결권이 제한되면서 이렇다할 성과없이 주총이 끝났다. 이후 파마리서치의 법적 대응이 있을 것이란 말이 나오지만, 경영권 분쟁이 조속히 마무리 되길 바라는 주주들의 속은 타들어가고 있다.
주총 개최가 하루 종일 지연되는 경우도 있었다. 지난해 거래정지에 이어 최근 상장폐지 사유 마저 발생한 셀리버리는 오전 9시 시작할 예정이었던 주총을 9시간 가량 끌다 저녁 6시가 다 돼서야 열었다. 소액주주들과 갈등을 겪고 있는 셀리버리는 이날 주총 시작 15분 만에 주총 안건들을 승인하며 날림 처리라는 비난을 받았다. 심지어 주총 개최 이틀 전 주총 장소를 서울시 영등포구에서 경기도 김포시로 바꾸는 등 주주들의 참여를 방해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정기 주총에 앞서 현 대표이사 해임 안건 등이 올라왔던 임시 주총 역시 소액주주들과 의결권 인정 여부 등을 놓고 대치하다 장소대관시간 종료를 이유로 안건에 대한 논의없이 임시 주총을 종료시켰다. 회사를 믿고 자신의 소중한 돈을 투자했던 주주들은 이렇다할 목소리도 못내고 문전박대를 당하고 있는 셈이다.
최근 정부가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겠다며 '밸류업 프로그램'을 내놨다. 주주환원을 강화하라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주주들이 당연히 누려야할 권리도 누리지 못하고 있다. 고작 1년에 한번, 주주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주총의 참여가 제한되고 의결권 마저 제한을 받는 일이 생기고 있다. 주총에 참석하는 것도 힘들고, 힘들게 참석한 주총은 하루 종일 지연되다 몇분 만에 끝나버리는 일이 생기고 있다.
어릴때부터 늘상 들었던 말이 있다. 'IT 강국'. 이미 전자 주총을 통해 모든 주주가 자신의 정당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 기반은 마련돼 있다. 기업들이 그것을 원하지 않을 뿐이다. 각자의 주주가 전자 주총을 통해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정당한 권리를 행사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 그것만 돼도 국내 증시의 밸류업에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다.
/김동호 기자(istock79@inews24.com)Copyright © 아이뉴스24.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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