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대통령 '사면초가'…초유의 '식물 대통령' 기로에

임경구 기자 2024. 4. 11. 0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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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조국 '사법리스크' 압도한 '정권심판' 총선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이 총선 참패를 눈앞에 두고 있다. 방송사 출구조사와 달리 일부 접전지에서의 결과가 유동적이지만, 범야권의 180석 확보는 확실시되고 있다. 출구조사 결과나 개표 진행 중 한때의 전망으로는 '야권 200석', 즉 대통령 탄핵과 개헌 저지선까지 무너진 초유의 여소야대 지형이 가시화되는 듯했다. 그나마 국민의힘이 일부 접전지에서 출구조사 결과를 뒤엎고 승리하며 최악의 상황은 모면하게 됐으나, 윤 대통령과 여당 앞에 남겨진 과제는 녹록지 않다.

'사법 리스크'를 달고 있는 대표들이 이끈 야당에 '사당화' 등 공천 파동과 후보자들의 막말, 편법 대출 의혹이 크게 부각됐음에도, '묻지마 정권심판' 민심을 잠재우지 못했다. 민심이 선거로 표출한 정서적 탄핵이다. 윤 대통령은 남은 임기 3년간 정상적 국정운영을 장담하기 어려운 사면초가 상황에 내몰렸다.

전국 개표율이 90%를 넘어선 11일 오전 2시30분 현재, 국민의힘은 비례대표 위성정당 의석을 포함해 112~114석을 확보할 것으로 예상돼 총선 패배가 확실시된다. 민주당은 단독 과반을 넘어 170석 안팎을 얻을 것으로 예상된다. 여기에 조국혁신당이 12석가량을 비례대표 몫으로 할당받을 것으로 보인다.

중간평가 성격인 이번 총선에서 심판론의 화살과 책임은 오롯이 윤 대통령으로 향한다. 무엇보다 윤 대통령의 돌격형 정치 노선이 복수혈전을 방불케 하는 이재명·조국 대표의 맞대응에 자양분을 제공한 점이 뼈아프다. 여권이 "범죄자 연대"라고 몰아붙인 이·조 대표가 윤 대통령을 협공하는 야당의 카운트파트로 한꺼번에 부상했다.

이·조 대표를 향한 검찰 수사가 맹렬할수록, 김건희 전 코바나컨텐츠 대표에 대한 잣대와 비교됐다. 거부권을 행사한 '김건희 특검법', "박절하게 대하기 어려웠다"며 감싼 '명품백 수수 의혹'으로, 윤 대통령이 약속한 '공정과 상식'이 무너지고 법치의 기준이 형해화됐다.

김 전 대표가 지난해 12월 네덜란드 순방 이후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음에도 이번 총선을 지배한 '배우자 리스크'는 윤 대통령 남은 임기 내내 지속될 전망이다. 제2부속실 설치, 특별감찰관 임명 요구를 외면해온 윤 대통령의 조치가 시급해졌다.

무엇보다 취임 이후 한번도 회담을 갖지 않았던 이재명 대표에 대한 윤 대통령의 태도가 변화할지 주목된다. 여전한 사법 리스크에도 전례를 찾기 어려운 입법부 실권자로 떠오른 이 대표와 정치적 적대가 지속될 경우, 여야 관계는 내전 수준으로 격앙될 전망된다.

국정운영 기조와 방향에 관한 전면적인 수정도 불가피해졌다. 야당의 법안 단독 처리와 윤 대통령의 거부권(재의요구권) 행사가 소모적인 힘겨루기 양상으로 반복됐던 교착 정국의 무게추가 이번 총선을 기점으로 기울었다. 윤 대통령이 여소야대를 편의적으로 우회한 시행령 정치도 구사하기 어려워졌다.

특히 총선 정국에서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의 석연치 않은 행보가 의심을 키워 초미의 쟁점이 된 '채상병 특검법(순직 해병 수사 방해 및 사건 은폐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의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이 윤 대통령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야당이 21대 국회에서 '채상병 특검법'을 처리하고 윤 대통령이 또다시 거부권 행사로 맞설 경우, 거부권조차 여의치 않아지는 22대 국회에서 운신의 폭이 좁아지는 쪽은 윤 대통령이다. 민주당은 총선 뒤 열리는 첫 본회의에서 특검법 처리를 예고했다.

윤 대통령이 24회에 걸친 민생토론회에서 내건 총선용 약속도 대부분 무위로 돌아갈 전망이다. 약 900조 예산이 투입되는 재정 정책에 야당이 입법적 뒷받침으로 호응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전면적인 국정운영 궤도 수정이 불가피해진 만큼, 윤 대통령은 대대적인 인적 쇄신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황상무 전 시민사회수석의 '회칼 테러' 발언으로 도마에 오른 대통령실을 비롯해 강경 이념형 장관들이 다수 포진한 내각 개편이 방향 전환의 시험대다.

다만 가뜩이나 윤 대통령의 인사풀이 협소한 데다 총선 참패로 원심력이 커진 여권 내부 상황이 변수다.

'정권 2인자' 격인 한동훈 비대위원장의 조기 등판에도 총선 참패를 피하지 못한 후폭풍이 '당정 공동체' 붕괴로 가시화될 수도 있다.

총선 과정에서 언급됐던 윤 대통령의 출당 요구까지 본격화될 경우, 윤 대통령 스스로 "총선에서 여당이 다수당이 되지 못하면 거의 식물 대통령이 될 것"(2023년 1월 <조선일보> 인터뷰)이라고 했던 예고는 현실이 된다.

국정운영 주도권을 상실한 윤 대통령 앞에는 고물가와 의정 갈등을 비롯한 대내외적 당면 현안들도 즐비하다.

특히 총선 이후로 미뤄진 '의대 정원 2000명 증원' 문제를 놓고 의료계와 원만한 타협이 도출될지 불투명해졌다. 윤 대통령이 임기 동안 주력해온 한미 동맹 강화, 한미일 공조 일변도 외교노선도 연말 미국 대선과 맞물려 격랑이 예상된다.

▲윤석열 대통령이 8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도시주택공급 점검회의에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임경구 기자(hilltop@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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