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 참패 전망인데 '2천명 의대증원'은…'대화 vs 강행' 갈림길
정부, 의료계와 대화 압박 커질 듯…국민 지지 업고 '강공' 전환 가능성도
의료계, 정부와 대화 나서려 해도 '내분'이 발목 잡을 수도
(서울=연합뉴스) 김병규 기자 =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여당의 참패가 예상되는 가운데, 선거 결과가 정부의 의대 증원 추진에 어떤 결과를 미칠지 주목된다.
10일 방송3사 출구조사에 따르면 4·10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과 민주당 주도 비례대표 위성정당 더불어민주연합 등 범야권이 압승할 것으로 예측됐다.
여당의 선거 패배를 계기로 정부는 집단행동 중인 의사들과의 대화에 적극적으로 나설지, 강경책으로 선회해 이탈 전공의에 대한 행정·사법 절차에 나서며 증원 추진에 박차를 가할지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됐다.
의사단체 등은 선거 결과를 내세우며 정부에 '증원 백지화' 압박 강도를 높일 것으로 보이지만, 내분으로 정부와의 '대화 창구 단일화'에도 애를 먹고 있어 사태 해결의 주도권을 쥘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의사들 "무리한 의대증원 때문에 참패"…대정부 압박 강도 높일 듯
대한의사협회(의협)와 교수 단체 등 의료계는 선거 패배의 원인이 의사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의대 증원을 강행한 데 있다고 주장하면서 정부에 '2천명 증원'을 백지화하라고 목소리를 높일 것으로 예상된다
총선 전 임현택 차기 의협 회장은 "이번 총선에서 그동안처럼 여당을 일방 지지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의사에게 가장 모욕을 주고 칼을 들이댔던 정당에 궤멸 수준의 타격을 줄 수 있는 선거 캠페인을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었다.
이날 출구조사에서 여당의 참패가 예상되자 의료계 인사들은 벌써부터 목소리를 높였다.
서울의대 교수 비대위 1기 위원장을 지낸 분당서울대병원 정진행 교수는 소셜미디어에 "헌정 질서를 무너뜨리고 개인 기본권을 침해한 것을 용서하지 않은 국민 심판"이라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노환규 전 의협 회장은 "이 결과는 2월 대통령이 필수의료 정책패키지를 발표한 순간 예상됐던 결과"라며 "자유의 가치를 외면한 보수 여당이 스스로 졌다"고 말했다.
의협 비상대책위원회는 총선 출구조사 결과에 대한 즉각적인 입장이나 논평을 내지는 않았지만, '의대 증원 백지화'를 한층 강도 높게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이상호 의협 비대위 대외협력위원장은 "비대위 차원의 공식 논평 여부와 내용에 대해 내부 논의 중"이라며 "총선 결과는 절차를 무시하고 비민주적으로 의료정책을 밀어붙인 것에 대한 국민들의 심판"이라고 평했다.
사직 전공의 류옥하다 씨는 "대부분 국민의힘을 찍어 왔던 의사와 그 가족들의 표가 결정적 영향을 미쳤고, 국민들이 정부의 증원 정책이 '불통'이라는 것에 공감해 주신 결과라고 생각한다"며 "정부가 당연한 결과를 받아들여 (의대 증원) 정책을 철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 의료계와 대화 압박 커질 듯…'전공의 면허정지' 강공 전환 가능성도
총선에서 여당의 참패가 예상되면서 정부는 의료계와 대화해야 한다는 압박을 더욱 크게 받을 가능성이 있다.
이미 선거를 앞두고 판세가 여당에 불리해지자 의대 증원 추진에 따른 의료공백의 장기화가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지적이 여권에서 제기됐었다.
여당 인사들은 '단계적 증원' 등 정책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를 냈고,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 겸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은 중재자를 자처하며 의사들을 만나 유화 제스처를 취하기도 했다.
이에 정부는 지난달 하순부터 이탈 전공의들의 면허정지 행정처분과 관련해 '유연한 대처'를 강조하면서 그간의 강경 대응에서 한발 물러서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정부는 총선 후에도 의사들과의 대화 노력을 계속하면서 장기간 이어지는 의료공백 사태가 더 길어지지 않도록 힘쓸 것으로 보인다.
다음 달 말 '2025학년도 대입전형 수시모집요강'에 의대 증원이 최종 반영될 때까지 의사들에 대한 설득을 이어가면서 타협안을 모색할 가능성이 있다.
반면에 정부가 중단했던 전공의 의사면허 정지 행정처분 절차를 재개하면서 강경 대응으로 선회할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대통령이 전공의 대표까지 면담했을 정도로 의료계와 대화 노력을 기울인 만큼 강공 전환을 할 '명분'은 쌓였다고 판단, 선거 참패 후 더 큰 레임덕을 막기 위해서라도 국민적 지지가 큰 의대 증원 추진에 공을 들일 것이라는 관측이다.
보건복지부는 이탈 전공의들에게 3개월 의사면허를 정지하겠다는 사전통지서를 보내 3월 26일부터 면허를 정지시킬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유연한 처리' 방침에 따라 면허정지 본통지를 하지 않았고 송달 절차도 중단했었다.
정부 관계자는 "대화 노력을 계속하겠지만 국민과 환자들을 생각하면 계속 기다릴 수만은 없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그는 "선거 결과를 의대 증원 추진에 대한 여론으로 볼 수는 없다"며 "의대 증원은 국민 대다수가 동의하는 정책이며, 추진 여부가 선거의 이슈도 아니었다"고 강조했다.
이미 막바지에 있는 의대 증원 추진은 정부가 결정할 사안이지, 법률 개정 등 국회의 동의가 필요하지는 않다.
더구나 의대 증원의 필요성은 정부와 여당은 물론 야당과 시민단체, 환자단체 등도 모두 동의하고 있다.
정부, 타협하려 해도 의료계 '내분'이 발목 잡을 수도
정부가 총선 후 의료계와 대화에 나서려고 해도 정작 의료계 내부의 문제가 발목을 잡을 수도 있다.
바로 최근 두드러지고 있는 의료계 내부의 '자중지란' 양상이다.
총선을 앞두고 유화적 입장을 보여온 정부는 벌써 보름 넘게 의료계에 '공통된 입장'을 달라고 요구하고 있지만, 의료계는 아직 한 목소리를 내지 못한 채 강경파와 온건파 사이 '엇박자'를 내고 있다.
의협 비상대책위원회와 차기 회장 사이에서 불협화음이 돌출하고 있고, 전공의들은 '증원 백지화' 없이는 의료 현장에 돌아오지 않는다는 강경 자세를 굽히지 않고 있다.
지난 4일 윤석열 대통령과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비대위원장의 면담이 성사됐지만, 박 위원장은 면담 후 "대한민국 의료의 미래는 없습니다"라는 짧은 메시지로 대화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의료계는 총선 직후 의협·전공의·의대생·교수단체의 합동 기자회견을 열어 '한목소리'를 내겠다고 예고했지만, 이마저도 전공의 반발 등으로 무산됐다.
의료계가 어렵게 '공통된 입장'을 내더라도 '증원 백지화' 수준을 넘어 정부와 협상이 가능할 정도의 제안을 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증원 백지화는 정부가 '백기투항'을 하라는 얘기이지만, 의대 증원 자체는 국민의 지지가 높은 정책이어서 정부가 이를 전면 백지화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할 수 있다.
남은경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사회정책국장은 "선거에서 졌다고 국민이 압도적으로 지지하는 정책도 추진하지 못한다면 대통령의 남은 임기 동안 다른 정책을 추진하기도 어려워질 것"이라며 "선거 결과가 좋지 않으니 정부가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의료개혁을 추진할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봤다.
bkk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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