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낮은 지지율·韓 원톱체제 한계 … 與, 중도 공략 실패
당 구원투수로 나선 한동훈
정치초보로 위기대처 부족
수직적 당정관계도 극복못해
여의도연구원도 역할 미미
당 민심분석·위기관리 안돼
◆ 제22대 국회의원선거 ◆
국민의힘이 이번 4·10 총선에서 패배의 쓴잔을 들이켰다. 지난해 10월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패배 후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 '원톱 체제'를 세우며 당 쇄신에 나섰으나 한 위원장 혼자만의 힘으로는 역부족이었다. 더불어민주당 역시 선거 전에 압도적 지지율을 기록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이번 선거 패배의 원인은 결국 국민의힘 내부에 있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당의 얼굴만 바뀌었을 뿐 선거 전략, 어젠다, 당정 관계, 위기 대처 등 모든 면에서 체질 개선을 이뤄내지 못한 결과다. 물론 윤석열 대통령의 낮은 국정 지지율도 국민의힘에 시종일관 부담이 됐다.
국민의힘은 지난해 말부터 정치 신인인 한 위원장에게 전권을 준 채 지나치게 의존하는 모습을 보였다. 물론 한 위원장이 강한 리더십과 대중적 인기를 앞세워 위기에 빠진 당 분위기를 신속하게 전환하며 구원투수 역할을 성공적으로 해낸 것은 인정받는 분위기다. 그러나 당마저 이러한 분위기에 취해 한 위원장에게 과도하게 쏠린 의사결정 구조를 제대로 정비하지 못한 것이 패착이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 위원장은 취임 초반 '86 운동권 청산론' 등을 앞세워 기세를 올렸으나 그가 내세운 정치개혁 어젠다나 민생 관련 공약은 기대만큼 조명받지 못했다. 결국 한 위원장 본인의 이미지와 개인기에 의존하는 단순한 선거운동 행태가 반복됐다. 한 위원장도 '이조(이재명·조국) 심판론' 등 네거티브성 구호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한 위원장은 선거 막판 판세가 불리해지자 민주당을 향해 '범죄자' '쓰레기' 등 더 거친 언어를 쓰기 시작했지만 이는 수도권 유권자나 중도층 등에 오히려 독이 됐을 것이란 평가도 나왔다.
윤광일 숙명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한 위원장이 일사불란한 지휘로 위기에 빠진 당을 구원한 것은 좋았지만, 정치 초보인 만큼 선거 국면에서 민심에 대처하는 능력은 서툴렀을 수밖에 없다"며 "이번 선거 결과는 국민의힘이 신인 정치인에게 모든 것을 맡기는 위험한 도박을 한 대가로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 위원장과 국민의힘이 끝내 당정 관계 재정립에 실패한 점을 패배 원인으로 꼽는 의견도 있다. 고물가·내수 부진 등 경제 실패와 완고한 통치 스타일로 비판받은 윤 대통령이 선거 내내 낮은 지지율을 보인 만큼 여당이 보다 대통령실과 각을 세우면서 '디커플링(탈동조화)'하는 모습을 보였어야 했다는 얘기다.
한 위원장은 지난 1월 김건희 여사 명품백 수수 논란, 3월 비례대표 공천 등으로 윤 대통령과 두 번 충돌했다. 그러나 1차 갈등 땐 충남 서천시장 화재 현장에서, 2차 갈등 땐 서해 수호의 날 기념행사에서 윤 대통령과 만나며 불과 며칠 만에 사태를 봉합했다.
지역구·비례대표 공천을 둘러싸고도 당정 간 긴장 관계가 조성됐지만 그 이상의 폭발은 없었다. 지역구 공천은 '감동 없는 공천'이란 소리가 나올 정도로 '현역 불패' 흐름이었고, 이철규·이용·박성민·권성동 등 소위 친윤계 의원 다수가 생존했다. 용산 출신 인사도 행정관급은 다수 탈락했지만 수석급 이상 핵심 참모들은 대부분 살아남았다.
비례대표 공천 역시 몇 차례 홍역 끝에 용산이 요구한 일부 인사들이 추가로 반영됐다. 그 외 의대 정원 확대 문제 등에서도 한 위원장은 조율의 역할을 자처했을 뿐 그 이상 나서지는 않았다. '수사 도피' 논란의 이종섭 전 주호주 대사, '언론인 회칼 테러 막말' 논란의 황상무 전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 사퇴를 건의해 이를 관철한 정도가 한 위원장의 성과로 꼽힌다.
김형준 배재대 석좌교수는 "한 위원장이 선거에서 승리하려 했다면 대통령실과의 전략적 충돌을 계속 이어갔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며 "그 결과 용산과의 거리 두기가 충분히 이뤄지지 못했고, '정권 심판'이란 야당 측 프레임이 강하게 작동할 수 있었다"고 분석했다.
국민의힘의 선거 시스템이 부실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당 지도부 핵심 관계자는 "한 위원장이 이번 선거 내내 선거 전략 등에 대한 조언도 제대로 받지 못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한 위원장이 대통령실과 갈등을 빚을 때 공개적으로 나서서 뒤를 받쳐준 의원들도 없었다. 뒤늦게 원외 인사였던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 나경원 전 의원 등이 공동선거대책위원장으로 합류해 여러 건의를 했다고 전해지지만 이미 판세는 기운 뒤였다.
[안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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