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윤의 하이쿠로 읽는 일본] [9] 기다리던 순간은 언제나 빨리 지나간다
사람 그리워
등불 켜는 무렵에
벚꽃이 지네
人恋[ひとこひ]し灯[ひ]ともしころをさくらちる
일본은 벚꽃 철에 입학식을 한다. 우리와 다르게 4월에 학기가 시작하기 때문이다. 지금도 잊지 못하는 광경은 길을 걷다 우연히 본 도쿄의 어느 초등학교 입학식. 자기 키 반만 한 란도셀(일본 초등학생 책가방)을 멘 아이가 학교 앞 벚나무 아래에서 엄마 손을 잡고 기념사진을 찍고 있었다. 때마침 부드럽게 불어온 바람에 하얗게 반짝이는 꽃잎들이 팔랑팔랑 휘날리며 ‘OO초등학교 입학식’이라는 입간판 옆에 선 아이와 엄마를 축복하듯 춤을 추었다. 길 건너에서 제삼자가 본 광경인데도 인화한 사진이 눈에 선할 정도로 인상적인 장면이었다. 저 아이는 이 순간을 평생토록 기억하겠구나. 일본인에게 왜 그토록 벚꽃이 애틋한지 알 듯도 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인생의 시작에 화려하게 만개한 벚나무는 수만 가지 추억처럼 꽃잎을 흩날리며 아득하게 진다. 인생에서 학창 시절이 그러하듯이, 가장 환하게 피었다가 순식간에 지나간다.
서울의 벚꽃은 지난 주말이 절정이었다. 숨 막힐 듯 핀 꽃들이 꽃보라를 일으키며 지는 광경이 아름다워 스마트폰 카메라 앱을 열고 요리조리 찍어보지만, 눈앞에 펼쳐진 믿을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광경을 담아낼 재간이 없다. 그래도 최선을 다해, 흡사 사진 작가인 양 공들여 꽃들을 찍어 SNS에도 올리고 지인에게도 보낸다. 가는 이 봄꽃을 내가 알고 나를 아는 이들과 나누고 싶어서. 어쩌면 사진을 찍고 공유하는 행위는 사람이 그리운 인간의 본능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벚꽃은 이제 다음 주만 지나면 거의 다 질 듯하다. 너무도 빠른 작별. 인생이 이렇게 빠르게 지나갈 줄 몰랐던 것처럼. 안타깝고도 쓸쓸한, 그래서 더 아름다운 낙화. 흙바닥에 떨어진 탐스러운 벚꽃 한 송이를 주워 괜스레 귀 뒤에 꽂아본다. 떠나는 꽃을 배웅하는 의식이다. 잘 가. 덕분에 올해도 행복했어. 내년에 또 만나자. 너도, 나도, 건강하게, 변함없는 이 모습 이대로.
시라오(白雄·1738~1791)는 해 질 녘 지는 벚꽃을 보며 이 하이쿠를 지었다. 해도 지고 벚꽃도 지니 허전한 마음에 사람이 더욱 그리워진다. 그런 마음을 담은 시다. 예나 지금이나 꽃이 아무리 아름답다 한들 인간은 꽃만 보며 살 수는 없는 존재인가 보다. 괜스레 누군가와 같이 있고 싶고 누군가와 함께 이야기하고 싶은 기분. 일본어에는 그 마음을 나타내는 형용사가 있다. 히토코이시이(人恋しい). 고어(古語)로는 히토코히시(人恋し). 사람이 그립다는 말로 번역해 보았지만 형용사 하나가 가진 힘에는 미치지 못한다. 이런 형용사까지 있는 걸 보면 개인주의가 강한 열도 사람들도 늘 못내 사람이 그리운 모양이다. 작가·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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