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에서] 분양 주택까지 세금 들어가서야

정순우 기자 2024. 4. 11.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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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서울 시내의 한 미분양 아파트 분양 사무소 앞에 현수막이 게시돼 있다./뉴스1

코로나 및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촉발된 공사비 급등의 충격이 민간 재개발·재건축에 이어 공공(公共) 분양주택 사업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3기 신도시 중 최초로 올 하반기 분양 예정인 인천 계양신도시 아파트 약 1300가구의 사업비가 2년 전 사전 청약 때보다 30% 뛰었고, 비슷한 시기 분양을 준비 중인 수도권 공공택지 5곳도 사업비가 적게는 20%에서 많게는 50%가량 늘었다. 건설에서 사업비란 인허가 비용과 이자를 제외하면 공사비가 전부다.

민간 사업에서 공사비가 이렇게 올랐다면 사업자는 분양가를 높여서라도 손실을 만회하려 했을 것이다. 하지만 공공 주택은 공기업인 LH(한국토지주택공사)가 주체다. LH의 상급 관청인 국토교통부는 적자를 감수하고서라도 분양가 상승을 최대한 억제하겠다는 입장이다. 공사비 때문에 민간 건설사들이 신규 착공 및 분양을 중단한 상황에서 공공이라도 제 역할을 해야 한다는 취지다.

정부는 기업이 아니기 때문에 사회적 필요에 따라 수익성 없는 사업도 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정부 주도의 택지 개발 방식으로 주택을 보급해왔기 때문에 다른 국가들에 비해 공공의 주택 공급 비중이 크다. 하지만 취약 계층을 위한 임대주택도 아닌, 분양주택의 가격까지 정부에서 지나치게 통제하면 자칫 시장 질서가 흔들릴 수 있다.

지난 정부 부동산 정책이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는 가장 큰 원인은 시장 논리를 무시했다는 점이다. 시장에서 형성된 가격이 있는데 이를 무시하고 민간 아파트의 분양가를 시세보다 수억원씩 낮추도록 강제했다. 그 결과, 청약에 당첨된 극소수 사람들은 금전적 이익을 누렸지만, 결국엔 주택 공급이 급감하면서 집값이 폭등해 수많은 무주택자가 피해를 봤다.

공공 분양주택의 도입 취지를 살리려면 최대한 낮은 가격에 분양해야 한다. 하지만 적자를 감수해야 할 정도로 분양가를 낮게 통제해버리면 공급할 수 있는 주택 수가 줄어들고, 민간 주택 시장도 더욱 위축될 공산이 크다. 큰 틀에서 보면 지난 정부의 과도한 시장 개입과 같은 결과를 낳을 수 있다. 게다가 LH 적자가 누적되면 결국 국민 세금으로 메워야 한다.

현 정부가 출범한 2022년 5월은 지난 정부 때 경험했던 집값 급등 공포감이 주택 수요자들의 이성을 마비시킨 시기였다. 정부가 공공 분양주택 공급 계획을 공격적으로 수립할 만했다. 하지만 지금 상황은 180도 달라졌다. 요즘 자가 주택이 없다고 조급해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다. 미분양도 쌓여가고 있다. 이렇듯 주택 수요는 줄었는데 공사비와 금리는 치솟으니 건설사들이 신규 사업을 못 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무리한 가격 통제 정책을 펴는 것은 득보다 실이 더 클 수 있다. 지난 정부와 같은 부작용을 경험하지 않으려면 정부가 좀 더 신중해질 필요가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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