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포커스] ‘제2 프랑크푸르트 선언’ 필요한 삼성
경영진 우기다 “2등” 인정
외신은 ‘HBM 수율 문제’ 지적
도전 정신 희미해진 삼성
지난 3월 중순 로이터통신이 삼성 관련 충격적 뉴스를 보도했다. 삼성전자가 HBM(고대역폭 메모리) 생산 공정에서 SK하이닉스 방식(MR-MUF)을 도입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HBM은 D램 반도체를 수직으로 쌓아 올리고 데이터 전송 통로를 넓힌 반도체다. 인공지능(AI) 컴퓨터에 필수적인 부품이다. 2013년 SK하이닉스가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하이닉스는 지속적 연구 개발 투자로 HBM의 수율(합격품 비율)을 높여왔다. 반면 HBM 연구 개발을 게을리한 삼성전자는 AI 반도체 맹주 엔비디아의 성능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하는 수모를 겪고 있다.
하이닉스는 D램을 쌓고 액체 화학물질을 뿌려 한꺼번에 붙이는 방식인 데 비해 삼성전자는 D램 사이에 필름을 끼워 넣고 고열과 압력을 가해 붙이는 방식으로 HBM을 만든다. 로이터는 삼성식 HBM 제조법은 불량률이 높아 수율이 10~20%에 불과하다고 보도했다. 10개 중 정상 제품이 1~2개밖에 안 된다는 것이다. 수율이 개선되지 않자 삼성이 하이닉스의 제조법을 베끼기로 했다는 것이 로이터 보도의 핵심 내용이었다. 삼성은 즉각 “사실이 아니다’라고 부인했다. 하지만 영업기밀에 속한 사항이라 그런지 수율 문제에 대해선 명확한 해명이 없었다.
지난달 20일 삼성전자 주주총회에서 주주들의 성토가 쏟아졌다. 경영진이 “12단 HBM을 기반으로 HBM 주도권을 되찾을 것이다” “AI 가속기 칩인 마하1을 개발 중이다” 하며 주주를 달랬다. 하지만 정작 주가를 움직인 뉴스는 미국에서 왔다. 엔비디아 CEO 젠슨 황이 “삼성전자 HBM을 테스트하고 있다”면서 삼성전자 시제품에 “젠슨이 승인했다(Jensen approved)”라는 서명을 남긴 것이다. 시장은 삼성 최고경영진의 공식 설명보다 모호한 젠슨 황의 말에 더 큰 반응을 보였다. 이후 삼성에서 AI 반도체 관련 뉴스를 쏟아냈다. “최고 인재들로 HBM 전담팀을 구성했다” “마하1 후속작 개발에 착수했다”... 반도체 총괄 대표는 “고객이 12단 삼성 HBM을 더 찾고 있다”고 자랑했다. 하지만 시장에선 삼성 HBM의 수율에 대한 의구심이 여전하다.
과거 삼성은 말보다 행동으로 혁신을 보여줬다. 1994년 세계 최초로 256M D램을 개발한 이후 2007년 64G(기가) D램, 2019년 128단 낸드 등 기술 초격차를 ‘결과’로 증명해 왔다. 삼성전자는 HBM 사업팀을 해체하는 실수를 범하며 기술 경쟁에서 뒤처졌다. 오만에 빠져 현실 자각도 늦었다. 반도체 총괄 대표는 작년 7월 “삼성 HBM의 시장점유율이 여전히 1등”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다 4분기 실적 발표장에선 “경쟁사에 기술력이 따라잡혔다” “우리가 2등”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2022년 세계 최초 3나노 기술을 개발했다면서, 파운드리 시장을 개척하겠다고 큰소리쳤다. 하지만 삼성의 파운드리 시장점유율은 2021년 18%에서 2023년 11%로 뒷걸음질했다. 지난 2월 말엔 세계 최초로 12단 HBM3E 개발에 성공했다고 발표했지만, 주가는 미동도 안 했다. 삼성전자에 대한 시장의 신뢰가 예전 같지 않다. 최근 예상을 뛰어넘는 1분기 실적(6조6000억원 이익)을 발표했지만, 주가는 오히려 뒷걸음쳤다.
이쯤 되면 “마누라 빼고 다 바꾸라”는 프랑크푸르트 선언 같은 비상 대응이라도 검토해야 할 때 아닌가. ‘미스터 반도체’ 진대제 전 삼성전자 사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위험 부담이 있더라도 도전 의식을 갖고 혁신을 주도해야 한다”고 쓴소리를 했다. 결과로 보여주기보다 말이 앞서는 요즘 삼성전자의 행태가 걱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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