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힘서도 “참패 한동훈, 집에 가야”…정치적 벼랑 끝으로
국민의힘이 4·10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에 대패하면서 석달 반 동안 ‘원톱’으로 선거를 이끈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위기에 빠졌다. 그는 민주당에 과반을 내주는 초라한 총선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국민의힘은 당분간 패배 책임을 두고 극심한 내홍에 휩싸일 것으로 보인다.
한 위원장은 10일 저녁 6시 국회 도서관에 설치된 당 개표상황실에서 지상파 방송3사(KBS·MBC·SBS)의 출구조사를 지켜본 뒤 “국민의힘은 민심의 뜻을 따르기 위한 정치를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출구조사 결과가 실망스럽다”고 말했다. 한 위원장은 11일 오전 총선 결과에 대한 공식 입장을 밝힐 예정이다.
당내에서는 한 위원장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다. 한 초선 의원은 “한 위원장은 책임을 지고 집에 가야 한다. 정권심판론이 거센데 ‘범죄자 심판’만 얘기하고, 선거 판세 전략을 너무 잘못 짰다”고 말했다. 선거 과정에서 ‘정권심판론’이 거센데도 정책이나 비전을 말하지 않고 외려 야당 심판을 내세우는 패착을 저질렀다는 것이다.
선거대책위원회 핵심 관계자도 “정권심판론이 그렇게 높은데, 당이라도 ‘전달자’가 되어 유권자의 분노를 풀어주는 노력을 해야 하는데 그런 게 안 보였다”며 “생각보다 더 최악의 결과라 한 위원장도 버티기 쉽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당 주변에서는 “이재명, 조국이 잠정적 범죄자라는 걸 국민이 다 아는데도 왜 지지율이 높은지, 그 이면을 전혀 들여다보지 않았다”는 비판이 선거운동 기간 내내 제기됐으나 한 위원장은 돌아보지 않았다.
한 위원장은 지난해 12월 비대위원장에 취임한 지 석달 반 만에 정치적 벼랑 끝에 서게 됐다. 총선 승리→전당대회 출마→당대표→대선행이라는 예상 경로에서 크게 이탈할 가능성이 커졌다. 한 초선 의원은 “한 위원장이 전당대회에 나오는 것은 맞지 않는다. 선거 과정에서 캐릭터의 한계를 보여줬고, 정치적 역량 부족을 절감했기 때문에 당대표 선거는 쉽지 않다고 본다”고 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한 위원장은 선거 승패를 떠나서, 잠시 떠나 있을 필요가 있다”며 “본인도 계속 소모가 되고, 국민 입장에서도 계속 나오면 싫증이 날 수밖에 없다”고 했다.
특히 한 위원장이 총선에서 보수의 외연 확장에 한계를 노출한 것은 지도자로서 치명적인 약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는 윤석열 대통령과 선명한 차별화를 하지 못했고, 공식 선거운동 기간에는 격한 말로 중도·무당층의 반발을 샀다. 그는 공식 선거운동 첫날인 지난달 28일 “정치를 개같이 하는 사람이 문제”라고 했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의 말을 쓰레기 같은 말이라고 하기도 했다.
선거 막바지에 이르러서는 책임 회피와 읍소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했다. 한 위원장은 지난 1일에는 “정부가 부족하지만, 그 책임이 저한테 있는 건 아니지 않나”라고 했다가, 다음날인 2일 “모든 잘못과 책임은 저에게 있다”고 했다.
그는 당내 비판 세력을 포용하지도 못했다. 당내에서 중도층 유권자의 지지를 얻으려면 유승민 전 의원이 선대위에서 역할을 해야 한다는 제안이 많았지만, 한 위원장은 “생각해본 적 없다”며 일축했다. 선대위 관계자는 “한 위원장의 팬덤은 기존 국민의힘 지지층을 벗어나지 못한 것이었고, 외연 확장엔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다”고 했다.
한편, 국민의힘은 20·21·22대 총선에 내리 패하면서 극심한 후유증에 시달릴 것으로 보인다. 당장 당내 주류인 친윤계와 비윤계의 책임 공방이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또다시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를 꾸려야 한다는 전망이 나온다. 한 초선 의원은 “당분간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가면서 극심한 혼돈에 빠질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국민의힘이 이번에 비대위를 꾸리면 윤 대통령 취임 이후 23개월 만에 주호영 비대위→정진석 비대위→한동훈 비대위에 이어 네번째 비대위를 출범시키게 된다. 비대위원장 후보로는 총선에서 살아 돌아온 윤재옥 원내대표나 유승민 전 의원 등이 거론된다.
당정 갈등도 불거질 가능성이 크다. 윤석열 정부의 독단과 불통, 실정 등이 핵심 패배 요인으로 꼽히는 만큼, 수직적 당정 관계를 극복하고 대통령실과 거리두기를 해야 한다는 요구가 분출할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은 이준석, 김기현 전 대표가 사실상 윤 대통령의 의중에 따라 교체되는 등 용산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한 영남 지역 의원은 “당은 영남당으로 전락하고, 수도권은 전멸 수준이니 당이 극심한 혼돈에 빠지게 될 것”이라며 “윤 대통령은 더는 국정 기조를 유지할 수 없는 처참한 심판을 받았다”고 말했다. 선대위 관계자는 “윤석열 정권 심판 정서를 당에서 막아주기에는 한계가 있었다”며 “당과 용산 사이에 내분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고 본다. 선거에서 살아 돌아온 사람이나 진 사람 모두 윤 대통령 때문에 선거에서 졌다고 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교수는 “단순히 비대위만 바꿔서는 해결되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다. 당정 분리론은 물론, 윤석열 대통령 탈당 얘기까지 나올 것으로 보인다”며 “재창당 수준까지 논의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서영지 기자 y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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