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시경 꺼리는 의사들, 난치병 췌장암 누가 고치나"…교수의 호소

정심교 기자 2024. 4. 11.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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췌장암·담도암 환자가 급증하면서 5~10년 내로 췌장암이 우리 국민의 사망 원인 암 1위로 올라설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이들 암 덩어리를 떼는 내시경 시술을 할 수 있는 의사가 올해 고작 3~4명 신규 배출될 것으로 보인다. 대한췌장담도학회 소속 교수들은 "시술이 워낙 어려운 데다 시술 후유증이 커 의료사고에 대한 부담까지 크다"며 "그런데도 정부의 필수의료 지원 패키지에 빠져 있어 젊은 의사들이 기피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10일 대한췌장담도학회에 따르면 올해 유럽과 미국의 사망률 1위 질환은 췌장암으로 집계됐다. 유럽췌장학회(EPC)에 따르면 오는 2040년경 췌장암은 다른 암과 두 배 이상 격차를 벌리며 완벽하게 1위로 올라설 전망이다. 이진 한림대동탄성심병원 소화기내과 교수(전 대한췌장담도학회 이사장)은 "우리나라도 5~10년 내 췌장암·담도암이 모든 사망원인 1위 암을 차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과거 한국인은 못 먹고 버티는 건 잘 해왔는데, 잘 먹었을 때의 대비가 잘 안 돼 있다"며 "이에 따라 담석 기반 질환이 급증했다"고 설명했다. 외과 수술 가운데 맹장 수술을 제치고 담낭 절제 수술이 최다 수술로 올라선 것도 이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진 교수는 "똑같은 암 환자여도 내시경 치료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환자의 생존 기간이 2배, 3배, 4배로 늘어난다"며 "담즙 배액을 어떻게 잘 빼주고 돌리느냐에 따라 예후가 크게 차이 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췌장암은 난치 암으로 꼽힌다. 더 큰 문제는 소화기내과에서 담당하는 췌장암·담도암에 대한 내시경 시술을 의사들이 꺼린다는 것. 이진 교수는 "췌장·담도 분야는 내과, 특히 소화기내과에서도 '3D'로 꼽힌다"며 "그만큼 어려운 시술이어서 의사들이 하지 않으려는 분위기가 형성됐다"고 말했다.

그는 "많은 의사가 췌장·담도 질환 공부하고 이 분야 치료에 헌신해주면 좋겠는데 췌장·담도 질환 전담 교수가 올해 많아야 4~5명 배출될 것 같다. 그 많은 환자 누가 고칠까? 굉장히 안타깝고 걱정스럽다"고 했다.

이진 한림대동탄성심병원 소화기내과 교수(전 대한췌장담도학회 이사장)은 지난 5일 서울 광진구 그랜드 워커힐 서울에서 열린 대한췌장담도학회 국제학술대회에서 "우리나라도 5~10년 내 췌장암·담도암이 모든 사망원인 1위 암을 차지할 것"이라고 주장했다./사진=정심교 기자

의료사고에 대한 대비도 시원찮다는 게 학회의 주장이다. 이진 교수는 "시술 후 문제가 생기면 '블레임'을 많이 받는다"며 "그렇다면 그런 위험한 일을 했을 때 수가가 적절하게 보전돼야 하는데, 공부와 헌신에 비해 돌아오는 부담이 크다"고 지적했다.

부담이 큰 이유 중 하나는 정부가 필수의료를 살리기 위해 내놓은 정책 중 '소화기내과의 내시경 시술'이 빠져 있기 때문이라는 게 학회의 의견이다. 이준규 동국대 일산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정부가 심뇌혈관 질환과 소아청소년과·산부인과 질환 등을 필수의료 범위에 담고 있다"며 "내과 8개 분과 가운데 심장내과는 필수의료에 포함되지만, 중환자실에서 인공호흡기를 관리하는 호흡기내과는 빠져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응급으로 담도염을 내시경 시술하거나, 위장관 출혈에 대해 지혈술을 하는 내시경 분야는 정부의 필수의료 영역에서 아예 빠져 있다. 내과가 모든 질환 중 환자가 가장 많은데도 필수의료에서 빠져 있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또 "췌장·담도 질환을 보는 소화기내과 교수 5~10명이 곧 은퇴하는데 신규 교수가 될 3년 차 전공의가 3~4명밖에 안 들어왔다"며 "그들이 대학병원에 남아 췌장·담도 질환을 계속한다는 보장도 없고, 2차 병원이나 개원가로 빠지는 경우가 점점 늘고 있어 인력이 부족하다"고 토로했다.

내시경을 이용해 췌장·담도 질환을 치료하는 ERCP(내시경적 역행성 담췌관조영술)는 우리나라에서 시행하는 전체 내시경 시술 중 약 1%에 불과하다. 하지만 의료분재중재원에 따르면 전체 내시경 관련 의료 분쟁의 약 4분의 1이 ERCP다. 일반 내시경 시술에선 합병증 발생률이 1% 이하에 불과하지만, ERCP의 경우 10%에서 췌장염 같은 합병증이 발생하고 있다.

이민정 복지부 필수의료총괄과 보건사무관은 "필수의료의 범위를 특정 과에 한정하지 않고 우선순위에 따라 지원하려 한다"며 "의사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복지부 급여과와 상의해 지원이 필요한 필수의료의 범위를 점차 넓혀갈 것"이라고 말했다.

정심교 기자 simkyo@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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